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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01. 2020

울산광역시 동구 동울산시장

장소프로젝트

울산의 동울산시장은 0살부터 19살까지의 풍경에 속한 곳이다. 하지만 아주 가깝거나 항상 몸을 부대끼는 곳은 아닌, 그런 곳이다. 항상 '지나가기만 했던' 곳, 혹은 '지나가야만 하는' 곳. 

 희미한 기억 속 가장 어린 시절의 동울산시장은 중앙 사거리 배추가 쌓인 트럭 앞이 떠오른다. 나는 트럭 타이어에 엄지발가락을 눌린 적이 있다. 다섯 살 때 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머니의 증언과 대조해보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아프지 않았던지 고통스러운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냥 트럭이 배추를 싣고 있었던 기억 뿐이다.

 다른 기억은 시장 중앙 건물에서 팥죽이나 팥칼국수를 아주 가끔 쑤어왔던 기억이다. 어머니와 함께였는데 별 대단한 기억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동울산시장을 가로질러 다녔지만, 건물 안에 들어간 기억은 많지 않아서 남아있는 장면인 듯 하다. 


 내 가장 태초의 기억 속 집은 '일산아파트 146동'이라는 곳이다. 사실 그 전에도 갓난아기 시절을 보낸 다른 집이 있었다고 한다. 세 살때 이사온 곳이 '일산아파트 146동'인데, 어쨌든 내 기억엔 여기가 첫 집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는 울산을 떠난 대학시절까지도 그 집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학창시절에 단 한번도 이사를 간 적이 없는 셈이다. 

'146동' 시절의 자랐던 기억을 모두 되돌리면 항상 동울산시장을 지나갔다. 지나'만' 갔던 날들이 너무 많다. 어딘가를 걸어서 갈 때, 특히 성당에 갈 때면 동울산 시장은 항상 지나가야 했던 곳이다. 


나는 지금부터, 지루하겠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일산아파트 146동'에서 '전하성당'가는 길을 최대한 상세하게 늘어볼 것이다. 



 

아파트 단지 후문으로 나와서 환희지유치원을 지난다. 친구 어머니가 원장이시던 피아노학원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햇님문구사가 있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쭉 내려간다. 내리막길에는 두 군데의 책 대여점이 있다. 그리고 포아르제과점이 있다. 이 사거리는 차들이 쌩쌩 달린다.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러면 대머리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승리세탁소가 있다. 어릴 땐 곧잘 인사도 하고 다녔는데, 이젠 기억 못하시겠지. 쭉 내려가면 큰빛교회가 있고, 떡집도 있었다. 꽤 오랜 기간 다녔던 부산체육관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면 시장 상가들과 좌판들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좌판들을 쭉 따라가면 동생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셨던 쌀집을 지나게 된다. 그 반대편에는 시장 중앙건물 바깥쪽에 늘어진 분식점들이 있다. 이 집들 중 한 곳은 순대볶음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직도 친구들과 이 집의 얘기를 하는데, 고등학교 동창의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곳이다. 천원을 내면 말도 안되는 양을 접시에 담아 주셨다. 눈 돌리다 말고 다시 쭉 따라간다. 이제부터는 왼 쪽엔 노점 형태의 가게들, 오른 쪽에는 상가 건물들이 늘어진다. 화장품가게도 있고, 강정같은 옛날과자도 판다. 김밥천국도 있었다. 다시 한 블록을 지나면 패스트푸드점도 있다. 왼 편에는 끊임없이 야채와 과일 파는 노점들이 늘어진다. 연근이나 우엉 같은 것도 팔았다. 그렇게 오르막길이 나올 때까지 쭉 가면 아파트단지를 끼고 도는 사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돌면 시장길보다 좀 더 넓은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일단 오른 편에 고깃집과 안경점이 보이면 맞게 온 것이다. 내려간다. 휴대폰 가게 몇 개가 이어진다. 그리고 맥주집도 있고, 작은 아파트들도 지나게 된다. 저 멀리 나이트클럽 간판과 은행 간판이 보이면, 거기까지 따라가지 않고 다시 왼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전하시장을 통과하게 된다. 여길 지날 때는 주택들이 이어진 곳들과 작은 아파트들을 지나게 되는데, 점집들도 몇개 있다. 이렇게 쭉 따라가면 이윽고 낮은 지붕과 넓은 마당이 있는 우리 성당, 전하성당이 나온다.




 살면서 -몸이든, 마음이든- 머물렀던 많은 곳들은 머물렀던 나이와 상관없이 생생히 기억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울산시장은 완벽히 기억나진 않는다. 꿈처럼 희미한 길들도 있다. 물론 이 경로상에 존재하는 많은 요소들이 제법 잘 기억나긴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진 않다. 지나가기만 하고, 머물렀던 적은 없어서일까.

 시장은 항상 북적이고 유동적인 곳이다. 지금 내가 언급한 수 많은 가게와 장소들은 어쩌면 몰라보게 바뀌었을 것이고, 혹은 없어졌을 것이다. 



 시장은 5층짜리 아파트단지를 서쪽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이 아파트단지가 재개발이 됐다. 작은 동네가 아니라 무려 '만세대'라고 불리던 지역이었다. 부지 전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여러 건축사들이 나눠서 가져갔다. 이젠 기십층 정도 되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늘어섰다. 아파트단지를 등에 대고 있었던 좌판들은 모두 사라지고 상가건물이 생겨버렸다. 2층짜리의 상가건물은 세련되고 하얗다. 서울에서 흔히 보던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들어가 있다. 

 비교적 최근들어 시장을 지나가보았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여러 가게를 누비며 깔깔대고 있었다. 동울산시장은 내가 나이가 든 만큼, 더 나이가 들었을텐데, 더 어려져버렸다. 가끔 뻥튀기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대포소리를 내고 쌀냄새를 풍기던 자리는 이제 깔끔한 건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뻥튀기 기계보다 안정된 건물 앞을 지나면서 왜 뻥 소리보다 더 두렵게 느껴지는지 이해가 안됐다. 시장길을 지나가는 마음이 불안하고 안절부절한걸 느끼게 됐다. 



울산 동울산시장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변하지 않고 쭉 있었던 걸로 생각했다. 긴 시간동안 지나가보지 않고, 다시 가보고서야 이질감이 들 정도로 많이 변했다는 걸 인지했다. 앞으로 내가 시장을 지나갈 빈도는 더더욱 줄어들게 된다. 시장을 지나가는 시기 사이의 기간은 점점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타지에서 삶을 넓혀가면서 많은 '지나가는 곳'을 만드는 딱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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