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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Sep 27. 2024

입원과 상담(2)

원래 이맘때쯤 H씨와 상담하기로 돼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어 전화로 상담을 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한산한 환자 보호자 탕비실에서 그와 통화를 했다.


...


입원을 하셨다고요?


피를 많이 토해서 입원을 했고요. 원래 비결핵항산균 폐질환이 있었는데 악화된 것 같아요. 치료약이 독해서 왠만하면 안 먹으려고 미루다 며칠 전부터 먹고 있어요.


지금 비결핵항산균에 감염돼서 상태가 안좋아졌다고 생각하는 거죠? 비결핵항산균이라고 하면 결핵은 아닌데 산에 저항성이 있는 균이란 뜻인데 우리 주변에 항산균은 많거든요. 결핵균과 비슷하긴 한데 어떤 균인지 명확하게 모르겠으니까, 따로 이름을 안 붙이고 비결핵항산균이란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실제 치료할 때도 결핵약을 써요. 결핵약에 비결핵항산균도 반응을 해서 그런가봐요. 제 생각엔 아직 이 병에 대한 연구가 깊게 안 이뤄져서 그나마 효과를 보이는 결핵약을 쓰는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약을 먹어도 재발할 가능성이 있대요.


비결핵항산균인데 결핵약을 쓴다, 그것도 웃기는 거거든요. 결핵이 늑대고 비결핵항산균이 개라면 늑대는 사람을 해치니까 죽인다지만 개는 멍멍 짖기는 해도 별 탈이 없으니 놔둬도 되잖아요? 이건 개도 늑대랑 같은 개과니까 다 죽이자는 거랑 똑같잖아요. 본인이 객혈이나 기침을 하는 건 몸 상태가 안좋아졌단 걸 뜻하는 거지, 그게 반드시 비결핵항산균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거든요. 객혈하고 오한들고 살은 빠지는데 검사해보니 결핵균은 안 나왔고, 의사들은 이 증상이 균 때문이라고 보는 입장이니까 비결핵항산균이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닐까요?


우석씨가 지금 피도 토하고 기침도 나고 몸에 힘도 없긴 한데요. 겁먹지 말고 걷다가 쓰러질 각오를 하고 죽기살기로 매일 두 시간씩 산을 오르면, 한달 후 쯤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비결핵항산균이 확 퍼져서 병이 더 심해질까요, 아니면 균이 꼼짝 못하고 가만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면역력이 올라가서 약을 안 먹고도 증상이 좋아지길 바랐는데, 점점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 증상이라는 자체가 폐 상태가 안좋고 폐에 염증이 있단 걸 말해주는 거지, 비결핵항산균때문은 아닐 수도 있거든요. 어쨌든 우석씨가 몸이 안 좋다고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내 몸의 증상과 부딪쳐보자, 이런 마음을 가지고 매일 운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너무 힘들어서 정신을 잃거나 길에서 픽 쓰러지는 일이 발생할까요? 안 발생할까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예전에 체중이 42킬로 나갈때도 밖에 나가서 운동을 했는데 한번도 쓰러진 적은 없었거든요. 저는 비결핵항산균에 감염됐고 병이 진행되고 있으니 이제 자연치유는 어렵고, 약을 쓰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운동을 해도 좋아질지 확신이 없다고 답한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죠. 내 말이 그 말이예요. 이제는 증상에 대한 자기 마음을 조금 읽으실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본인은 비결핵항산균때문에 정상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아주 강한 믿음을 표현했던 거죠. 지금 상황은 본인이 병에 걸렸다고 믿으니 아프게 되는 '믿는대로 이뤄지소서'란 상황인데, 우석씨는 몸상태가 워낙 안좋았기 때문에 어떤 병이 생겨도 어색할 게 없는 상황이거든요.


약 안먹고 운동으로 좋아질 수만 있다면 무조건 운동하죠. 운동으로 병을 극복한다는 게 왠지 열혈스포츠만화에 나오는 얘기 같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 날씨가 춥지만 옷 두껍게 입고 마스크 쓰고 산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땀 푹 흘리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따뜻한 데 앉아있으면 참 좋은 건강법이 되거든요. 저는 의사가 아니니까 약을 먹어라 먹지마라 말은 못하겠지만 제 생각엔 이게 약 먹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치료법일 것 같은데요?


...


불과 한시간의 상담으로 병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 병원의 의사들은 비결핵항산균 폐질환이 진행되고 있으며 약을 쓰지 않으면 상태가 점점 악화될거라 보았다. H씨는 내가 겪는 신체증상이 비결핵항산균때문이 아닐 수 있으며 약 없이 운동으로 몸을 다스려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이제 약을 먹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 보였다. 


비결핵항산균은 다른 수많은 균들처럼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균이고 객혈, 가래, 기침등과 별 연관이 없을지도 몰랐다. 결핵약은 오장육부를 상하게 할 뿐 아니라 긴 시간 복용해도 재발가능성이 30%나 된다. 그렇다면 과연 결핵약을 먹는 게 치료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견디고 또 견디며 2년간 그 독한 결핵약을 먹다가, 비결핵항산균폐질환이 재발했을 때 또 2년간 약을 먹어낼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약 없이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제 아무리 힘든 운동이라해도 방긋방긋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당시에 H씨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완전한 확신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상담을 통해 병과 신체와 몸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해온 H씨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약을 안먹고 병을 나을 가능성이 있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시도라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100%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병원에 입원중이면서 의사의 입장, 더불어 비결핵항산균에 대한 의학계의 입장과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려 하고 있었다. 의사들은 나 같은 환자를 보면 의사 말을 안 듣는다고 혼쭐을 내거나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하냐며 한숨을 푹푹 쉴 것이다. 착한 의사라면 어떻게든 약을 먹게 하려고 간곡하게 설득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의사의 말을 따르는 게 아니라 몸이 나아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물어볼 때마다 결핵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상담 이후로 단 한알의 약도 먹지 않았다. 당직의사는 출혈의 위험이 있으니 침상에서 가만히 안정을 취하기를 당부했지만 나는 눈치를 살피며 병실을 빠져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길다란 타원형태의 1층 로비는 수납창구가 중앙에 있었고 주변으로 편의점, 커피전문점, 은행, 의료기기판매점, 구내식당이 삥 둘러져 있었는데 너비가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는 됐다. 나는 수액이 매달린 링겔거치대를 드르륵드르륵 밀고다니며 병원로비에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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