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삶은 필연적으로 공해를 마주한다. 편리한 인프라를 가까이서 누린다는 장점에 대한 대가같은 거라고 생각하며 하릴없이 살아간다. 그런데 작년 언젠가부터는 줄여도 모자랄 공해의 종류가 오히려 하나 더 늘었다.
현수막 공해다.
이놈의 현수막 공해는 도시의 소음이나 매연, 미세먼지 따위의 것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냄새나며 시야까지 괴롭힌다. 저열하고 덜 떨어진 수준의 유치한 현수막은 가장 사람이 많은 사거리마다 서너개씩이 펄럭거린다. 손흥민이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고, 방탄소년단은 빌보드를 누비는 이 시대에,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에게는 도무지 보여주고 싶지도, 번역해주고 싶지도 않은 진정한 민낯이다. 차라리 하수종말처리장을 보여준다면 한국의 환경인프라라도 자랑할 수 있을테다.
이 쓰레기같은 천 나부랭이가 펄럭이기 시작한 건, 보기 드물게 여야가 합의한 사안인 옥외광고물관리법 때문인데, 골자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없이 정당의 현수막을 걸 수 있게 하는 것. 제법 정제된 말로 표현된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안의 실체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시민들의 불쾌함과 상관없이 가장 비싸고 붐비는 사거리를 높으신 분들의 낙서장으로 사용할 지어다.'
정책현안이나 정당의 홍보를 위한 수단은 분명 필요하고, 이따위 법을 만들 때도 그런 필요성에서 이상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접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실전이고, 지금 당장 사거리로 나가서 어떤 표어가 걸려있는지를 보라. 원색적인 비난과 추잡한 표현들이 당당하게 사거리를 뒤덮고 있다. 이쯤되면 해당 표어에 이름과 얼굴을 걸고 있는 정치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내 수준은 딱 이 정도니까 다음 선거에는 나를 뽑지 마시오."
눈살을 찌푸리기에 모자람없는 현수막 하나를 제작하는 비용은 10만원 안팎. 2주에 한번씩 교체한다고 가정하면 정치인 1인당 1년에 200만원넘는 돈을 시민들의 미움을 사는데 쓰는 셈이다. 만약 진정으로 미움을 사기 위함이 목적이라면 당신들께는 꽤 저렴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투자인것 같긴하다. 이렇게 빠르게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할 수 있는 방법도 드무니 말이다.
모두가 싫어하는 행태에 대한 당사자들의 변명도 짐작할 순 있다. 가령 "쟤가 하는데 내가 안할 순 없어요."같은 것. 그럼 언어라도 가려서 써라, 품위라도 지켜라,라고 하더라도 대답은 예상된다. "쟤가 더 심하게 말했어요." 과장같지만 당장 국회에서 높으신 분들은 실제로 이런 류의 유치한 대화 구조를 모든 정책, 모든 사안마다 반복하고 있다. 의정활동비를 받아가며 유치원생들의 말다툼을 흉내내고 있는 것.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이 짓을 국회를 넘어서 시민들의 사거리에서까지 텍스트로 연장하겠다는 건데, 이쯤되면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바로 이것이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능력'
처음에 현수막 몇 개 보였을 때는 '어휴, 저분들이 그렇지 뭐.'하고 모른 척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공원의 나무들을 현수막이 가리기 시작할 정도가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다수가 지랄지랄해야만(표현이 저급한 점 사과한다. 그러나 현수막들보다 깨끗하고 솔직한 표현이라고 자부한다. 현수막들에 대해 갖는 감정을 이 단어말고 대체하기도 힘들다. 일물일어설.) 저분들은 이 짓이 자신들의 득표에 불리하다는 걸 느낄 것 같다. 저 나풀거리는 현수막들이 지저분하다는걸 알고도 매다는 줄 알았는데, 이쯤되면 모르시는거다.
시민은 피해자일 뿐이지만, 유권자는 심판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