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4]삶의 반경은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운수좋은 날> 서울 문학기행, 아홉번째 이야기

by issueproducer

김첨지가 누볐던 경성은 아직 조선시대 한양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한양도성을 기준으로 도시를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나타나는 변화가 놀라운 시기이기도 했다. 사방으로 달리는 전차를 보며 젊은이들은 전차승무원 같은 전문기술가를 꿈꾸기 시작했고, 현대적인 학교와 극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김첨지가 달리는 길에는 쪽 찐 머리를 올린 마나님도 계셨지만, 커피 한 잔을 즐기러 카페를 찾아가는 모던보이도 있었다. 김첨지의 삶은 곤궁했으나, 경성 한복판에서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하루 다르게 근대화되는 도시 변화의 속도를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개화기 경성의 이미지들: 신여성의 대표 주자 나혜석(왼쪽 상단), 영화 <모던보이> 포스터 중(왼쪽 하단), 일본 백작과 결혼한 덕혜옹주의 결혼식 사진(가운데 하단)


어쩌면 김첨지는 한 번쯤 김약국의 둘째 딸 용빈이와 옷깃이 스쳤을지도 모르겠다. 혜화동은 인력거꾼 김첨지가 자주 드나드는 길목이었다. 그 당시 용빈이는 혜화동 275번지에 살았으니 김첨지와 충분히 동선이 겹친다.


하숙하고 계신가요?
예, 기숙사에 있다가 피곤해서요.
어디죠?
혜화동이에요.
주소는?
강극은 가로등 밑에 멈춰서며 수첩과 만년필을 꺼냈다. 용빈은 다소 난처함을 느꼈다.
혹 편지 연락이라도 하게 되면. 이군의 소식도 아셔야잖습니까?
강극은 용빈의 망설임을 보고 말을 덧붙였다.
이백칠십오 번지예요.
수첩에다 주소를 적어넣고 나서 강극은 태윤의 어깨를 탁 쳤다.
그럼 잘 다녀오게. 나는 저리로 가겠네. 김선생, 훗날에 또 뵙죠.
강극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길 모퉁이를 돌아갔다.


가족들과 달리, 나고 자란 고장인 통영에만 머무르지 않고 수도인 경성까지 삶의 활동 반경을 넓혀낸 용빈이. 경성 한복판을 매일같이 누비는 일상을 살았던 김첨지. 그들이 실제로 만났더라면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김첨지는 머나먼 남쪽 지방 통영에서 온 용빈이에게 “아가씨는 예가 뭐 그리 좋다고 가족도 다 버리고 왔느냐"고 말했을까?


김첨지의 하루와 김약국 일가의 평생을 지도에 찍어서 비교해보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김첨지가 비가 내리는데 고향에 가기 위해 남대문정거장으로 가야 했던 동광학교 학생 손님을 태우고 이동한 거리는 시오리 즉, 5.9킬로미터 정도였다. 김첨지가 단숨에 내달린 거리에서 김약국의 삼대가 평생을 산 셈이다. 어떤 이들에겐 세상의 전부였던 삶의 공간이, 동시대의 누군가가 하루에 살아낸 반경보다도 좁을 수도 있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이것이 일반적인 삶이 아니었냐고, 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을 사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고.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평생의 삶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1920년대 통영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상상하고 그려볼 수 있는 삶의 모습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획일화된 삶의 패턴을 깨기 어려워하는데, 100여 년 전은 말해 무엇하랴. 내 이전 세대의 삶과 나의 세대의 삶, 그리고 내 다음 세대의 삶이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무의식적으로 동질감에 대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타인과 조금만 달라도 공격받기 쉽고 새로운 것들은 다른 것, 위험한 것, 가능한 피해야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는 이야기이다.


1963년에 제작된 영화 <김약국의 딸들> 명작이다.


만약 김약국의 딸들이 조금만 더 넓은 세상에 살았다면 그들의 삶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일단 상대방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어떤 세간살이가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아는 소수의 이웃 안에서만 배우자를 찾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선택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나에게 적합한 상대를 고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근친상간이나 이웃들끼리 얽히고설킨 치정의 가능성도 좀 더 낮아졌을 거라 믿어본다. 비단 결혼 상대의 영역뿐 아니라, 일에서도 김약국이 더 좋은 사업 동료를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넓은 도시에는 일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기두뿐만 아니라 충분히 많이 있었을 테니.


