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가는 것은 성공 공식이 아닌 시대
‘상위 1%’ ‘상위 10%’, 우리는 이런 표현에 익숙해요. 이런 표현은 계층으로 구분된 피라미드 형태의 그림을 연상시켜요. 비교 경쟁이 전제되어 있고 어느 지점에 있든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들이 존재해요.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가는 것이 모두에게 주어진 지상 명령이에요. 그냥 잘하는 정도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배워요. 나와 같은 비교 집단에 속한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잘한다고 인정받아요. ‘줄 세우기’는 엄마 시대 문화예요.
한국이 개발도상국일 때는 다른 나라의 제품을 똑같이 모방하는 부지런함과 꼼꼼함으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한국이 어느 정도 잘살게 되고 더는 보고 베낄 게 없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창의력 부재를 깨닫게 되었어요. 따라가는 능력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것을 만들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 세대도 경험하며 살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떨까요? 그때도 열심히 남의 뒤를 따라 오르는 게 꼭대기로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인 세상일까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4차 산업혁명시대니 인공지능 시대니 하는 별명이 붙은 시대예요. 그 시대는 엄마가 경험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한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예견되고 있어요. 그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의 유형으로 꼽히는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해요.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남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남을 따라가는 사람, 남과의 비교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세상은 지나갈 거라고 예측되고 있어요.
남의 아이를 따라가는 엄마
지금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하는지 발견할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하고 있어요. 엄마가 알아보고 엄마가 결정하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아왔어요.
위험해 보이는 곳을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넘어서서 다치기 전에 이미 온갖 종류의 보호 장치들이 갖춰져 있어 넘어짐의 고통도, 털고 일어나는 법도, 넘어지더라도 다시 달려갈 용기도 배우지 못했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아이가 혼자 걷고, 혼자 먹고, 혼자 책 읽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며 도와요. 처음 걷던 순간, 처음 말을 하던 순간, 처음 책을 읽던 순간, 처음 자전거를 타던 순간에 아이 얼굴에 번진 미소는 자랑스러움이에요.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하면서 아이는 자랑스러운 성취를 이뤄요. 그 성취감은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평생 자존감과 자신감의 바탕이 될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겨우 자리 잡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상처를 받기 시작해요. 바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자신의 엄마에 의해서요.
학력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엄청난 자산임이 틀림없어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확실히 편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순간에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에요. 그 힘은 자존감과 자신감, 사랑받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올 거예요.
내 아이를 따라가는 엄마
엄마는 아이가 알아서 잘해주길 기대해요. 자기 주도형 영어, 자기 주도형 학습을 하기 바라요. 그런데, 엄마 자신은 자기 주도형으로 살지 못하고 있어요. 옆집 엄마를 따라 하고 있어요. 아이는 엄마가 하라고 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엄마가 하는 대로 해요.
엄마가 자기 주도형 육아나 교육을 하지 못하면 아이도 자기 주도형으로 성장할 수 없어요. 자기 주도형 아이를 원하면 엄마부터 자기 주도형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자기 주도형 아이로 성장하면서 아이 스스로 자기식 영어공부를 할 수 있어요.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아이표 영어’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