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블루가 또 찾아온 건가
2025년 3월
봄이 오니 마음이 살랑살랑 순례길이 가고 싶다
3월 말이 되니 슬슬 봄이 오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두꺼웠던 옷들도 세탁을 해서 집어넣을 준비를 하는 요즘, 옷이 가벼워지니 운동을 시작해야 하나 드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속에 드릉드릉 순례길에 대한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2023년 서른아홉의 생일을 기념, 마흔을 앞두고 떠난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완주하고 다리가 시원치 않아 선뜻 두 번째 산티아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마지막 후반부는 친언니와 함께 걸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컸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나에겐 행복했던 기억만 가득했던 첫 순례길. 아마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더 미화되기 마련이니 힘들었던 건 다 까먹어서 겁 없이 다시 가고 싶어 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무릎은 크게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1년이 지난 2024년에는 우리 모든 순례자들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들에게 완주증인 콤포스텔라를 발급해 주는 자원봉사를 했다. 내가 순례길을 걸을 여건이 안된다 해도 그 설렘과 감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선하고 의미 있는 하고 싶었기에 2주간의 자원봉사는 나에게 매우 큰 긍정의 에너지와 만족감을 주었다.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매일 웃고 울었던 감동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고 내가 그 자리에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해를 넘겨 이렇게 봄이 왔네. 그리고 슬슬 순례길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봄이 왔다. 또다시 말이다.
다음은 포르투길을 걸을까 아니면 다시 프랑스길을 걸을까?
2년 전 순례길을 함께한 우리 동기분들, 선생님과 미국 아저씨, J 씨와 함께 언제쯤 새로운 순례를 시작할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모든 분들이 하나같이 다음 순례길은 포르투길을 선택하실 것 같다고 하셨는데 나는 뭔가 프랑스길을 한번 더 야무지게 잘 걸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이분들이 포르투길을 선택하고 싶으신 이유는 일단 12일 정도로 일정이 프랑스길보다 거진 3분의 1 정도로 짧아 계획하는데 부담이 덜하다는 것과 새로운 길을 걷는 재미가 크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포르투길이 그렇게 예쁘기로 유명하다니 여러모에서 순례길 경험이 있는 순례자들에게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다시 걸으신다면 내년인 2026년도에 가실 계획이라 시는데 만약에 함께 걷게 된다면 참 소중한 순례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얼마 전에 내가 사는 이탈리아로 놀러 왔던 순례길에서 사귄 동갑내기 일본인 친구 메구미와도 저녁에 와인을 마시며 순례길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는데 이 친구는 나처럼 다시 걷는다 해도 프랑스길을 걸을 것 같다고 했단 말이지. 프랑스길이냐, 포르투길이냐 봄맞이 순례길 바람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요즘, 어쨌든 올해는 내가 순례길에서 만난 분들 중 새로운 순례길을 걸으신다는 분들은 없는 것 같네 그래.
코에 순례길의 바람이 살랑거린다 해도 나에게는 아직 아픈 다리라는 신경 쓰이는 걸림돌이 있어서 순례길을 확 질러버리기엔 살짝 주저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겨울에 한국에 들어가서 용하다는 일산의 한의원에 찾아가 침도 맞아보고 일반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도 받아봤는데 두쪽에서 다 “이 다리로는 순례길을 걸으면 안 되셨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그런 길고 험한 일정 소화하지 마세요. “라는 참담한 결과지를 받아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근데 나 다리 진짜 굵고 튼튼하거든? 매번 운동회 달리기도 반대표였고 못하는 운동이 없단 말이지. 단지 첫 순례길에 앞서 가방 메고 두 달 정도 트레이드 밀에서 2시간씩 걷는 연습 하다가 오른쪽 무릎이랑 발목이 웅웅 멍든 듯하고 시린 느낌의 통증이 생겼고, 이후로 보호대차면서 순례길도 잘 완료했다고! 근데 무릎의 속사정은 그게 아니었다고 하는 의사들의 말에 아직 반만 믿고 반은 거부하는 중이다.
순례길을 완주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운동을 하면 무릎이 좀 아프고 어떤 날은 발목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푹 쉬었는데 안 낫고, 일상생활에서는 통증이 하나도 없고 여행 가서 2만 보 3만 보 걸어도 통증하나 없는 게 대부분이면 뭐 괜찮은 거 아니겠어? 짊어지고 사는 거지.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데 이게 순례길 바람 불어서 더 강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나저나 순례길 다시 걷고 싶다 진짜.
순례길이 아니라면 자원봉사는 어떨까
이번에 프랑스 생장이라면 또 다른 경험일 것 같은데 말이야
선뜻 순례길을 내지르기에는 준비물이고, 계획이고 조금 늦은 경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일단 프랑스길을 다시 걷고 싶은지, 새로운 포르투길을 걸을지 결정도 못했을뿐더러 가장 날씨 좋은 타이밍들에 엄마 아빠가 이탈리아에 2주간 오시기로 한 것과, 남편의 생일 여행, 이미 비행기 티켓팅을 해둔 서울행 계획 등 큼지막한 일정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날짜 선택하기도 영 애매했다. 그때 드는 생각이 바로 작년에 했던 순례자 사무소 봉사활동이었는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말고도 프랑스길이 시작되는 생장피에드포드의 순례자 사무소도 있었지! 하고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여권을 확인하고 마지막 도장을 찍어주고, 콤포스텔라를 발급해 주는 일을 했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시작했던 프랑스길에서 순례자여권을 발급해 주고 첫 도장을 찍어주는 자원봉사를 하면 나는 시작과, 프랑스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과 콤포스텔라 발급받는 모든 순서를 자원봉사자와 순례자로서 완성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 네이버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 웹사이트에서는 별도로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링크가 없었기에 혹시나 누가 글 올리신 게 있나 하는 생각에 검색을 했는데 엄마야. 있네? 그것도 6년 전에 까친연 카페에 정확한 연락처가 담긴 사진까지 말이야. 이건 계시다 싶어서 사진 속의 이메일로 냅다 영어로 자원봉사 의향을 밝혀 보냄 버튼을 눌렀다. 6년 전 기록이라 얼마나 절차가 바뀐 건지 혹시나 지금 사진 속의 이 분이 더 이상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일을 안 하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냥 그렇게 나는 생장에 자원봉사를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