그뿐이랴. 나주까지 큰마음 먹고 가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큰 병원과의 접근성이 높아지니, 김약국이 병을 좀 더 빨리 발견하고 치료하여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멀리 떠나지 않았더라도 용빈이와 용혜가 그곳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다른 자매들 역시 배움의 기회와 문화에 좀 더 노출되어 삶의 시야가 넓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으니 무작정 떠나라고 등을 떠밀 수는 없다. 너무 많은 변수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고, 각자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서도 가치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사는 지금이 어떤 시대이고 어떤 사회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결정적이다.


김첨지는 하루에도 경성 전체를 훑을 만큼 좁지 않은 세상을 살았지만, 식민지 시대 하층민이 가진 가난과 불운을 피할 수는 없었다. 명목상의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실질적인 신분상승은 어려운 시대였고(오늘날의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라는 팩트 폭격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매일같이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삶이었다. 아픈 아내를 병원 한번 제대로 데려가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보냈으니 그 비극을 말해 무엇하랴.


김약국 일가의 몰락 역시 전통적인 경제적 가치들이 신흥자본의 부상으로 대체되는 경제구조의 격변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부분이 크다. 전통적 부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김약국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여, 신흥 자본의 흐름에 빠르게 편승한 정국주에게 쏠랑쏠랑 그 많은 재산을 넘겨주고 말았다.


넓게 살았든 좁게 살았든 김첨지와 김약국 모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 지리적 한계보다는 시대적 한계가 개인의 운명과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들의 경우만 보아도, 더 멀리 다니고 더 많이 보며 물리적인 삶의 반경을 넓히는 일이 반드시 더 풍족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의 능력에 더불어 사회적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기회를 알아볼 안목은 물론, 기회에 직접 손을 뻗을 용기와 현실적 조건들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더 많은 기회는 “삶의 반경을 넓혀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삶의 반경이란 몇 km이라는 측정거리만으로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다른 것을 만날 기회가 밀집된 지역이 아니라면 좀 더 먼 거리까지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야 하니까. 게다가 삶의 반경은 육체적으로 직접 가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는 가상의 공간까지도 동시에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이다. 물리적 확장성이 만들어내는 넓은 견문과 인간관계 그리고 교통, 통신, 병원, 학교, 기타 기반시설 등의 각종 인프라가 삶 전반의 기회와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넓은 견문과 인간관계의 확장은 오늘날 온라인이라는 무형의 형태로도 나타나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삶의 반경에 따른 장단점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것이 더 좋다 나쁘다 쉽게 가치판단을 할 수도 없다. 삶의 반경이 좁은 사람들은 세상이 갑자기 변화했을 때 그것에 적응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자신의 가치관 내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삶의 반경이 넓은 사람들은 너무 많은 옵션에 혼란스럽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장단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 삶의 반경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용빈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인지하고, 그에 따라 내 삶의 반경을 정하는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배는 서서히 부두에서 밀려 나갔다. 배 허리에서 하얀 물이 쏟아졌다.
부우웅ㅡ
윤선은 출항을 고한다. 멀어져 가는 얼굴들, 개스등, 고함소리, 통영 항구에 장막은 천천히 내려진다. 갑판 난간에 달맞이꽃처럼 하얀 용혜의 얼굴이 있고, 물기 찬 공기속에 용빈의 소리없는 통곡이 있었다.
봄은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


<김약국의 딸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용빈은 용혜를 데리고 통영을 떠난다. 다시 돌아오기로 한 2년 뒤의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그들의 미래가 매순간 장밋빛일 것이라고 확신하진 못하겠다. 5km에 갇힌 삶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위험한 순간도, 후회하는 순간도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선택한 것이기에, 그 순간까지도 받아들이며 분명 더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리라.


흐트러지게 핀 통영의 벚꽃을 보며, 김약국네도 김첨지도 꽃길만 걸었길 빌어본다.



[만들지도 그러다 떠날지도] 매거진 바로가기⊙.⊙

https://brunch.co.kr/magazine/makeamap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Ep1-13]아내는 왜 설렁탕을 먹고 싶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