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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08. 2020

[Ep2-8]프로의 세상에서 평범함이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여덟번째 이야기

주인공과 그 야구단은 자신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마지막일지는 알 수 없지 않을까. 세상은 넓고 덕후들은 많으니까. 굳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진정한 마지막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1985년 6월 21일 금요일이다. 바로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트를 상대로 벌어진 삼미 슈퍼스타즈의 고별전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5년 6월 2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청보 핀토스가 되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평일이었음에도 평소보다 관중이 많았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참패 기록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팀이었나 보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향한 사랑에는 우리 주인공과 조성훈 역시 뒤지지 않았다. 고등학생임에도 삼미의 마지막을 그냥 떠나보낼 수는 없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학교를 땡땡이치고  야구장을 찾았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고별전이라도 해서 삼미가 갑자기 잘할 리가 없지.


아니나다를까, 홈구장인 인천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면서도 6대 16으로 대패했다. 아니, 이쯤 되면 롯데 감독도 선수들도 너무 인정머리 없다고 욕하게 된다. 시즌 마지막도 아니고, 이제 영영 사라지는 팀과의 경기인데 적당히 3점 차이 정도로 이겨주면 어디 덧나나 그래.


하지만 이렇게 흥분을 하는 것은 진정한 삼미의 팬이 아니기 때문인가 보다. 오히려 책 속의 주인공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아무 말 없이 경기를 보다가, 경기가 끝난 후 인사를 하는 선수들에게 뜨거운 손뼉을 쳐줄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응어리가 있었던 것인지, 주인공은 그날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의 인생과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해서 오래오래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놀라운 사실을 두 가지 깨닫는다.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회원 특전인 선수단 엽서(출처: http://egloos.zum.com/bremgarten/v/837334)


먼저 자신의 삶이 참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가문의 외동아들로, 공부를 못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잘하지도 못한다. “야구로 치자면 그저 2할 2푼 7리 정도의 타율”이라고 표현했다. 타율이란 무엇인가. 타율은 안타의 개수를 타수로 나눈 것이다. 대신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볼넷, 데드볼(몸에 맞는 공) 등은 타수로 포함하지 않는다. 프로야구의 평균 타율이 2할 8푼을 조금 웃돈다. 2할 2푼 7리의 타율이라는 것은 열 번 타석에 들어섰으면, 그중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안타를 쳤다는 말이다. 숫자만 보면 22.7%라면 매우 낮은 확률로 보인다. 하지만 열 번의 기회에서 두 번 이상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굉장한 것 아닐까. 인생의 실전에서는 열 번의 기회에서 한 번이나마 성과를 얻기 어렵다. 오히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 그때 그게 기회였는데’라고 깨달으니 말이다.


그래서 얻은 또다른 깨달음은 이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사실 야구를 못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안타를 칠만큼 치고, 홈런도 가끔 치고, 삼진도 제법 잡았다.  즉, 엄청나게 못하는 야구가 아니라 적당히 평범하게 잘하는 야구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야구를 지지리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팀이 너무너무 잘했던 것이다. 만약 삼미 슈퍼스타즈가 아마추어 팀으로 남았다면, 제법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간 세계는 바로 프로의 세상이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는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삶이 ‘평범하다’고 평가되고, 적당히 잘하는 것이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패배로 보이니까.


주인공은 깊은 밤 이 두 가지 사실을 깨닫고, ‘더 좋은 소속을 가져야 한다’는 묘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열등감에 빠진 것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었기 때문이고, 아버지가 고등학교 동창인 조 부장에게 굽실거리는 것도 삼류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라며 말이다. 그래서 그 날 새벽, “죽는 한이 있어도 일류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그 소년들과 나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국 문제는 내가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이었던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16살의 나는 결론은 내렸다. 그랬다. 소속이 문제였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p.139)


새벽의 결심은 다음 날 아침이 무르익기 전에 잊히곤 한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아, 진짜 내일부터는 일찍 일어나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알람의 마지막 순간까지 침대에서 뭉그적거린다. 매일 침대에 누워 “아, 진짜 내일부터는 다이어트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몇 시간 뒤면 마요네즈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에 시럽 뿌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뭐,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 진짜 남다른 인물이었다. 깊은 새벽 잠결에 결심한 “일류 대학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실천으로 옮긴다. 숨도 쉬지 않고 공부를 했고, 그만큼 성적이 쑥쑥 오른다. 성적이 오를수록 그를 다르게 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역시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라고 매번 재확인할 뿐이다. 그렇게 삼 년이 흘렀고, 그는 당당하게 일류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소속이 정말 그의 삶을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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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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