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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14. 2022

지한기르 가려다 추쿠르주마로

두 여자의 일상 여행

발 길 닫는 곳이 길이 된다

  

우리는 아침 10시부터 탁심을 헤집고 다니자 마음먹었더랬다. 탁심 거리의 시계는 우리처럼 부지런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침 10시는 탁심을 활보하기에 아직 이른 시간. 가보려고 점찍어 놓은 가게들은 이 시간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 가는 곳마다 어제의 흔적을 지우는 쓰레기 차들이 우리를 반긴다. 좁은 골목에 매콤한 쓰레기차 연기가 한참 동안이나 우리를 따라다녔다.

백종원이 들렀다는 탁심 최고의 탄두리 집도, 숨은 맛집이라는 달콤한 큐네페 집도 모두 문을 닫았다. 가게 오픈 준비로 바쁜 탄두리 가게 종업원에게 슬쩍 물어보니, 친절한 터키 아저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12시는 되어야 고기를 굽기 시작하고 맛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침도 대충 먹고 서둘러 나온 길이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아우성을 치지만, 하는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탁심 제일 탄두리 집에서 후퇴했다.

터키의 와인 브랜드인 SUVLA 와인만 전문으로 파는 와인 가게. 여기도 아직 셧다운. 체리 잼도 그렇게 맛이 있다 하기에 한 통 집으로 사가려 했건만, 역시 이곳도 12시 훌쩍 넘어서 해가 중천에 뜬 이후에 와야겠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침부터 서둘러 유럽으로 나오는 애엄마 라이프의 시계는 불야성을 이루는 탁심의 상점가의 시계와 다른 패턴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겠는가? 세상이 나에게 맞춰주지 않은 순간에는 내가 세상에 맞추어 살수밖에 없다. 이 시간에 문을 연 곳은 아침 밥하는 레스토랑, 카흐발트집 뿐이다. 이 선생에게 물어보니 아침식사로 유명한 카흐발트 집이 가까이에 있단다. 그녀도 나처럼 아침을 허술하게 먹고 나온 게 분명하다. 어서 갑시다. 허기도 지고 이스탄불 날씨치고 오늘은 좀 쌀쌀하다. 상점가 문을 여는 동안, 따뜻하게 몸도 녹이고 배도 채울 곳으로 가봅시다.




카흐발트 먹으러 가다가 만난 따뜻한 색감의 세라믹 공방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잠시 들려 공방에서 어떤 도자기를 만드는지 구경도 해보고 공방 주인장의 분위기도 파악해 본다. 흙의 종류 때문인지 굽는 방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도자기의 색이 참 다감했다. 연한 베이지 색에 살구빛 한 스푼을 더 넣었나? 아기의 살색깔이 났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이 빛깔이 고운 도자기를 내 손으로 구워 볼 참이다.

차가운 날씨에 덜덜 떨다가 카흐발트 집에 들어오니 훈훈한 온기와 빵냄세가 좋다. 터키 동부의 반 호수가 있는 지역에서 치즈와 꿀 같은 식재료를 공수해 온다는 반 카흐발트. 카이 막 전용빵과 에크멕, 달걀과 신선한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올리브, 여기에 차이를 곁들이면 터키식 아침인 카흐발트 한 상이 차려진다. 그야말로 꿀맛이다. 얼어붙었던 몸이 스르륵 녹아버리자 그대로 그만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고 수다가 늘어져 버렸다. 이러다 오늘 둘러보기로 한 지한기르 반도 못 보고 집에가는 페리를 타야할 판이다. 이 선생과 나는 이야기가 끝이 없다. 주로 이스탄불의 관한 이야기가 많고 사는 이야기 이 얘기 저 애기 주제도 다양하다. 수다에 팔린 정신 챙기고 다시 지하기르 동네 산보 길을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어서!




원래 나와 이선생은 탁심광장에서 만나 오늘의 핵심 지역인 지한기르를 두루보고 카라쿄이까지 내려가 페리 선착장에서 헤어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한기르인 줄 알고 실컷 누비고 다니던 동네가 지한기르가 아니란다. 우연히 만난 엔틱 소품 상점 주인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기는 지한기르가 아니라 추쿠르주마라는 곳이란다. ㅎㅎㅎ 지한기르는 옆 동네라고 하신다.


 그런데 추크르주마 이 동네 내 마음에 쏘옥 든다. 맛있는 식당, 분위기뿐만 아니라 커피 맛까지 좋은 카페,  오스만 시대의 골동품점, 중국과 인도 여러 유럽의 나라에서 수입한 엔틱 가구와 소품이 가득한 상점들. 자미와 하맘, 박물관, 갤러리. 1800년대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이 골목골목 즐비한데 이탈리아 어느 뒷골목 같기도 하고, 원래 가려했던 지한기르는 아니지만 마음에 쏘옥 드는 새로운 골목을 만났다. 여행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발길 닫는 대로, 자유를 만끽하며 우연을 즐기는 것인가 보다. 지한기르가 아니면 어떤가 우리는 오늘도 역병의 두려움을 이기고 이스탄불에 있는 자신을 확인하며, 두 발로 온종일 이 길을 걸었으니 부족할 것이 없다.

추쿠르주마 어느 한 모둥이 골목에서
동양풍으로 가득한 상점, 벨을 누르는 주인장이 나오셔서 문을 열어주셨다.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잘 꾸며진 하맘, 이 동네에는 동네 공중목욕탕부터 고급 하맘까지 다양한 하맘을 볼 수 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들어간 갤러리
추쿠루주마에서 갈라타가 보이는 어느 골목길에서, 터키인도 외국인에게도  포토스폿이다. 핸드폰을 꺼내 들어 멀리 갈라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여럿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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