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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15. 2024

익명게시판(2)

루카의 단편집

('익명게시판(1)'에서 이어짐)


 속으로 [자체 파업]이라는 팻말을 걸었을 땐 독립투사라도 된 것처럼 뿌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주변 젊은 직원들부터 슬금슬금 눈치 정도는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팀에서 유일하게 상세한 오류들 하나하나를 다 잡아주던 역할의 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면 바뀐 모양새가 눈에 띌 정도로 티가 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나의 바뀐 태도는 겉으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머리를 빡빡 민 것도 아니고, 몸에 팻말을 건채 시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말만 줄었을 뿐 [자체 파업]은 평상시 모습과 똑같다는 사실을, 며칠 동안 아무 변화 없는 부서 분위기를 보고서야 깨닫게 됐다. 

 그렇다고 내가 눈에 띄게 [자체 파업]을 드러낼 만한 행동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바뀐 거라곤 하루에도 서너 번씩은 몇 명을 자리로 불러 업무 결과물로 지적하던 일조차도 하지 않는 정도다. 그들의 불완전한 업무 역량에 대해 만족하기로 한 것도 절대 아니다. 단지 만사에 무관심한 모습으로 바뀐 것뿐이다. 


 아무도 모르던 [자체 파업]을 행동으로도 보일 기회가 곧 발생했다. 입을 꾹 다문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다. 팀원 중 막내보다 한 기수 위인, 곧 대리 진급을 앞둔 사원이 쭈뼛쭈뼛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평상시에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툭하면 “OO업체의 사례는-”이라는 서두를 붙이며 경쟁사들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던 녀석이다. 

 “저, 과장님.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응. 보다시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최대한 차갑게 답했다. 그는 조금 긴장하더니 자신이 직면한 코드의 버그에 대해 물었다. 나는 당연히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자체 파업] 상태다. 그는 노트북을 보여주며 주절주절 자기가 어디서 막혔고 코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늘어놨다. -[자체 파업] 중 이기 때문에-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흘려 보내고는 대충 짧게 답했다. 

 “좀 더 고민해보지? 책이라도 좀 찾아보고 오던지.”

 “...네?”

 “코드 짠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몇 마디 던지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드디어 파업의 첫 행동을 겉으로 보였다는 쾌감이 가슴부터 사르르 올라왔다. 어떠냐, 내가 이렇게 대충 얘기한 건 처음 봤지? 앞으로도 나는 실력과 경험을 나누지 않을 테다. 


 사실 연차 차이가 있는 직원들은 나에게 질문 자체를 안 하는 편이다. 보통은 내가 먼저 그들을 불러 필요한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이 저지른 듣도보도 못한 방식의 업무를 바로잡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뿌듯함을 느끼며 [자체 파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출시킬만한 다른 방법이 뭐가 더 있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단지 입을 다물고 있는 행위 이상의 무언가를.


*


 [자체 파업]이라 이름 붙인 ‛입 다물기’를 시작했을 때는 나름대로 힘들었다. 꼴 보기 싫은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져도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침묵을 며칠 지속하다 보니 서서히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왔다. 팀에 해가 되지 않을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칼같이 퇴근했다. 아홉 시에 딱 맞춰서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 반부터는 느긋하게 짐을 쌌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매번 지지부진한 각종 회의를 참여하는 건 여전히 답답했지만 자리만 채우겠다는 다짐을 하고 눈 한번 감으면 금세 회의는 끝나 있었다. 


 이제는 익명게시판도 ‛얼마나 어이없는 얘기들이 올라오나 보자’ 정도의 오기로, 습관처럼 들어가게 됐다. 어느 날도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익명게시판의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불평불만 담긴 게시글들은 항상 많았지만 유독 눈에 띈 글이 있었다.


 - 반말 찍찍 하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하는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회사. 

   그러면서 글로벌 OO업체처럼 되길 바라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 

   요즘 트렌드한 회사들은 상호 존칭부터 시작하더라. 직급도 없애고. 


 재밌네. 마흔 줄에 접어든 내가, 갓 대학교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출근한 신입사원들에게도 존칭이라니. 전혀 현실성도, 필요도 없는 주장에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단 한 번도 나보다 수년 더 회사를 다닌 부장뻘 선배들에게 존댓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경험만큼의 마땅한 대우를 저 젊은 세대-익명이라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누가 봐도 젊은 직원이 썼겠지-들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가. 

 백 번 양보한다고 치자. 나 또한 상대가 어리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반말하는 그런 무례한 사람은 아니다. 반말도 친해져야만 할 수 있다. 저 글을 쓴 직원은 누군가가 자신을 편하게 생각해서 썼을 반말에 대해 ‛존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반박을 속으로 이어가는 동안, 그 글의 ‛좋아요’가 훌쩍 올라가다 못해 조회 수와 공감지수가 높은 글들 중 하나로 올라갔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후에도 이 글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진심으로 회사와 정을 떼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쯤 팀원 한 명이 자리로 찾아왔다. 희한하게 [자체 파업] 뒤로는 질문하러 찾아오는 팀원들이 늘었다.


 “과장님, 아까 오전 회의에서 제가 이 부분을 맡게 됐는데요, 박 차장님께서 이걸 예전에 과장님이 해보셨다고 알려주셔서요. 좀 여쭤보려고요...”


순간 [자체 파업]을 더 효과적으로 표출할 방법이 번뜩였다. 

 “내가 굳이 하나하나 말로 설명할 건 아니고... 공유폴더에 그때 했던 자료 있을테니 그거 보고 하던지 해요.”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돌아선다. 냉랭함을 유지하면서 던져진 느닷없는 존댓말에 놀랐겠지. 


 그래, 이제 모두에게 오로지 존칭을 써보자. 그게 얼마나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표현인지, 모두에게 톡톡히 느끼게 해드리리다.


('익명게시판(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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