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좋은 날> 서울 문학기행, 여덟번째 이야기
물론 김첨지의 현실은 이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래 앓고 있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주지 못하는 곤궁함이 그의 현실이다. 많은 사람이 김첨지가 다녔던 지역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건 빠르게 변화하는 경성의 모습과 대비되는 아이러니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렁탕이라는 메뉴가 선명한 이미지를 남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엉뚱한 생각도 든다. 그 많은 메뉴 중에서 왜 하필 설렁탕이지? 그 동네에 설렁탕 맛집이 있었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설렁탕이란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 따위를 푹 삶아서 만든 국이라고 한다. 요즘에도 치킨님, 돼지고기님에 비하면 소고기님은 훨씬 비싸다. 오죽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돼지고기는 사줄 수 있으나,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으니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하겠는가.
소고기가 귀한 것은 이미 조선 시대 이전부터였다. 소 자체가 그리 귀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고기를 도축할 수 있는 사람이 국가적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는 농사와 물자의 운반에 필요한 주된 노동력이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소고기를 먹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소고기 도축을 금지하는 우금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법적으로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함부로 소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예외적으로, 사고로 죽은 소만을 식용으로 쓸 수 있었고, 그래서 관아에는 “우리 집 소가 다리가 부러졌는데 도축해도 될까요?”라는 상소가 자주 올라왔다고 한다. 물론, 진짜 다리가 부러진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는 그들의 양심과 식욕에 따라 달라졌겠지만.
이렇게 귀한 소고기를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왕족과 성균관 유생이다. 성균관이라는 단어에 드라마부터 떠올랐다면, 원래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으로 그 명성이 높았다는 것을 되짚어주고 싶다. 설립 초기에는 개경에 있었지만, 조선 건국 직후 한양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종로구 명륜3가동으로 터를 잡았다.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만큼 소수의 수재만이 그 곳에 속할 수 있었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혜택이 많았다. 일단 소고기를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을 테니, 그것만 생각해도 성균관에 입학 원서를 넣고 싶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직업적으로 유생을 돕기 위한 사람들이 있었다니, 요즘에는 이런 학교 어디 없나요?
반인이라고 불리는 성균관의 업무만을 위한 노비가 따로 있었고, 그 사람들이 성균관 근처에 모여 살던 동네는 반촌이라고 불렸다. 반인의 특별한 임무 중 하나는 성균관의 제사와 유생들의 식사를 위한 쇠고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반인은 조선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소 도살권이 있었다. 그리고 성균관에서 소비하는 소고기 외에 남는 부분과 부속물을 판매할 수 있다는 엄청난 권한이 부여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의 조선은 우금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 도살 권한과 부속물 판매권은 굉장한 특혜다. 사실상 반촌의 반인들은 조선시대 한양의 쇠고기 판매를 독점할 수 있었던 셈이다. 쇠고기 판매 점포를 한양 곳곳에 설치하고 운영하면서 반인은 경제적 지위가 상승하였다. 1917년 경성부가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도축장을 현저동 도축장 하나로 통합해서 관영 도살장을 개설할 때에 이르러서야 도살권을 가진 지역이 이동하였다. 하지만 길고 긴 조선시대 동안 성균관 인근 동네는 소고기 유통의 중심지였기에, 유서 깊은 설렁탕 집들은 책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에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성균관의 제사와 유생들이 좋은 살코기를 먹고 남는 부위로 끓인 설렁탕. 바로 그 설렁탕의 중심지가 김첨지의 집에서 멀지 않았던 것이다. 김첨지네는 끼니를 잇기가 어려워 조금이라도 돈을 번 날에야 겨우 조밥을 지어먹을 수 있는 형편이었다. 가난한 김첨지의 아내는 날마다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지척에서 풍겨오는 소고기 기름 냄새를 애써 모른척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몸까지 아파지니 그제야 참고 참았던 설렁탕 얘기를 겨우 꺼냈던 것 아닐까. 당장 한 끼만 늦어져도 스쳐 가는 고기 국물 냄새에 뱃속이 요동치는데, 가난한 김첨지의 아내가 설렁탕을 얼마나 애타게 먹고 싶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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