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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에 오니 순례길이 가고 싶어졌다

어쩌다 보니 포르투

by 몽키거

2025년 4월

엄마 아빠의 갑작스러운 포르투갈행

그렇게 올해는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의 자원봉사 활동과 인연이 없는가 보다 마음의 정리를 할 때 즈음 갑작스레 포르투에 오게 되었다. 아빠가 인생을 살며 충동적인 여행도 한번 해보고 싶다며 난데없이 엄마와 함께 9일간의 포르투갈 여행 투어를 예약해 오신 거다. 이 사실을 두 분이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출발하시기 2주일 전쯤에야 언니를 통해 전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다른 나라에 사는 내가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하셔서 굳이 말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니 울 어무이 아부지가 제가 사는 유럽에 오시는데 갈 수 있는지는 어련히 제가 알아서 잘 살펴보지 않았을까요!

내가 사는 곳에서 포르투갈의 모든 도시 중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도시는 포르투가 유일했고, 그것도 매일 취항이 아닌 주 3일 취항이라 시간 맞추기도 애매한데 이거 웬걸! 비행기 날짜가 부모님이 포르투갈 2주 일정 중에 포르투에 이틀 머무시는 날짜랑 찰떡인 게 있는 게 아닌가. 내가 하루 일찍 도착했다가 부모님과 이틀을 보내고 넷째 날 아침에 부모님은 리스본으로, 나는 오후에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오기 꼭 맞는 비행기 편이 있어서 바로 가기로 결정했다. 실은 엄마 아빠 몰래 서프라이즈로 가서 놀라게 해줄까 하다가 신랑이 그런 건 미리 알아두셔야 여행사랑 조율도 하지 않겠냐는 말에 급 수긍하고 이 소식을 알렸더니 “왜 굳이 시간 내서 힘들게 오고 그래~ 우리는 투어 그룹이랑 돌아다니면 되는데~” 하시는 말소리 끝에 내가 오는 게 은근 기대되는 듯한 웃음이 맺혀있는 게 느껴진다.

2019년 겨울에 처음 갔던 포르투. 이렇게 5년 반만에 급작스럽게 가게 되었다. 근데 또 우리의 순례길이 시작되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네.


포르투는 에그타르트와 대구 요리지
동루이스 다리와 포르투의 특징을 담은 예쁜 마그넷들


에그타르트 먼저 입안에 털어 넣고 도루 강을 따라 걸어 다니며 보는 포르투는 여전히 좋았다. 동루이스 다리와 강을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리는 게 많고 많은 유럽의 도시를 다녔어도 포르투는 쉬러 오기 좋은, 무언가 휴식을 주는 신기한 도시다. 슬슬 배가 고파져 예전에 왔을 때 못 먹고 돌아간 유명한 바칼라우(대구요리) 식당인 ‘Bacalhau’를 찾아갔다. 식당 이름이 그냥 대놓고 ‘대구‘인 것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정체성과 같은 대구 요리 바깔라우는 그 요리법이 365가지 즉 1년 대대 매일 다르게 먹을 수도 있다고 할 정도이다.

유명한 곳이라 약간의 웨이팅을 기다리며 도루강이 보이는 난간에 걸쳐 앉아 있는데 센스 있는 직원이 마실 술을 먼저 주문받아 가져다준단다. 나는 포르투에 왔으니 포트와인을 마시고 싶어 직원한테 추천을 받아 달달한 화이트 포트와인을 마시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잔을 들어 강 건너를 비추니 포트와인 셀러들이 자리한 가이아 전 지역이 내 잔 안에 담긴다. 이거 또 감성 넘치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어부의 요새에 올라가서 토카이 잔에 담아봤던 국회의사당이 생각난다. 외국 여행을 할 때는 이렇게 그 나라의 대표 술이 명확한 지역이 난 참 좋더라. 술을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기에는 역시 음식과 술이 가장 직관적인 연결고리가 되어주기에 오늘 포르토 같은 이 도시 너무 좋다.


