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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n 15. 2021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이스탄불에서 마흔

6월부터, 드디어 아들이 학교에 갔다


터키는 5만 명을 육박하던 확진자가 백신 접종을 시작하고 1만 명대에서 5 천명대로 줄어들었고 학교와 상점들도 다시 문을 열었다. 나와 남편은 나이와 직업군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백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로 7개월 만에 처음 아이가 학교를 갈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월요일과 목요일. 단 이틀뿐이지만 아이가 학교에 간다는 것은 곧 나에게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는 의미이다. 여름방학 전까지 6월 한 달 동안 총 9번의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신이 난다. 하핫!


같은 시테(터키는 아파트 단지를 시테라 부름)에 사는 언니와 둘이 페리를 타고 보스포로스를 건너 유럽 사이드로 넘어가 보자는 작당모의를 했다. 매일 아침 산책에서 만나 서로의 지루함을 덜어내던 사이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좀이 쑤셔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온 kf94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이제 시테 밖 세상으로 나가 보자, 의기투합을 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간 6시간 동안 우리는 페리를 타고 서둘러 유럽 사이드를 다녀올 수 있을까?


이스탄불은 보스포로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사이드로 나뉜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세 개의 긴 보스포로스 대교가 두 지역을 잇고 있지만 밤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이 극심한 정체에 시달린다. 유럽 사이드는 업무 지구, 다양한 학교, 관광 명소가 많고 아시아 사이드는 베드타운이기 때문에 유럽에 일자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아시아와 유럽을 오고 가야만 한다. 막히는 다리에서 자동차를 이용하기보다는 거의 10분 간격으로 오고 가는 페리를 이용하면 이스탄불의 교통 체증을 피하기 좋다.


이스탄불에서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보통은 터키에 살고 있는 것이 크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 학교 보내고, 주변에 사는 한국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한국에서 지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가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포로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3개의 다리 위, 그리고 페리를 타고 보스포로스를 건널 때만큼은 내가 이스탄불에 있음이 느껴진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멋진 장소는 차를 타든 배를 타든 보스포로스를 가로지르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카드쿄이에서 에미노뉴까지. 아시아 사이드로 이사를 오고 처음으로 페리를 타고 유럽 사이드로 보스포로스 해협을 가로질러 본다. 코로나 19 발생 이후로 이스탄불에서 처음으로 택시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팬데믹으로 집에서 갇혀 지낸 지가 1년이 넘었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지난 시간의 파도와 함께 바다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유럽 사이드로 넘어가는 페리에서 나는 마치 과거과 현재, 다가 올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 과거를 뒤로하고 힘차게 파도를 밀고 나가는 페리처럼 앞으로 나갈 수 있을것 같은 마음.


내 나라가 아닌 터키 땅에서 자택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1년을 보냈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참 잘 갔구나. 난생처음으로 외출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지낸 나날이었다. 그래. 이 또한 지나가는구나. 세계의 수십억의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수백만 명이 죽거나 죽음을 경험한 이 거대한 사건도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어느덧 에미노뉴 선착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탁심의 갈라타 타워가 보이고, 다른 한쪽 편으로 술탄 아흐멧 역사 지구에 자미의 웅장한 돔과 블루 모스크의 6개의 미나렛도 보인다. 여기가 내가 생각하는 이스탄불이지! 잊고 있었던 원래의 삶을 향해, 팬데믹의 끝에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지루하게 느껴졌던 술탄 아흐멧 역사지구, 탁심 거리인데, 전과 다를 것이 전혀 없는데, 왜 이렇게 새롭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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