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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팜플로나 단골 카페에서 보내는 아침

팜플로나에서 생장으로 가는 날

by 몽키거
2025년 5월 11일 일요일
생장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를 위해 생장에 도착한 날


헤밍웨이를 찾아서
팜플로냐 시청에서 아침 9시를 알려주는 연주자들, 팜플로나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2023년 순례길을 걸었을 때 이후 팜플로나에서 맞이하는 나의 두 번째 아침이네 그려. 12시에 출발하는 알사 버스를 잘 맞춰 타야 하니 일찌감치 짐을 싸두고 아침을 먹으러 움직인다. 어디로? 헤밍웨이가 단골이었다던 카페 이루냐(Café Iruña)로 말이다. 카페 이루냐는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주인공들이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갖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로 헤밍웨이가 정말 좋아했고, 본인도 자주 찾았던 곳이다. 카페 안쪽에는 그를 기리는 ‘헤밍웨이의 코너(El Rincón de Hemingway)’가 있는데 바에 기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듯한 실물크기의 헤밍웨이 동상을 볼 수 있다. 재작년에는 나도 순례길 걷고, 먹느라 바빠서 동상을 볼 생각도 못했는데 이번에는 여유가 있으니 구석구석 둘러봐야지. 9시 오픈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섰는데 어제저녁과는 사뭇 다른 조용한 팜플로나 시내를 걸을 수 있어 신선했다. 혹시나 열었을까 올라가 본 팜플로나 대성당은 일요일 미사를 위해 일반인 입장 불가라 아쉬웠지만 대신 내려오는 길에 시청 앞에서 아침 9시를 알리는 연주 세리모니가 있어 더 재밌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정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이 보여 나도 잠시 그들과 같이 설레어 볼 수 있어 얼마나 좋던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팜플로나를 걸어 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마음속으로 파이팅 외쳐보고, 이제 나는 진짜 아침 먹으러 간다.


멋진 인테리어의 카페 이루냐와 오늘의 아침 또르띠아와 카페 콘 레체

나름 오픈하자마자 들어간 것 같은데 카페 안에는 벌써 말끔한 노신사 몇 분이 자리하고 계셨다. 올곧은 자세로 신문 보시는 분, 크로스퍼즐을 채우고 계신 분, 책을 읽으시는 분 등 하나같이 분위기가 참 멋지셨다. 와글와글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이탈리아보다 스페인의 아침 카페는 더 조용하구나. 이탈리아가 서서 커피 한잔에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라면 스페인은 앉아서 식사를 하는 분위기다. 같은 유럽이어도 이런 단순한 아침식사 문화조차 다르기에 어딜 가도 늘 차이를 찾는 재미가 있는 곳이 유럽인 것 같다. 팜플로나에 있으니 순례길 걸을 적 생각도 나서 순례길을 걸으며 아침 식사로 가장 많이 먹었던 메뉴, 토르티야에 카페 콘 레체를 시켜보았다. 카페 명성답게 큼지막한 치즈와 햄으로 속이 가득 찬 푸짐한 또르띠아에 를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자니 배도 부르고 피로도 가신다. 이렇게 역사 깊은 카페에 앉아서 든든한 아침 식사를 해도 4.2유로(6500원)라니 스페인 음식 물가 정말 사랑스러워도 너무 사랑스럽다. 카페 이루냐에 앉아있자니 이곳 팜플로나에 같이 걸어왔던 사람들이 생각나 단체톡에 사진을 보냈다.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첫 순례길의 인연들은 계속되어가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든든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좋은 인연은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한국에서 한참 떨어진 프랑스의 생장에서 만나 산티아고로, 산티아고에서 각자가 사는 한국, 이탈리아, 미국에 돌아가서도 소식을 전하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순례길을 걷는 서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 나만의 길이 아닌 우리들의 길이란 이름 아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게 바로 순례길이 맺어 준 까미노 인연이 아닐까. 피어오르는 예전 순례길 생각을 한참 하다 정신을 차리고 팜플로나로 출발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간다. 이제 정말 팜플로나와 안녕할 시간이다.