2025년 4월의 포트와인 잔에 담은 포르투 가이아와 2022년 3월 토카이 잔에 담은 포르투갈의 국회의사당


유럽의 식당에는 많은 분들이 가족단위나 친구단위로 오기 때문에 혼밥을 하는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평소에도 혼자 식사하는 걸 잘 못하시는 분들은 왁자지껄 그룹이 많은 저녁시간대의 유럽 식당은 좀 꺼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수년간의 레이오버로 다져온 용감무쌍한 전직 승무원이자 유럽사는 코리안 아줌마가 아닌가. 앉자마자 메뉴판을 가져다주시는 분께 이미 서칭 해둔 사진을 보여주며 이 메뉴가 메뉴판 어디에 있니 물어보고 바로 주문을 한다. 그래. 유럽에서는 주문판을 주고도 한참 뒤에나 와서 주문을 받기에 이렇게 느긋한 지역, 특히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쪽에 오면 알아서 빨리 서빙받을 방법을 모색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시간 아끼기에도 좋다.


대구도 맛있지만 밑에 감자가 너무 맛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맛있다는 평밖에 없는 신선한 대구구이를 시켰다. 이상하게도 대구 그 자체보다는 그 밑에 깔려있는 아코디언 같이 늘어나는 감자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던데 정말로… 감자가 킥이었다. 굉장히 중립적인 소스(짙은 것도 아니고 옅은 것도 아니고, 오일도 아니면서 살사도 아닌 묘함)는 대구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간간함은 더했고, 밀풰유처럼 겹겹이 칼집이 된 감자는 부드러우면서 꼬돌꼬돌한 식감이 너무 재밌었다.

4월의 따뜻한 도우강 강바람을 맞으며 포르투의 대표 음식 바깔라우에 대표와인인 포트와인을 함께하는 이런 시간은 내가 사는 삶이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빡빡한 일과 삶 속에서 지치는 한국 생활과 비교되게 이렇게 유럽을 돌아다니며 공백과도 비슷한 무한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니 내 인생 참 살만하네. 승무원을 하며 즐기던 전 세계 레이오버와는 그 결이 사뭇 다르다. 그때는 어디에선가 식사를 하고 있다는 뜻은 곧 되돌아가야 하는 비행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에 늘 제한된 시간 속에 전투적으로 놀았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거고, 그게 일반 직업을 가진 내 주위의 사람들과는 상반된 엄청난 자유라고 느꼈는데 더 살아본 뒤 돌아보니 젊은 시절의 내가 조금 안쓰러워지진다. 승무원으로 즐긴 여행, 모든 레이오버는 반쪽짜리 자유였던 것 같다. 정말 치열했던 비행 스케쥴과 엄격했던 중동 항공사, 할일이 넘쳤던 서비스들을 소화해 나가면서도 승객들과 즐겁게 웃으며 행복하게 일했던 젊었던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었구나 싶어진다.

그나저나 포르투에서 대구에 포트와인이라니… 혼밥임을 잊을 만큼 참 맛있고 행복한 식사였다.


포르투에 오니 순례길을 가고 싶어진다
포르투의 순례길 표시와 그 길을 시작하는 순례자들


그런데 말입니다. 곳곳에서 순례길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조개 표시,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순례자들이 자꾸 눈에 띈다. 그래, 우리는 지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많은 순례길 중에 하나인 포르투길의 시작점에 있는 것이다. 아… 마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나도 저분들을 따라 당장 내일이라도 순례길을 시작하고 싶다. 올해 생장이 아니라면 스페인으로도 자원봉사를 갈 수도 있다. 그런데 2주간이라는 시간이 여간 걸리는 게 아니고 잘 운항하던 이탈리아에서의 산티아고 직항 편이 올해는 운항을 접었다. 무언가 아쉽게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랄까. 2주를 써야 한다면 그 시간보다 덜 투자하고도 포르투길을 걸을 수 있잖아! 보통 포르투길은 12일이면 된다는데 말이야. 게다가 길이 그렇게 예쁘기로 유명하던데… 갈까? 이렇게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아주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그만큼 봄, 포르투는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엄마 아빠를 보러 온 포르투에서 나는 순례길 향수에 젖어버리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여버렸다. 그런데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내가 와 있어야 할 곳에 와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렇게 바란다면 곧 일어나겠지, 마음이 조급해지기보단 오히려 편해져 가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매우 신기했다.

이상하게 순례길은 다 때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정말 떠나야 된다면 의구심 없이 자연스럽게 준비를 시작하는 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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