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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01. 2020

TEXTIST PROJECT

 묵직한 쇳덩이를 처음 만져본 건 스물 두 살 때였다. '내 총'을 처음 잡고 만졌을 때의 느낌은 '무거운 쇳덩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게만으로도 무서워야 합당한 물체에 대해 무딘 감각을 느꼈던 이유는 '학군사관후보생'으로의 첫 훈련이 주는 긴장감과 조금의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거운 쇳덩이는 훈련기간동안 상당히 거슬렸다. 교정 이동이나 훈련 과정에서 어깨를 끌어당기는 무게만으로도 신체를 충분히 괴롭혔다. 야외에서 한번 훈련을 하면, 실내로 돌아와서 먼지를 털어내고 기름칠을 다시 하는 데만 수십 분을 들여야 했다. 왜 이걸 닦아내고 털어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도 못한 채.


 첫 사격 훈련을 했던 날, 무거운 쇳덩이는 그제서야 '무거운 살인무기'로 느껴졌다. 쇠에서 첫 탄알이 나가던 때의 소리는 처음 총을 받았을 때보다 수천배 생생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주인공들의 총격씬에서 '탕- 탕-' 소리와 함께 멋지게 구르고 뛰어다니던 모습들이 첫 발이 나가는 순간 일격에 찢겨졌다. 기억 속 첫 사격의 소리는 상상했던 총 소리가 아니라 '펑-', '쿵-' 같은 대포에 가까운 소리였다.

 귀 속에 마개가 박혀 있었는데도 총 소리는 두개골을 울렸다. 개머리판과 쇠의 냉기는 그대로 볼에 전해졌다. 눈 아래를 때리는 총의 반작용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첫 발을 쏜 후, 교본에서 배웠던 사격의 원리와 요령에 대해서 모두 잊어버린 채 어버버하며 나머지 열 아홉발을 소모했다. 혼이 빠질 정도의 무게와 소리. 총이 준 첫번째 기억이다.

 군 생활이 보통일이 아니구나라는 채찍과도 같았던 총성. 물론 시간은 약이라는 말처럼 총은 점차 익숙해졌고, 권총이나 유탄 같은 다른 총기류에도 무뎌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뎌짐은 가장 처음 나의 총을 받았을 때 느꼈던 '무겁다' 정도의 무뎌지는 느낌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군대얘기는 모두가 겪는 이야기고, 모두가 같거나 다른 장면이 있지만 속박된 환경이라는 설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험한 이들에게만 흥미를 준다. 반면 모르는 이들에게는 '무관심'과 '뻔함'을 주기 때문에 글로 쓰려면 항상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주제가 '총'인 만큼 군 이야기를 떼어 놓을 수 없어서 최대한 성실하게 이어나가 보겠다.


 서인석 중위, 서인석 소위는 현무대대와 11사단, 군이라는 조직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한 청년이었다. 자부심이 지금도 일정량 남아있는 걸 보면, 이 부분은 전혀 미화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 중위가 과연 좋은 군인이었냐는 질문을 던지면 민간인이 되어버린 서인석 프로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니다'라고 답한다. 나는 결코 좋은 군인, 잘하는 군인이 아니었다.

 사람은 쉬이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도, 그때도 항상 주변 사람들을 좋아했다. 깔깔대는 웃음과 농담을 좋아하는 서인석이라는 자의 본질은 학창시절에도, 삼성시절에도 그대로다. 군 복무기간만 그 본질을 토끼처럼 육지에 두고 생활한 것이 아니다. 지금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웃길 좋아하고, 이야기를 재밌게 풀길 좋아하는 것처럼. 군인으로서 갖지 말아야 할 자세다.


 3소대장 서인석 소위는 3소대원들에게 '무섭지 않은 소대장', '어렵지 않은 소대장' 정도 였을 것이다. 이 점은 타인이 보아야 더 정확한 단어를 쓸 수 있기에 확고하게 '사실'이라고 도장찍을 순 없지만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소대장이면 소대원들을 이끌고 사지로 들어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야 하는 자다. 그런데 2011년의 3소대장은 그저 소대원들을 좋아하고 아끼고, 어떤 소대원 하나도 소외되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 희생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저 좋은 사람인 장교였을 뿐이다.

 예비역 중위로 전역한 서인석씨의 군 생활 아쉬움을 누군가 물어보면 항상 주저없이 나오는 답이 '2년동안 소대장으로서 소대원들과 쭉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1년 소대장 임무 수행 후, 상위 조직의 작전과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을 때, 소대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매우 많은 눈물을 흘렸다. 1년을 좌충우돌로 보냈으니, 남은 기간은 더 성숙하고 '잘 하는' 소대장으로 임무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시기였다. 다른 것보다 내가 이미 정들어버린 소대원들이 다른 소대장과 낮밤을 함께하며 보내게 될 사실이 부러웠다.


 교육장교/작전항공장교라는 자리는 직접 통제하는 소대원이 없다. 초록색 견장을 갖지 않은 작전지휘계통의 임무를 수행한다. 돌아보면 너무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서인석 중위에게 적합한 자리였을지 모른다. 사람들과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작전을 짜야 하는 자리. 그래서일까. 장교 동기들과는 오히려 이 시기에 정이 많이 들었지만, 임무와 업무에는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그만큼 소대장 생활에 비해 애정이 덜했다. 일은 더 잘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전역할때는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희안한 일이다.


 매체들에서 '총'과 관련된 이야기나 화면을 보면 첫 발의 소리가 생생하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소대장 생활을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무거운 쇳덩이', '공포스런 쇳덩이'로서 했더라면 2019년의 서인석 프로가 2011년의 서인석 소위에게 "넌 잘하는 소대장이야"라고 말했으려나라는 생각. 혹은 소대원들을 정으로 대했던만큼, 나의 총도 정으로 대했더라면, 무거운 중책이 아니라 몸과 같이 친근해져야 하는 사람으로 여겼더라면, 더 좋은 군인으로 남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적어도 사격 실력은 더 나아지지 않았으려나 하는 생각.

 날이 많이 추워졌다. 뉴스에서는 눈만 오면 철책을 점검하며 고지대를 오르는 장병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어김없이 장병들의 어깨에는 총이 걸려있다. 몸처럼 보이는 그들의 총은 제원상 3~4kg 정도의 아령 무게지만 사실 수십kg의 신체를 마지막으로 보호하는 무겁고 무서운 살상 무기다. 화면에 비춰지는 장병 한명 한명은 스스로의 총을 어느정도의 무게로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그저 건강하게 일반인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총의 무게에 비해 하찮은 생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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