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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Dec 26. 2019

아이 없는 여자는 시간 부자가 아니다.

아이 없는 여자는 늘 시간이 많다는 오해를 받는다.

“집에서 뭐하세요?”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서 이전에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질문을 하진 않는다.

처음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뭐 이런 걸 물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나.'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장보고 그런 비슷하고 큰 의미 없는 일들의 무한 반복. 그런데 이런 질문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정말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내 시간 사용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까지 아이로 치는 결혼한 여자들의 세계에서 아이가 하나뿐이라는 사실. 자기 손으로 먹고 씻고 아침에 나갔다 밤늦게나 들어오는 그런 손쉬운 아이 돌보기를 제외한 그 엄청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엄마들은 궁금해했고 그 궁금함에는 약간의 부러움마저도 묻어나는 듯했다.


그제야 엄마들의 시간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임을 알게 됐다.  씻기고 밥 먹이고 옷을 입히고 등원시키고, 놀아달라고 보채는 아이가 없다면, 하원 시간에 맞춰 대기 타야 하는 아이가 없다면, 그 시간에 도대체 뭘 할까? 이것이 엄마들의 시간 계산법이었다.

 이전에 나는 ‘시간 부자’로서의 내 위치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시간이 많은 여자가 아니라, 남들이 평범하게 낳고 키우며 살 비비고 입 맞출 수 있는 때론 귀엽고 때론 미운 아이가 없는 쓸쓸한 여자라고만 생각했었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삶은 무척 고단해 보인다. 자신을 돌볼 시간은커녕, 갓난아이 일 때는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푸념이 내겐 그저 배 부른 소리로만 들렸었다. 그녀들은 나를, 나는 그녀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결혼한 이후 매달 임신을 기다리며 또다시 임신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절망하다 또 그다음 달을 기다리고 또 절망하고를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 그저 배란일과 배란일이 아닌 날이라는 두 가지 시간 개념만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들 동안 ‘왜 나는 아이가 없을까’라는 단 하나의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이가 우리 가정의 행복에 절대변수가 아님을 인정하고, 남편과 둘만의 가정을 꾸려나가기로 마음먹은 다음부터 내게 주어진 잉여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심할 땐 넷플릭스도 보고, 자기 전엔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빵도 굽고 잼도 만들고 비누도 만든다. 몸이 아프지 않은 날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이다.


나의 이런 잉여시간을 매우 반가이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시댁 어른들, 친척분들, 일손을 찾고 계신 분들에게 나는 늘 환영받는 존재다. 돌볼 아이가 없는 나는 명절 전 부치기를 도맡아 한다. 내가 속한 곳이 어떤 곳이든 시간 많고 한가한 사람에게 맡겨질 사소하고 성가신 그런 역할들은 감당할 마음이 전혀 없던 내 차지가 된다. 달리 거절할 이유가 없다. ‘시간 괜찮아요?’라는 질문조차 생략된다. 이런 분들의 강력한 기대감을 물리칠만한 시급한 이유가 없다. 어르신들에게 아이가 없는 나는 만만하고 불러내기 좋은 아랫사람이다.


정말 아이가 없기 때문에 시간 부자로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이가 없다고 해서 아이가 있는 사람보다 몇 배의 잉여시간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없는 사람도 밥은 해 먹고 산다. 나는 위가 형편없이 약하다.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식품은 내게 가까이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번거롭게도 음식을 일일이 해 먹어야 한다. 아이가 없는 사람도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남편 와이셔츠를 다려야 한다. 아이가 없는 사람도 분리수거를 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필요한 것을 싼 가격에 사기 위해 안구건조증이 올 때까지 핸드폰을 검색한다. 기저귀나 분유를 정기적으로 사는 것처럼 아이가 없는 사람도 쌀을 사고 달걀을 사고 휴지를 산다. 시댁이나 친정부모님들의 컨디션도 체크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들은 다 비슷하다.


가장 크게는 감정의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든다. 크게 악의가 없는 평범한 어른들의 지나가는 한마디가 내 마음을 사정없이 헝클어 놓을 때가 여전히 있다. “자식이 하나는 있어야지” “입양이라도 하지 그래” 대게는 이런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말들이다.

 나 자신을 다독이고 일으켜 세우고 마음을 다잡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내 마음의 절벽에서 다시 돌아서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웃으며 아침을 맞고, 저녁엔 뭘 해 먹을까 같은 평범한 고민으로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나를 집어삼키려는 우울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여자는 결코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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