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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Dec 24. 2019

아이  없는 여자는 친구  없이 노는 법을 배운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겉돌게 된다. 자격지심이라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자존감을 박박 긁어내 그 흔적이라도 찾아보고 싶지만, 자존감 그 세 글자는 내 안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내 또래들, 비슷한 나이를 가진 여성들의 대화 소재는 상당히 한정된다. 나도 사실 놀랐다. 여자들은 모이면 왜 다 똑같은 이야기만 할까. 같은 여자인 나도 참 신기하다. 대부분이 아이 이야기다. 같은 또래 아이들을 놀리면서 엄마들은 친구가 된다.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자연스레 유대를 형성한다. ‘댁의 아이는 몇 살인가요, 몇 학년인가요’ 상대방에게 다가갈 때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질문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낯선 자리에서 만난 친절한 여자들은 흔히 마음의 문을 열 때 이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없는데요.”


마치 보험상품을 팔려고 전화한 상담원에게 “저 지병 있는대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사람들은 잠시 당황하다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나는 재빨리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지만, 결혼한 여성들에게도 일종의 사회생활이 존재한다. 시댁 행사들 먼 친척의 결혼식, 남편 직장에서의 모임, 부부동반 모임들, 여자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는 나는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거나, 조금 무례해 보일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핸드폰에 열중한다. 그러면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아이가 없는 여성이 아이가 있는 여성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남과 북이 하나 되는 것만큼이나 동이 서에서 먼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없는 삶은 나의 대인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년 넘게 맵고 짠 우정을 유지해오던 친구가 있었다. 서로의 흑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못할 말이 없는 그런 친구였다. 우리는 각자 결혼을 했고, 그 친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나는 난임으로 전전긍긍하며 살던 때였다. 우리의 우정은 점점 그 힘을 잃었고 가끔 만나기는 했지만, 이전에 누렸던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없었다. 희미해진 우리의 우정은 그 친구의 이 한마디로 막을 내렸다.

“그래 네가 애 셋 키우는 수고를 어찌 알겠니?” 육아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이었던 그 친구는 육아 무식자인 나로 인해 터져 버렸다. 아마 나의 ‘한가함’이 그 친구의 분노를 자극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서로의 sns로 소식을 확인하는 관계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몇 번 더 있었다.

대학 동기 결혼식이 있었던 몇 년 전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식사를 하기 시작한 동기들은 간단한 안부도 없이 아이 이야기로 돌진했다. 여자 동기 5명이 함께 앉았던 테이블에 아이가 없는 사람은 나와 최근에 결혼한 다른 동기 한 명뿐이었다. 당시에도 나는 불임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시기였다. 첫째는 남편에게 맡기고 둘째를 데리고 왔다는 한 친구는 오는 길에 엘리베이터가 왜 이렇게 머냐부터 시작해서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를 사정없이 쏟아놓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 친구를 막지 못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자리가 불편한 건 나뿐이었다. 식사 내내 아이 이야기를 해 대는 그 친구가 못마땅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가장 친하다고 여겼던 한 친구에게 불평을 털어놨다가 되려 마음에 큰 자상을 입었다. 정색하며 그 친구는 말했다. “야 너 왜 이렇게 유난을 떨어”


그 친구 역시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 후로 나는 그 친구들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가갈 수 없는 멀고도 먼 존재가 되었다. 나도 새로 친구를 사귀고 싶고, 또래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 가식이든 아니든 또래 여자들과 몰려다니며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웃고 떠들며 지내고 싶었다. 아이가 없다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척 편안하고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휩쓸려 다니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혼자 하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저질 체력인 나에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체력의 큰 손실이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선 무수한 상처 자국들이 보인다. 지금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간다. 혼자, 내가 나갈 수 있는 시간에 나간다. 혼자. 그 삶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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