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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Nov 19. 2022

지리학자와 지질학자

TEXTIST PROJECT

 '김밥'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 '자두'가 2003년에 낸 곡이다. 남녀의 간극에 대해 김밥이라는 소재로 표현했다. 현실적이면서도 귀여운 가사와 통통 튀는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기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공감이 아닐까. '연인 사이의 남녀가 이렇게 다른게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지금 들어보면 조금 간질거리는게 유치하다는 감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걸 보면 좋은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이 가사가 주는 공감대는 시대를 뛰어넘는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자두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도 있다. 이 책도 남녀간의 간극을 소재로 삼고 있다. 1992년의 책인데 지금도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에선 100만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이 나왔을 정도이니, 확실한 스테디셀러다. 

 

 사람의 관계는 남과 여만 다른게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다. 굳이 연인 사이의 간극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든 동료든, 오랫동안 다른 삶을 살다가 밀접하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다보면 분명 서로의 다른 점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친구나 동료는 '연인 수준까지는' 가깝게 지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와 반가움을 유지하며 갈등없이 지낼 수 있는게 아닐까. 



 나는 지도보는걸 매우 좋아한다. 정말 매우매우 좋아한다. 지도책만 펴두고 한두시간을 훌쩍 보낼 자신도 있다. 게임보다 좋아하는 일이 구글 어스로 곳곳의 지역을 탐방하는 일이다. 운동하거나 산책할 때면 외진 길을 일부러 파고드는걸 좋아한다. 길 끄트머리에서 이미 알았던 길과 만나는걸 발견하면 '우와, 이 길이 여기로 이어지는구나'하며 감탄한다. 

 아내는 아닌 것 같다. 함께 손을 잡고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차로 가까운 곳을 이동할 때면 종종 하는 이야기가, "나는 아직 어디가 어딘지를 잘 모르겠어."라고 한다. 이 동네에 온지 3년이 다 되었지만 아내는 그다지 주변 도로나 지리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궁금해하진 않는다. 

 아내와 부산에 여행간 적이 있었다. 해운대 앞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 곳에서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감상했다. 나는 모래사장을 걷고 뛰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다른 걸 한참동안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파도였다. 아내는 파도를 세고 있었고, 큰 파도와 작은 파도의 파고를 구분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얼핏보면 모든 파도는 똑같은 모양인데, 아내에겐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아내는 파도만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집엔 지질학자랑 지리학자가 같이 사네!"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관심사가 똑같을 순 없다.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타인과의 마찰을 줄이고 접점을 늘리기 위해 MBTI니 혈액형이니 인싸/아싸니를 통해 인간관계를 체계화 해보려 한다. 

 

 하지만 결국 이 과정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건 '백 퍼센트 맞는 사람은 없다'는 당연한 명제의 재확인 뿐이다. 가까이 맞대고 살아야 하는 관계라면, 그저 서로의 잘 맞는 부분을 즐기되, 맞지 않는 부분에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는 피자를 좋아하고 누구는 순두부를 좋아한대도, 둘다 좋아하는 김밥 같은 소재가 없을까. 지리학자와 지질학자가 서로의 모르는 부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서 새로운 재미를 끌어내주며 살아가는 것. 그게 연인이자 부부의 재미일 거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을 다르게 자라왔더라도, 앞으로 수십 년을 채워갈 수 있는 다양한 출발점들이 우리 앞에는 여전히 많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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