17 어떤 별보다도 가까운 달

소설 연재

by 서인석

밤하늘을 찍는다는 건 모순을 담보한다. 오늘 같은 날 말이다. 보통 밤하늘을 찍는 이유는 어둠 속 숨어있는 수 많은 별들을 최대한 밝게 찍어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밤하늘이 밝으면 그 빛에 별들의 빛은 더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굳이 서울에서 건물 옥상에 망원경을 설치해서 별을 보지 않고, 이렇게 훌훌 털고 강원도 오지 산골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첩첩산중에 있지만 오늘의 하늘이 별을 찍기 어려운 이유는 달 때문이다. 일년 중 가장 달이 무겁고 밝은 날이다. 소원을 빌라는 듯 추석의 달은 모든 별들을 자신의 뒤로 밀어놓아버렸다.


인류문명에게는 달력이라는 발명품이 있었던지라, 이 날에 맞춰서 촬영 계획을 세워놨었다. 오늘은 달을 제대로 찍어보려고 마음먹었던 것.



한동안 하늘은 구름투성이었다. 예쁜 별이 찍힐만하면 구름이 카메라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사흘 전에는 어마어마한 강풍이 구름을 치워놨고, 그저께는 큰 비가 왔다. 하늘은 아주 맑게 개어있었다. 마치 추석을 위해 대기가 모든 준비를 갖춘 것마냥.


망원경과 카메라를 찍는 일은 유독 간단했다. 달의 위치는 나침반이나 각도기가 필요 없이 육안만으로도 충분히 고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추석이겠냐는 듯 달은 해가 저물자마자 초저녁부터 늠름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정도로 하늘이 맑고 달이 밝으면 표면에서 산책 중인 토끼 표정까지도 찍히지 않으려나.



망원경에 눈을 댔다. 그 동안은 어둠 속 보석을 찾는 것처럼, 망원경의 초점만큼이나 망원경에 갖다대는 동공의 초점까지도 예민하게 잡아야 했다. 하지만, 가득 찬 달은 달랐다. 밝은 달은 접안경에 아예 꽉 들이찼다. 이렇게 밝게 보이는 렌즈는 처음이다.


눈을 망원경에서 뗀 후 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영상 촬영을 시작했고 카메라로 좀 더 줌을 당겼다. 카메라 화면으로 보이는 달의 신비함은, 망원경에서 눈으로 바로 담길 때보다는 살짝 덜했다. 하지만 훨씬 더 선명한 형태를 드러냈다.


하얬다. 그리고 보일듯 말듯한 그라데이션이 있었고, 크레이터들도 똑똑히 보였다. 나는 크레이터들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큰 크레이터만 수십개가 넘어가자 세는 것도 그만두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그저 달 그 자체를 느끼고 있었다.



밝고 동그란 달 하나를 두고 수많은 상상에 빠졌다. 저 달의 뒷편에서는 진짜로 분명히 토끼가 절구로 달의 맨 땅을 찧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 크레이터들은 절구로 찧어서 생긴 모양이 분명하다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


슬슬 달은 더 높은 하늘로 이동했고, 기온은 빠르게 떨어졌다. 나는 차 안에서 가디건을 꺼내 걸치고 물을 끓였다. 의자에 몸을 기댔다. 망원경과 카메라로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던 달을 육안으로 올려다 보았다. 수 시간을 본 달인데, 또 달랐다.


망원경과 카메라 안에서는 달이 과학적 개념의 피사체로 느껴졌는데, 눈으로 바로 들어온 달은 막연히 아련했다. 밝은 만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문득 휴대폰을 들어서 화상 통화를 걸었다. 전화는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연결됐다.


"엄마!"

"아들, 건강하지? 잘 지내고 있지?"

화면에 비친 엄마의 배경은 집인 것 같았다.


"엄마, 추석 잘 보내셨죠? 못가서 미안."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는 아들이 행복한 일 한다고 생각하니깐 뿌듯하다. 하고 싶은거 하는거 같아서 좋아. 회사 다니면서 용돈 보내줄 때보다 더 마음이 든든해."


별말 아니었는데도 금세 코끝이 시큰해지는거 같아서 황급히 휴대폰으로 내 주변 환경을 비췄다.

"나는 지금 이렇게 있어. 좋겠지? 여기 엄청 조용해. 오늘은 추석이라서 달 찍고 있고."

"그래. 먹는건 꼭 잘 챙겨먹어야 해. 좋은 걸로. 몸 상해."


엄마의 뒤에서 성연의 얼굴이 스윽 보였다. "오빠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카메라로 성연을 비춰줬다. 동생은 입으로 뭘 오물거리면서 손을 흔들어보였다.

"오빠, 잘있지? 난 송편 먹는다."


나는 대답대신 웃어보였다.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거나 그런 류의 말은 안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추석 잘 보내라는 인사를 건낸 후 전화를 끊었다.


의자에 앉아서 다시 달을 올려다봤다. 밝은 달에 엄마와 동생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겠지만,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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