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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Jan 02. 2020

아이 없는 여자도 나이를 먹는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에 여자분들은 손사래를 친다. 한 살 더 먹는 게 싫으단다. 나 역시도 반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태어난 해를 뒤바꿀 마법은 어디에도 없다.

나이 든다는 게 좋은 것도 있다. 나이 들수록 나라에서 주는 혜택이 많아진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위내시경을 공짜로 받았다. 마흔을 넘기면서, 나이 듦에 대한 초조함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불안감이 종종 찾아온다.

바로  ‘아이도 없는데 늙어 보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다.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은 보통 아이의 나이로 그 나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나는 가끔 나이가 몇 살 이냐는 집요한 질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이 키우느라 뱃살만 늘고 얼굴에 주름만 생겼다며 속상해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불안하다. 내 나이 듦에 대한 마땅한 핑곗거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출산을 하면서 여성은 몸매가 달라지고, 수명이 줄어든다고 한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수고를 보면 엄마들의 말이 결코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어릴 때는 손이 많이 가서 학교에 입학하면 아이와 기싸움에 엄마들은 늘 그렇게 에너지를 쓰는데 세월이 비껴갈 리가 없다. 세월은 정면으로 찾아오고, 엄마들은 그걸 맞아들인다. 그런데 아이 없는 나 역시 세월이 찾아온다.


얼마 전 집에서 잠옷 바지를 입고 앉아있는데 남편이 내 아랫배를 유심히 보다 묻는다.

 “배에 옷 집어넣었어?” 작은 슬링백을 바지 안에 맨 것처럼 뱃살이 볼록하다.

 “나잇살이야” 달리 둘러댈 변명거리가 없다. 이게 언제 이렇게 들어차 있었지. 이상하게 작년 부 터전에 입던 바지가 도저히 잠기지 않는다. 먹는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운동도 조금씩은 하는데 이상하게 살이 찐다. 바지들을 다시 사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다. 사실 옷을 갖춰 입고 나갈 일이 별로 없다 보니 편한 옷만 입는다. 그러다가 내 배 안에 슬링백이 생겨난 걸 놓쳐버린 것이다. 살이 저절로 빠져 주길 기대하는 건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짐을 지우는 것이다.


작년부터는 얼굴 크림을 바르면서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도 생겼다. 이전에는 세수하고 대충 로션을 바르던 게 다였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얼굴과 목에 생겨가는 주름과 맞서기 위해 조금이라도 애를 써본다.


가끔씩 만나는 조카들을 보면서 아이들 키가 이렇게 쑥쑥 자라나 싶어 깜짝 놀란다. 자라는 아이들과 비례해서 키우는 엄마들도 나이를 먹어가는 게 눈에 띄게 느껴진다. 엄마들은 그런 모습이 되려 자연스럽다. 세월의 흔적을 맞아가며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편안해 보인다. 그런데, 아이가 없는 내게도 세월의 흔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은 앞으로 아이를 낳는다면 어떨까를 상상한다. ‘결혼 10년 넘었는데 아이가 없어요’라는 내 말에 주변에서 으레 따라오는 멘트가 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이가 없다가 10년 만에 아이를 낳았어요..’ 참으로 따듯한 위로의 말이지만, 이젠 내게 너무 진부한 위로가 되었다. 그때마다 가끔 나는 상상한다. ‘이 나이에 아이를 낳고 키우면 내 관절들 내 허리는 과연 제자리에 있어줄까.’ 싶은 두려움부터 시작해서 아이 유치원에 가서 학부모들과 앉는 상상까지 흘러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나는 대략 15살 이상 젊은 엄마들과 앉아있다. 그 속에서 나는 젊고 예쁜 엄마들 옆에 앉아 나이를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내 모습에 쓴웃음이 난다. 상상 속에서 조차 나는 불안하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과감하게 투자하며 젊음의 유효기간을 늘려 가기에 나는 가진 것도 그럴 만한 에너지도 없다. 그저 다가오는 늙음을 격하게 환영하지는 못해도, 조금씩 껴안아가며 살아내고 싶은데, 아이가 없다는 게 또 걸린다. ‘노후’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시작할 나이가 되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놓고 싶어도 놓아지지 않는 불안 때문에 몸마저도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 여자도 배가 나오고 주름이 생긴다. 아이가 없다고 세월은 봐주지 않는다. 아이 없는 여자에게 나이 듦은 더더욱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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