카페 이루냐의 헤밍웨이 동상과 팜플로나 투우 경기장에 있는 헤밍웨이 상. 헤밍웨이도 팜플로나를 사랑했고, 팜플로나도 헤밍웨이를 사랑한다.


생장, 너에게 달려가고 있어
드이어 생장에 도착해 순례자 사무실에 방문했다

숙소가 버스터미널과 가까워 짐가방을 끌고 걸어가는데 누가 봐도 순례길 떠나는 듯한 배낭을 둘러멘 내 또래의 여자가 말을 건다.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혹시 알아?” 조심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생장에 가는 버스를 타려 하냐고 묻자 바로 그렇다고 한다. “순례자구나? 나도 생장 가는 길이야”.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걸어가게 되었다. 칠레에서 온 안드레아는 간호사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내가 커다란 러기지를 끌고 가는 걸 보고 생장으로 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는데 제 행색이 러기지를 포함해 순례길을 걸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거든요. 이번이 첫 순례길이라는 그녀와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 안에서도 옆자리에 함께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참 대단한 게 이 친구는 몇 년 전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가 최근 완치판정을 받으셔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보자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하면서 정말 아픈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마음 쓰이는 환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나름 경력이 오래돼 갈수록 무던해져 간다고 생각했을 때 가족이 아팠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과 나의 건강이라는 거, 늘 당연히 여기지 말고 감사해야 함을 다시 깨달았다고, 산티아고를 걸으며 그 감사함을 생각할 거라고 한다. 얼마나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는지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두 살 차이 밖에 안 나서 정말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MZ 간호사들이 어떤지, 젊은 세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만국공통의 주제에 공감하며 우리가 열변을 토할 때쯤 생장에 도착했다.

나름 생장에 한 번 와본 사람이라고 순례자 사무실까지도 내가 안내해 같이 걸어갔다. 순례자분들은 혹시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이 언덕 가장 위에 있고, 그곳까지 올라가는 길은 다 돌길이었던 거 기억하시나요. 배낭을 메고 왔던 재작년과는 달리 네발 달린 러기지를 끌고 가려니 힘들기도 엄청 힘들지만 덜거덕덜거덕 바퀴 소리가 더 창피하다. 돌길에 올라선 순간 ‘아… 이거 계산 정말 잘못했다.‘ 싶은 게 10년 넘게 쓰며 탈 한번 없이 잘 들고 다닌 내 가방이 오늘 바퀴 나가는 날이구나 확신했다니까. 언덕을 오르며 안드레아가 “나 벌써 힘든데 내일도 이 정도로 높고, 힘들다는 거야?” 물어보는데 경험 있는 순례자로서 씩 웃으며 말해줬다. “안드레아, 이건 내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놀라는 그녀에게 내일은 한 달이란 일정 중에 제일 힘든 날이지만 동시에 가장 오래 기억되고 가장 재밌을 날이기도 하다며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순례길은 내 마음이 생각하는 대로 걸어지는 신비한 길이니 겁보다는 담대함으로, 또 가능하다면 담대함보다는 평온한 마음으로 걷는 게 더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한참을 낑낑대며 가방과 씨름하며 겨우겨우 순례자 사무실까지 왔다. 2시를 갓 넘긴 순례자 사무실에는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문 밖 줄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자원봉사자인데요

아무리 자원봉사라고 해도 순례자들을 안내해야 하는 근무시간이니 맞으니 최대한 방해를 안 하려고 눈치 보며 쭈뼛쭈뼛 들어가 본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으셨는데 그중 크리스티안느라는 백발의 할머니 봉사자분께 다가가 나를 소개했다. 내일부터 일 할 자원봉사자라고 하니 이미 말 전해 들었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내가 묵을 알베르게가 준비되었나 여쭤보신다. 조금만 기다리면 연락이 올 거라고 알려주시며 “괜찮으면 너 내 옆에 앉아서 나 하는 거 볼래? “ 선뜻 제안해 주셔서 너무 좋다며 의자를 끌어다 옆에 앉아 이분이 순례자를 맞이하는 방법을 지켜본다. 75세는 족히 넘으셨을 크리스티안느는 또랑또랑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 주시는데 그 설명이 똑 부러지게 명료하다. 아마 직원분이셔서 그런가, 포스라고 해야 하나 아우라라고 해야 하나 뭔가 다르다 달라. 조금 더 앉아서 견습생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금방 숙소 준비가 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와 아쉽게 자리를 나왔다. 오늘 묵을 숙소는 순례자들이 머무는 공용 알베르게인데 생장을 빠져나가는 순례길의 시작 부근에 있어 가방 끌고 갈 엄두가 안 난다. 걸어서는 5분 내지 7분이면 도착할 곳이지만 아니야… 나 저 돌길에 15kg 되는 가방 못 끌겠어… 결국 순례자 사무실에 가방을 두고 가기로 하고 오늘 밤을 나기에 필요한 세면도구, 잠옷, 내 담요 등 필요한 것들만 에코백에 담아 나왔다.

