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통영 문학기행, 네번째 이야기
명정골이니 간창골, 새터처럼 옛날 이름으로 불러서 그렇지 이리 보면 통영도 그리 낯설지 않다. 인터넷에서 “통영 여행 코스”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물은 고만고만하다.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사진을 찍고, 꿀빵을 우물거리며 중앙시장을 둘러보다가 도다리쑥국이나 복국을 먹고 서피랑 마을을 산책하다가 세병관에서 이순신의 흔적을 찾는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해저터널을 통해서 미륵섬에 가서 케이블카나 루지를 타는 일정도 추가된 듯하지만.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순서만 다를 뿐 비슷한 공간을 즐기다 온다.
여기서 놀라운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놀라운 점이 이 모든 공간이 김약국 딸들의 주 무대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 세병관을 찾은 이가 있다면 마루에 올라서서 통영만을 내려다보며 교회 첨탑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보이는 교회는 선교사가 세운 곳으로 셋째 용빈이가 마음이 힘들 때마다 찾아가던 곳이다.
책에서는 통통한 케이트 양을 비롯하여 영국 선교사라고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호주에서 온 선교사들이 일찍이 자리를 잡았었다. 그때의 선교사들이 어린이 교육과 여성 계몽에 힘썼기 때문에 용빈이와 용옥이는 심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토록 자주 선교사와 예배당을 찾았던 것이고, 우리는 그 흔적을 책 밖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교회뿐만이 아니다. 세병관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책 속에 등장한다. 지금은 기둥과 지붕만 있는 뻥 뚫린 모습이다. 김약국의 딸들이 태어나기 이전을 설명한 책의 초반에는 그 때의 위풍당당한 세병관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책이 쓰인 일본강점기에는 세병관이 학교로 쓰였다. 용빈이와 홍섭이가 둘이 따로 만나던 장소가 바로 이 학교가 된 세병관이다.
홍섭이 먼저 발을 떼어놓았다. 그리고 엉성하게 엮어둔 철망을 건너 교정으로 들어간다. 용빈도 뒤따랐다. 그들은 세병관 (세병관은 소학교 교사의 일부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돌 축대 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잿빛 박명이 깔린 세병관 돌축대 한구석에 시커먼 지붕의 그늘이 덮이고 사용이 금지된 세병관 정문 옆에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밤은 고요하다.
아니, 뻥 뚫린 공간이라면서 수업은 어떻게 했느냐 싶겠지만, 학교로 쓸 때에는 아름드리 기둥을 벽으로 막아서 건물처럼 만들었다. 통제영 전체를 복구하면서 세병관의 벽을 뜯어내기만 했기 때문에 아직도 기둥을 보면 그 때 벽을 달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듯하니 누가 꼭 찾아서 알려주면 좋겠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오늘날 관광객이 세병관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이 모든 공간이 김약국 딸들의 주 무대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이 있다면, 세병관에서 내려다보이는 그 공간이 김약국 딸들의 생활 반경 전체라는 것이다. 대부분 등장인물은 반나절이면 어슬렁거리며 돌아볼 수 있는 이 좁은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다. 제일 멀리 보이는 이순신 공원이 있는 곳이 용란이 신랑 한돌이에게 부모님께서 진절머리가 나서 제일 멀리 내쫓긴 멘데다. 그 반대편 제일 멀리 갈 수 있는 것은 해협 건너편 미륵섬이다.
통영 여행 일정은 이렇게 끝에서 끝으로 짜면 딱 좋다. 일출 명당으로 유명한 이순신 공원에서 여행의 일정을 시작한다면 다음 코스는 동피랑이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포토 스팟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면 중앙 시장으로 내려오자. 여전히 현지인에게는 생활밀착형 시장이지만, 관광객에게는 먹방을 위한 필수코스가 되었다.
중앙시장에 간다면 꿀빵은 위장에 시동을 걸 뿐이니, 충무김밥도 놓쳐서는 안 된다. 위장이 든든해졌다면 거북선이 주차되어 있는 문화마당을 어슬렁어슬렁 거쳐서 세병관으로 오른다. 세병관 바로 옆 골목이 바로 김약국네 집이 있던 간창골이고, 그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실댁이나 김약국의 딸들처럼 서문고개를 넘게 되는 것이다.
용숙이가 살던 대밭골을 지나 용옥이가 살던 명정골에 도착하면 충렬사에 도착한다. 여기서 내리막길을 쭉 따라 내려가면 “통영 도다리쑥국”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대표적인 식당 몇 군데가 몰려있는 시장이 나온다. 이 서호시장은 토영 아낙들이 장을 보러 갔다 정신 잃은 용란이를 마주쳤던 바로 그 새터시장이었다. 몇 걸음만 더 옮기면 해저터널이 있고, 한실댁이 얘기한 것처럼 황천길 같은가 하고 생각하면서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미륵도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중간에 자꾸 뭘 먹어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코스를 다 걸어서 이동하더라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김약국의 딸들의 등장인물이 무려 삼 대에 걸쳐서 살아온 공간이지만 느긋하게 걸어도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작은 동네인 셈이다.
이 한 눈에 보이는 지역에서 김약국 삼대가 한평생을 살았다.
직선거리가 아니라 그 모든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하고 넉넉잡아 계산해도 5km면 충분하다. 이것도 사실 코스를 추가해서 그렇지 그냥 등장인물의 집만을 고려한다면, 제일 멀리 있었던 용옥이네에서 용란이네 집까지 거리는 2km 정도밖에 안 된다.
1km라는 거리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면 건널목을 건널 때를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건널목의 신호 시간을 결정할 때 보행자군의 약 90%가 1.2m/sec 또는 그 이상의 속도로 걷는다고 전제한단다. 이를 환산하면 4.3km/hr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온 삼대의 가족들은 넉넉잡고 또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 평생을 살았던 셈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들의 삶이 왜 이렇게까지 비극적이냐는 의문이 든다. 주변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주체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5km의 범위를 보고 있으면 이 모든 비극의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평생을 같은 사람과 얼굴 마주하고 사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실행하기에는 그들의 경험과 사고범위가 좁았던 것이다. 결국 모두가 비극적일 만큼 좁은 삶의 반경의 피해자다.
이 책은 용빈이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최대 피해자가 용빈이처럼 보인다. 특히 지성과 인품에 미모까지 갖춘 완벽한 캐릭터로 묘사되기 때문에 “아이고 우리 용빈이가 어려서부터 더 넓은 지역에 살았으면 가족 걱정 덜하고 제 뜻을 더 넓게 펼쳤을 텐데.”라는 한탄을 그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모두가 피해자였다.
어쩌면 최대 피해자는 용란이였을지도 모른다. 용란이가 예의랑 손재주는 없었지만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하게 밝힐 수 있는 소신을 갖추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돌보아준 머슴 한돌이에 대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또한 그 용기를 실천하는 대담함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용란이의 사랑을 향한 주체성도 5km라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김약국의 가족은 용란이가 머슴과 자유연애를 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알까 부끄러워 쫓아냈다. 용란이가 다시 돌아온 한돌이와 함께 도망칠 용기를 냈지만, 그렇게 큰 용기를 내서 멀리멀리 도망친다는 것이 겨우 뒷산이었다. 용란이가 조금만 더 넓은 세상을 알았더라면 자유분방함과 함께 사랑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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