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수영
수영장은 흉터를 숨기기 어려운 곳이다.
아주 어린시절에 생긴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정강이 흉터때문에 엄마는 환갑 직전에야 수영을 시작했다. 그게 엄마 몸의 최대 컴플렉스라 나는 엄마가 치마를 입은 모습도 거의 본적이 없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수십년전 상처가지고 참 유난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목 한가운데 4,5cm 가량 '한 일(ㅡ)'자로 죽 그어진 상처가 떡하니 생기고 나서야 엄마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게 됐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목, 그리고 다시 '아차'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로 옮겨오곤 하기 때문이다.
어떤면에선 수영장 만큼 내 상처에 관심없는 곳도 없다. 자유수영때는 다들 자기 수영을 하느라 수영장 레인을 돌기 바쁠 뿐더러 쉴틈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강습날은 서로 먼저 가라며 훈훈한 양보 대잔치가 벌어진다. 당장 내가 숨이차서 돌아가시겠는데 누구 목에 상처가 있는지, 디스크가 있는지, 암환자인지 알게뭔가. 특히 록쌤이 '접영으로 갔다가 바로 배영으로 오세요. 배영으로 오는게 쉬.는.겁.니.다'라며 쉴새없이 '고(GO)!'를 외치는 '오리발 데이'에는 뒷사람에게 '아이구.. 먼저 가세요. 저 진짜 힘들어서요'라며 암환자임을 내세우며 비겁하게 목에 상처를 슬쩍 가리켜본다. 그럴땐 얄짤없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아휴(헉헉...) 자기는 그래도 나보다 젊잖아(헉헉...). 먼저가(헉헉...)"
어느날 자유수영 레인 끝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옆 레인에 서계시던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갑상선 수술 언제했어?"
"6개월 전에 했어요."
"나는 엄청 피곤하던데"
"수술하셨다구요? 수술자국 전혀 안보이는데요?"
"20년 전에 했으니 그렇지! 아무튼 무지무지 피곤하니 항상 조심해야해 "
할머니는 도인같은 말을 남기시고는 물 안으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우리 대화를 지켜보던 반대쪽 레인 아주머니도 말을 걸어왔다.
"갑상선암이에요? 난 몇년 전에 유방암 수술했는데. 수술한지 6개월 밖에 안됐는데 수영을 어떻게 해. 쉬엄쉬엄해요."
평소 같은 시간에 자유수영 할 때마다 자유형 자세와 체력이 너무 좋아서 암 수술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인강습을 끝내고 레인 벽에 바짝 붙어있던 또 다른 아주머니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갑상선 암이죠? 흉터 보고 물어볼까 말까 했는데..사실 나도 10년전에 했어..내가 딸이 하나 있는데, 이번에 시집가거든. 내가 걔한테 나중에 신세지기 싫어서 건강 챙기려고 지금 수영하는건데..어휴 왜 자유형만 지금 넉 달 짼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려워."
레인 두 개 안에서 암환자 수영인 네명이 마주쳤다.
처음 암센터에 들어갔을 때 그 감정의 도가니가 생각난다. 그 감정은 '이제 당신은 암환자입니다.'라는 딱지가 붙은, 일상을 박탈당한 듯한 무력감이었다.
한 아이 엄마는 암센터의 무궁무진한 대기자 명단을 초점없이 바라보면서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아들에게 계속 핸드폰만 만질거냐며, 게임만 할거냐며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 '엄마가 너무 힘들고 아파서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서 네가 스스로 잘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할아버지는 본인이 다른 대학병원에서 고치기 힘든 병이라는 절망적인 얘기를 들었는데 이 병원에서 그나마 받아줬다며 진료실 문 밖에서 이번 진료에서 더 나쁜소식이 기다리는 건 아닌지 온몸을 작게 떨며 대기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그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아이엄마 처럼 예민하게, 그리고 한껏 긴장해 초진 진료를 기다리던 때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언니 내가 처음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의사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제가 죽나요?' 그랬어.
그랬더니 의사선생님이 웃으면서 '아니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라고 하더라. 그땐 내가 정말 죽을 것 같았거든.
머리 민 사람도 있고, 나오면서 우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 표정 지금도 기억이 나.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 보면 말해주고 싶어.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니에요. 그리고 안죽을거에요'라고."
나는 아직 완치를 기다리는 처지라 감히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비슷한 흉터로 무언가를 주저하고, 위축돼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수영장에서는 70대 할머니도, 60대 아주머니도, 그리고 30대 아기엄마도 결국에는 암센터를 나와 매일 신나게 물속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그리고 물속에서 그 지옥같은 감정들이 마법처럼 녹아내려 마치 그게 아주 오래전 꿈인양,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온 것 처럼 암 환자 네명이 서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흉터에 대해 말하는 날이 오더라고 말이다.
얼마전에 자주포 폭발사고로 온몸에 절반이 넘는 화상을 입고 전역한 이찬호 병장의 근황을 기사로 읽은적이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 병장이 화상으로 짓눌린 자신의 손을 SNS에 공개하며 남긴 말이 나에게는 그 어떤 말 보다 위로가됐다.
"그대들의 흉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겠죠. 마음의 상처든 뭐든 그 상처가 잘 아물길..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증거니까요."
수영복 밖으로 보이든, 보이지 않든 우리는 누구나 흉터 하나씩은 가지고 산다. 남들이 내 흉터만 들여다 볼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찰나일 뿐이다. 그리고 좀 들여다 본들 어떤가. 어떤 상처든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덜 아프고, 옅어진다. 그리고 그게 아물었다는 건 그동안 우리가 겪은 마음 고생이 우리에게 준 훈장이다. 내 흉터를 가장 오래 들여다 보는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엄마 얘기를 덧붙이자면 이렇다.
그 정강이 흉터가 그렇게 부끄러웠다는 엄마는 다리가 가려지는 초급용 수영복은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한 채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결국 초급반에 들어갔다. 지금은 세상에 둘도없는 새벽수영 중독자가 되어 가끔 과감한 수영복을 사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 엄마는 20년 전에 수영을 시작했어야한다고 지금도 가끔 억울해한다.
"왜그랬나 몰라. 발차기를 그렇게 해대는데 흉터가 보이겠어? 나도, 남도 다들 물에 안빠지고 살려고 발버둥 치느라 바쁜데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