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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Oct 12. 2024

걸어라, 어쨌든 걸어라(2)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난 일정에 참여하면서도 매일 만 보 이상을 걸었다. 첫날에는 모임장소인 지리산 산내면에 한 시간정도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걸어다녔고, 쉬는 시간마다 짬짬이 밖으로 나와 동네를 산책하며 모자란 운동량을 채웠다. 아침 시간에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민박집에서 교육장소까지 걸어갔고, 틈나는대로 간식으로 차려진 구운계란을 집어먹고 공용냉장고에서 우유도 꺼내마시며 조금이라도 칼로리를 더 섭취하려고 애썼다.


나는 그곳에 모인 시민활동가들에게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사람들은 말수가 적고 틈만나면 걸어다니는 게 글쓰는 사람의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했다. 삶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나는 걷는 것에서 글쓰기의 영감을 얻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나는 운동량을 못 채워서 의사에게 혼날 게 걱정되기도 했고, 어떻게든 폐가 좋아졌으면 해서 틈나는대로 걸어다녔을 뿐이다.


그래서 그게 힘들기만 했냐면... 지리산에서 걷는 건 정말 감동적인 체험이었다. 내가 머룰럿던 곳은 지리산 산내(山內)면이었다. 말 그대로 산 속에 있는 마을, 풍경 그대로가 지명이 된 곳이었다. 어느곳을 가든 주변을 둘러싼 지리산의 완만한 능선과 평야위를 느긋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산그림자를 볼 수 있다. 터벅터벅 걸어다니기만 해도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반경 1.5킬로미터 이내에 편의점이 딱 한 개뿐인 이곳은 내가 지내던 곳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자동차도 얼마 없고 삶의 속도도 느린 것 같다.


둘째 날에는 자고 일어나니 창밖으로 온통 하얘진 세상이 보였다. 옆 민박집 옥상과 장독대도, 길거리의 소나무와 느티나무도, 비닐하우스와 트랙터에도 멀리 보이는 지리산에도 눈이 덮여있었다. 안 그래도 풍경이 멋진 지리산에 눈이 내린 모습까지 보게 되다니... 내 평생에 다시 눈내린 지리산을 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일정보다 일찍 민박집을 나서 활동가 N,P와 함께 교육장소로 걸어갔다. 아무도 안 밟은 깨끗한 눈길을 마주하면 귀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걸을 때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나며 발자국이 찍힌다. 사방으로 반사되는 눈빛에 눈이 시다.


전신주의 전깃줄마다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우리 셋은 운동회에서 박 터뜨리기를 하듯 눈을 뭉쳐서 전깃줄에 연신 던졌다. 제구력이 좋은 N이 눈덩이를 전깃줄에 명중시키니 쌓였던 3미터 길이의 눈이 전깃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나는 안그래도 길치인데다 온통 하얀색이니 도무지 길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 두 사람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점심은 산 중턱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먹었다. 교육장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 스타렉스를 타고 함께 돌아가야했는데 나는 운전자분께 혼자 걸어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자욱하게 깔린 구름 틈새로 파란색 하늘이 살짝살짝 엿보인다. 구름 뒷편에 해가 있어서 구름에 금빛 테두리를 두른 것 같다. 주변으로 하늘과 산과 눈덮인 계단식 논밖에 보이지 않는다. 눈구덩이를 피해가며 조심히 걸었는데도 운동화 앞부분이 축축히 젖어온다. 최정인 작곡가의 '나의 해방일지'를 듣기도 하고 대문밖에서 놀고있는 누렁이와 흰둥이를 만나기도 하며 한시간 십분쯤 걸어 교육장으로 돌아왔다. 양말까지 푹 젖었는데 여분의 신발은 없어서 발을 운동화에 반쯤 넣은 애매한 상태로 오후 교육을 들었다.


운동과 식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한발한발 힘겹게 올랐던 언덕길이 이제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몸이 오르막길과 만보 걷기에 적응을 한 것이다.


증상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기침 횟수나 가래의 양도 훨씬 줄었고, 객혈도 이따금씩 가래에 조금씩 섞여나오는 정도로 줄었다. 이전보다 피로감을 덜 느껴 일상생활이 수월해졌고 작업을 할 때 무기력도 예전보다 덜 느꼈다. 이것은 비결핵항산균 약을 쓰지 않고 운동과 식이요법만을 실천해 일어난 변화였다.


사실 기침, 객혈, 피로등의 증상만큼이나 나를 괴롭히던 건 무기력이었다. 몸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에 힘이 없었다. 직장일이든 글쓰기든 뭔가를 붙잡고 4-50분만 지나면 마음의 밧데리가 다 떨어졌고 명치가 갑갑해졌다. 그럴 때 억지로 버텨봤자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밖에나가 10분 정도 거리를 배회하고 돌아와야지만 간신히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 무기력이 운동을 시작하고 한결 좋아졌다. 


무기력은 왜 없어졌을까? 나는 스스로가 무기력해서 뭔가를 하기가 어렵다고, 하려해도 잘 안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무기력한 사람, 무기력해서 뭔가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을 해보니 운동은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한시간 반동안 동네를 뺑뺑 돌아다닐 수 있다. 길다란 언덕길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만보씩 걷고, 스쿼트도 한다. 


어라? 나는 무기력해서 뭔가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운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네?  운동을 통해 스스로가 '무기력해서 못하는 인간'이 아니라 '뭔가를 할 수 있는 인간'임을 확인했고, 그래서 무기력이 없어진 것 같았다. 스스로를 뭔가를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믿게되면서 무기력이 사라졌다는 건 애초에 스스로를 할 수 없는 인간으로 믿었기에 무기력을 느꼈다는 말과 같다. 


무기력이 없어진 건 단순히 체력이 좋아져서라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이것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무기력을 느끼던 시기에도 무언가를 해낼 힘은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단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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