생장에 온 신고식은 까눌레로
Maison Berthold의 까눌레와 L'étape gourmande의 잠봉뵈르 먹어주기


근데 말이야… 5월 중순인데 생장이 은근히 춥다. 혹시나 해서 챙겨 온 재킷 하나덕에 감기 걸리는 건 면한 것 같아 다행이지 뭐야. 알베르게에 (프랑스에서는 지트 : gîte 라고 한다)에 조촐한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정말 많이 생각났던 Maison Berthold에서 내 인생 까눌레를 먹어줬다. 여긴 정말 맛이 너무 사기야… 이렇게 겉바속촉한 완벽한 까눌레를 난 먹어 본 적이 없어! 심지어 프랑스 파리에서도 말이야. 내가 까눌레를 너무 좋아해서 파리에 갈 때마다 알아봤는데 의외로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 이유가 까눌레는 프랑스 전 지역이 아닌 디저트로 많이 먹는 남서부, 특히 보르도 지역에서나 찾을 수 있단다. 워낙에 만들기도 복잡하고, 겉바속촉을 유지하려면 신선도와 식감이 생명인데 그걸 지키며 유통하기도 까다로워서 다른 도시에선 잘 없다는 사실. 내가 지금 있는 생장은 보르도와 두세 시간 거리 밖에 안되어 나름 까눌레 문화권 안에 있는지 아 이 아름다운 빵을 생장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그저 행복할 뿐이다. 재작년에 생장에 와서 미니 까눌레에 눈이 돌아 한 여닐곱개를 사 먹었었는데 결국 일반 크기, 오리지널이 최고였어! 앞으로 일주일간 이곳에 있을 테니 더 다양해진 여러 맛의 미니 까눌레를 보고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오리지널 하나 주세요.” 주문하고 얌전하게 하나만 사 오다니 진짜 절제한 거다 나.

까눌레도 사 먹은 뒤, 노트르담 성당도 찾아가고, 생장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다 저녁은 근처 바게트 샌드위치 가게에서 잠봉뵈르를 먹었다. 메뉴가 엄청 다양하긴 한데 너무 단순인지 메뉴에도 없는 잠봉뵈르가 먹고 싶더라고. 친절한 젊은 커플 사장님들께 잠봉뵈르도 해주시냐고 물어보니 “당연하지, 치즈도 넣어줄까?” 답해주신다. 잠봉에 뵈르면 되지만 샌드위치에 치즈 들어가서 안 맛없는 게 없으니 그렇게 해달라고 해서 밖에 앉아 천천히 먹었다. 프랑스에서 먹는 버터는 정말 맛이 달라 캬… 소리가 나온다. 배가 채워지니 ‘그래도 어찌어찌 생장에 도착하긴 했구나.‘ 싶으면서 이제야 현실감이 조금 돌아온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아직 안 믿기고 얼떨떨한데 이제 한 주간 순례자 사무실에서 즐겁게 봉사하고, 이 생장피에드포르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제대로 느껴보려 노력 중이다. 그나저나 오늘의 숙소는 내일 여정을 시작하는 순례자들과 한방을 쓰는 거 기에 나도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 가능한 피해를 안 주기 위해 나도 일찍 씻고 자봐야지. 여하튼 생장까지 안전하게 잘 왔다. 수고한 나에게 까눌레로 당충전, 잠봉뵈르로 밀가루 충전해 줬으니 오늘 하루치 행복은 다 충전한 거다. 생장피에드포르야, 앞으로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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