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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Dec 31. 2019

아이없는여자도 편하게 산부인과에 가고싶다.

산부인과는 결혼 여부를 떠나서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야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주로 정기검진 때문에 가지만, 여성들이 자주 겪는 부인과 질환 때문에 가기도 한다. 산부인과에 가면 문진표를 작성한다. 초경 시기, 지난달 생리 시기, 출산과 임신 내력을 기록해서 간호사에게 주면, 의사 면담 시 담당의사는 이를 참고로 환자를 진료한다.


불임 클리닉에서 검사를 받을 때도 문진표를 작성했었는데, 거기엔 결혼한 연도를 적는 란이 있었다. 내 경우는 결혼기간과 불임기간이 일치했다. 불임 클리닉에서 나는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원인이라도 찾아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원인이 없는 불임이었다. 자연임신을 시도하다 시험관을 시도해보자는 담당의의 말을 들었지만 그 후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 후 몇 년간 자연임신을 기대했지만, 임신은 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다시 갔어야 하는데,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병원에 가면, 일단 불임시술에 대한 권유를 받는다.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고 그 외에도 소화불량, 불면증, 만성질환까지 찾아와 고전하고 있었다.

 ‘아이가 이런 몸에 찾아와 줄까’


이런 세세한 사정을 설명할 틈도 없이 산부인과에서 불임시술을 권유받았다. 내 나이가 당시 삼십 대 후반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의사 선생님들은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성공확률은 더 떨어집니다.”

 고3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입시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때마다 초조함과 불안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궁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그 비참함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골병원을 정해 다니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즈음에 여성들에게 자주 찾아오는 염증성 질환에 걸렸다는 신호가 왔다. 급하게 병원을 방문해 항생제를 처방받아야 했다.


전에 갔던 병원에 가도 되지만, 불임시술에 대한 권유를 또 받아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이 나이 되도록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보는 의사 선생님들 앞에서 또 한없이 작아져야만 하는 순간을 피하고 싶었다. 결국 인터넷으로 병원을 검색해보다 이름이 너무 예쁜 산부인과를 찾았다. 개인병원인 것 같았고, 여자 의사 선생님이라 더 좋았다. 나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 병원은 개인병원이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좀 있는 ‘불임시술’을 하는 병원이었다.


연배가 있어 보이시는 여의사 선생님이셨다.  방금 시술을 하고 나온 듯한 환자와 가족에게 좋은 마음을 갖고 마음 편히 기다리면 좋을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약을 처방받는 일이 급했기에 접수를 하고, 문진표를 작성하고 간호사의 호명을 기다렸다. 간호사의 호명에 진찰실로 들어간 내게 의사 선생님은 다짜고짜 흰 종이를 내밀었다.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이 앉은자리에서 내 쪽으로 종이 한 장을 던졌다.

“지금 나이가 몇인데 이러고 있어? 정신이 있는 거야? 이거 보고 신청해서 당장 불임시술 시작해요”


의사 선생님이 던진 종이는 구청에서 지원하는 시험관 시술 지원에 대한 안내서였다. 이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동안 만나온 선생님들은 매우 상식적인 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큰 타격이 올 줄은 몰랐다. 선생님의 밝은 미소는 시술받는 환자만을 위한 것이었나 보다.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그런 비난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건가. 하지만 당장 약을 먹는 것 좋겠다는 이성이 발동하여 나를 주저앉혔다.

“저는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니라, 불편한 곳이 있어서 왔어요.”

모기만 한 목소리가 입에서 간신히 새어 나왔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불임시술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정신없는’ 행동이라 불린 말한 일인가. 그렇다고, 맘이라도 편히 지냈다면 아마 억울함은 좀 덜했을 것이다.


의사는 그제야 검사실로 들어가라고 고갯짓을 했다.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 들러 약을 기다리던 그 몇 분 동안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해보려고 애써봤다.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불임시술을 하지 않는 나를 대역죄인 마냥 몰아붙이는 그 선생님은 저출산 문제를 걱정해서 그러신 거 같지는 않았다.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성보다 강한 본성이 있을까. 거스르려고 애써봐도  거스러지지 않는 그 본성을 스스로 외면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내 몸 상태가 좀 더 나아지길 기다려보지만, 그것 역시 뜻대로 되질 않고 있었다. 그나마 약사님의 복약 설명이 없었다면, 나는 눈물을 삼킬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나는 산부인과 공포증이 생겼다. 건강검진을 받으며 산부인과 검진을 받을 때는 늘 긴장과 방어태세를 장착했다. 담당의가 “임신”이라는 단어만 말해도 나는 경직됐다.

“임신 계획이 있으시다면 불임센터를 방문해보세요.”

다행히 건강검진과에서 일하는 의사 선생님들은 불임시술을 시도하지 않는 여자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하고 권유로 마무리를 했다. 눈으로 드러난 수치만으로 환자를 판단해야 하는 의사들의 입장도 있고, 병원 수가라든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의사들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불임시술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거다.


그렇지만,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결국 나다. 그 책임을 덜어주려고 그런 비난으로 나를 흔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산부인과를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새롭고 낯선 병원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여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한 병원을 알게 되었다. 그 의사 선생님은 내 몸의 컨디션과 현재 상황을 물어보시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하늘이 주시는 선물이에요. 나는 불임시술 권하고 싶지 않아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아이가 있다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부부 두 사람만 행복하게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


나는 안도했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시술이라는 방법을 택하고 힘든 과정 끝에 아이를 품에 안는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엄청난 비용과 산모의 건강을 담보로 도전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나마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횟수를 다 채우고도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 재정적인 부담으로 계속 시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내 주변에서 시술을 반대하신 분을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늘 나의 건강을 염려하며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 감사한 분이었다. 나보다 열 살가량 연배가 높으신 분이셨다. 내 나이쯤 몸이 좋지 않아 어렵게 시술에 성공하셨다가 5개월째 쌍둥이를 떠나보냈다고 했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깊어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몸이 좋지 않은데 무리해서 하지 마세요. 그냥 건강 잘 챙기면서 지내요 그땐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아요.”


난임문제에 대한 대안을 가진 좋은 병원들이 참 많다. 자녀를 간절히 원하는 분들이 그곳에서 귀한 생명을 얻게 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녀가 주는 행복을 누리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길 응원한다. 다만 그것을 수용할지의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주셨으면 좋겠다. 각자가 속한 상황과 여건이 참 많이 다르다.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자족하는 법을 고되게 배워 나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메마른 상황 속에서 풍성함을 찾아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이 있다. 아이가 없는 여자도 산부인과에 마음 편히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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