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시기가 길어지면서, 늘어난 것이 있다면 죄책감이다. 아이를 여자 혼자 낳을 수는 없다. 부부가 결혼생활을 이어갈 때 주어지는 결실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통해서다.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해야만 하는 의무를 해내지 못한, 모자란 존재 부족한 존재. 당시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린 평가였다. 사람들 앞에서도 늘 떳떳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했다.
남편이나 시댁의 눈치를 보게 되고, 의기소침해지는 게 습관이 된다. 남편에게 늘 미안해했다. 내가 부족해서 남편이 아이를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남편이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벌써 아빠가 되었을 텐데.. 어리석은 생각 같지만,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런 의기소침함은 결혼생활에도 조금씩 균열을 만들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아이를 낳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라며 나를 위로했다. 나중에는 절규하다시피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지 아이가 아니야.’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한 나 자신을 또 자책했다.
이런 자책감에서 벗어나기란 정말 어려웠다. 자책감이 내 몸을 심각하게 망가뜨린 다음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 그것이 내가 그리는 인생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나는 결혼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있을까 다시 고민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다. 아이 없는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이 없는 삶이지만 풍성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이 이제 나를 지배하는 생각이 되었다.
아이 없는 여자는 다른 사람에게 죄책감을 주기도 한다.
나와 비슷하게 결혼하거나 조금 늦게 한 지인들은 저마다 임신을 하거나 출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조급하지는 않았다. 다 각자의 때가 있겠지 라는 말을 되뇌며 기다렸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남편 친구들은 이제 학부모가 되고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낸다. 나는 그들과 이제 다른 그룹이 되었다. 주변에서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오랫동안 알아온 소중한 사람들이고, 여동생이 없는 내게 친동생 같은 존재들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기를 기다리는 같은 그룹이 되었다. 어느 날 그 동생 중 한 명이 너무나 심각하고 어두운 얼굴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찾아왔다. 결혼생활에 대한 고민상담 같은 것을 기대한 내게 동생은 말했다.
“ 저 임신했대요.”
너무나 축하받고 축복받을 일 앞에 그 친구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본인에게는 축하받을 일이고 너무나 기쁜 소식일 텐데 미안해하며 그 말을 하게 만든 나 자신의 존재가 참 버겁게 느껴졌다. 부러움이라는 감정도 올라왔다.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당황한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배려해서 말해준 동생의 깊은 배려심에 불편함을 줄까 봐 온 힘을 다해서 축하해주고 기뻐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동생들의 임신소식을 건너 건너 전해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보다 먼저 임신했다고 서운하거나 섭섭한 마음은 없었다. 되려 젊고 건강한 그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다만, 아이 키우는 재미로 살아가는 동생들이 혹시 나로 인해 불편해할까 봐 , 마음껏 수다 떨지 못할까 봐 함께 만나는 일은 자제한다. 지금도 그 동생들의 소식을 SNS를 통해서 듣고 있다. 동생들을 닮은 예쁜 아기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보기 좋다.
이제는 죄책감에 내 삶의 소중함을 빼앗기지 않을 생각이다. 아이가 있든 없든 삶 속에는 누릴 수 있는 것은 많을 것이다. 그것들을 빠짐없이 찾아내겠다. 죄책감은 이미 충분히 느껴보았으니까. 이제는 삶의 풍성함을 느끼며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