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Jun 10. 2020

술과 관계와 소통

TEXTIST PROJECT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잘 마시지' 않는다. 공식적/대외적으로는 몸이 아팠던 때 이후, 못 마시는 걸로 표현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들으면 배꼽잡을만큼의 소량이겠지만 가끔 마시기도 한다. 아예 누가 제안하기 전에 먼저 마시고 싶은 날들도 있다.
 술을 잘 마시는 여부와 관계없이 술자리는 참 어렵다. 나는 차라리 한 수십명, 수백명이 앞에 앉아있는 강단에서 프레젠테이션 하는게 편하다. 네다섯명, 혹은 그보다 적거나 많은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편하게 마시기 위해선 까다로운 조건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조건들을 하나하나 꼽아보진 않았지만.

 가령 이미 새 집에 수 차례 왔다간 친구 부부와의 자리에서는 술 마시는 일이 어렵지 않다. 아무 말이나 내뱉에도 어긋나는 소재가 없다. 이 친구와 나는 서로를 안지 15년 정도 됐다. 우리의 대화 소재는 회차별로 다르지 않다. 서로 본 시간, 안 본 시간의 모든 대화들을 누적시키며 지내고 있다. 다행히 부부끼리 보는데 불편함이 없다. 교복을 입고 등하교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젠 부부끼리 만나서 만담을 나누는게 신기하다.
 최근에는 ROTC 동기 모임이 있었다. 차를 가져갔던 탓에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어쨌든 매 회마다 결코 자리가 불편하진 않다. 동기들은 대학시절의 가장 활력넘치던 시기에 같은 단복을 입고 생활했다. 이들 개개인과 모두 친하고 편한지는 논외로 두더라도, 이 자리만이 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훈련 이야기들이나 선후배들의 이야기는 단복을 벗은지 1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매번 신선하다.
 지난 금요일에는 같이 일하는 상사 분과 술자리를 가졌다. 나와 이 분이 개인적으로 가깝냐 하면 그렇지 않다. 다만 우리는 같은 조직의 같은 업무를 하는 유일한 상대방이다. 일 년동안 같은 업무 속에서 쌓인 공감대는 술자리를 편하게 만들었다. 차를 집에 두고 함께 택시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차 걱정도, 자리에 대한 걱정도 없이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했다. 회사의 원가절감만 아니었다면 좀 더 좋은 분위기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겠지만, 흐뭇한 표정으로 귀가한 날이었다.

 이런 류의 자리가 아니라면 술자리의 초대를 받았을 때,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불편한 자리를 감별하는 가장 큰 기준선이 아픈 시기에 대한 이야기다. 가령 "왜 술을 못마셔요?"라고 질문을 받을 정도로 가깝지 않은 자리, 내 상황과 사정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자리는 일단 편하기 힘든 자리다. 설령 이 자리에서 지병에 대한 사실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리 득되진 않는다.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팠는지 설명하는건 어렵지 않다. 다만 이런 자리에서 설명된 나의 상황들은 대부분의 경우, 다음 자리가 생겼을 때 또다시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내가 상세히 설명해도 그 때 뿐이고, 가벼이 잊혀진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술 마시면서 친해지다'이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은 친해질 기회가 없다는 뜻인가. 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뒤집어야 하는가. 적어도 '친해진 사람끼리 술마시기'는 결코 불편하진 않다. 친해졌기 때문에 즐겁게 술 마시는 건 어렵지 않다. 상관관계다. '술 마시면서 친해지자'는 말은 작위적으로 인과관계를 만드는 느낌이다. '안 친하니깐, 술 마시면서, 속 얘기도 털어놓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나누고..' 류의 느낌. 술을 잘 안 마시는 사람으로서 반박해보자면, 친해질 사람들은 술이 아니어도 이런 이야기들을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것.
 대학시절부터도 이미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술자리를 잘 가지 않았다. 항상 수업시간에 들어가면 학우들은 전날 저녁 어디서 술을 어떻게 마셨고, 누가 네 발로 걸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했다. 항상 이런 이야기를 전해서만 들었다. 전해듣기만 하다보면 나홀로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곤 했다. 어쩌다 술자리를 가게되는 경우가 생기면 한 친구는 "야, 서인석이 술자리를 왔어?!"라며 반색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갔을 정도면, 그 정도로 내가 오고 싶었고 편한 곳이라 생각하고 왔다는 걸 그 친구가 알았을지 모르겠다.

 거실에서 밖으로 내다보면 놀이터가 보인다.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이들은 한 가족이 아니다. 그 날 놀이터에서 처음 봤을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금방 친해진다.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특별히 소재가 있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같이 술자리를 했을리는 더더욱 없다. 아이들은 목적이 없다. 그래서 친해지는데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말을 섞는데 어려움이 없다. 물론 아이들마다 활발하거나 소심하거나의 경중은 있겠지만, 어른들과 달리 관계의 선을 명확하게 그어내지는 않는다.
 어른들은 어린이들보다 유려한 단어들을 알고, 좋은 화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반만큼도 서로 친해지기 힘들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심화된다. 초면인 이들과 관계를 쌓기 위해 심리적으로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흔히 이야기하는 '잘 맞는 사람'이 아닌 이상, 결국 술로 작위적인 자리가 만들어지고 만다.

 그래. 어른들은 결국 어린 시절 갖고 있던 소통의 능력이 퇴화된 채, 술이라는 매개체로 근근히 상대와 대화해 나가는 형상이 된다. 소통은 나이가 들 수록 어려워지는 역량이다.

작가의 이전글 전염병2 : 위대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