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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Jan 05. 2020

아이 없는 여자의 모성애는 갈 곳이 없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포기했다.’ ‘내려놓았다’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해도, 내 마음이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힘든 게 바로 여자 로서의 본성 인 모성애를 다루는 일이다. 

여자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열망과 사랑을 주고자 하는 열망을 동시에 뿜어내는 존재 같다. 욕심꾸러기같이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애착을 느낄 대상을 찾는다. 나는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버스에서도 엄마와 함께 탄 아이가 있으면 지나치지 않고 꼭 살핀다. 아이들의 표정이나 말투 같은 것들을 보고 있는 게 참 좋다. 


아이가 없는 내게 가장 가까운 애착의 대상들은 조카들이었다. 고맙게도 나의 형제자매들은 내게 다섯 명이나 되는 조카들을 선물로 주었다. 결혼 전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는 명절마다 조카 볼 생각에 집으로 달려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이 살아가는 동안 네 명의 조카들이 태어났다. 이제 내게 조카들은 ‘안 보고는 못 사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들의 엄마들에게 아이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받아보며 벅찬 행복을 느꼈다. 명절마다 때때마다 조카들에게 옷이며 장난감 같은 선물들을 안겼다. 이런 일로 남편과 마찰도 있었다. 남편 눈에는 나의 조카들 사랑이 너무 지나쳐 보였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조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했다. 나의 짝사랑은 깊어져만 가는데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보면 못 알아보는 아이들을 보며 서운했고, 하루 재밌게 놀아주면 또 친해지고 그렇게 정을 떼었다 붙였다 하기를 반복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조카들 사진을 끌어안고 지내기를 한동안 했던 것 같다. 멀리 살아서 보고 싶어도 자주 볼 수 없는 게 참 힘들었다. 조카들이 다섯 명으로 늘어나자 전부 챙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누구 한 명만 예뻐하면 혹시 샘을 내거나 섭섭하지 않을까 신경도 쓰였다. 그러다가 나의 조카들 사랑도 서서히 힘이 빠져갔다. 아무리 예뻐도 조카들이 내 아이가 될 수는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이 심하게 고단해지면서 나의 조카 사랑도 그 과열 상태에서 벗어났다. 


내 모성애의 다음 타깃은 남편이었다. 한 동안은 남편에게 심하게 집착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남편 위주로만 맞췄다. 주변에서 아이가 없어 남편에게 집착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그때는 그 말이 나를 일깨우지 못했다. 상처만 남겼다. 최선을 다해 남편을 돌보고 아꼈다. 나는 건강한 성인 남자인 남편을 내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처럼 다루려고 했다. 남편에 대한 사랑 역시 과열 상태에 빠져들었다. 남편은 내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 진지하게 말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내 열심에 도취되었고 그 만족에서 심리적 보상을 얻고 있던 나에게 남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자 시작된 남편에 대한 집착은 만족은커녕, 점점 분노라는 처참한 감정에 빠져들게 했다.

“난 당신을 위해서 이만큼이나 하는데 당신은 왜 이것밖에 못해” 나는 그렇게 혼자 달리고 혼자 지쳤다. 모성애를 주체하지 못해 남편에게 집착하고 분노하고 마음의 바닥을 치고 또 쳤다. 내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는 그릇된 욕심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엄마놀이를 하지 않는다.  마흔을 맞이하면서 한동안 많이 아팠다. 남편의 돌봄을 받으며 나는 남편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에게 모성애가 있는 것은 아이를 키우고 지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아이 없는 여자의 모성애는 어디에 써야 할까. 갈 곳 없는 내 모성애는 절제와 인내를 배워 나가는 중이다. 아이가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모성애가 갈 곳을 몰라 방황하고 있다. 아이 없는 여자에게 모성애는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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