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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인이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Day 2 사람으로 따뜻해진 마음이 사람에 의해 식는 데 걸리는 시간

by 몽키거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생장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2


나의 미소가 되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두 번째 날이다. 어제는 점심식사 후 오후에만 근무를 했기에 오늘이 제대로 전일을 근무하는 나름 첫날이라고 긴장되네. 아침 식사는 아침 7시지만 준비를 돕고 싶어 일찍 내려갔는데 프랑스인 조세 아저씨가 이미 테이블 세팅을 다 마치시고 빵을 썰어 굽고 계셨다. “제가 할게요!” 얼른 달려가 마저 빵을 굽고 커피 준비를 했다. 일주일 간 아침과 점심, 저녁 모두 자원봉사자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꾀나 가족 같아 좋다. 게다가 아침에 연세 있으신 조세 아저씨(얼추 70대 후반이신 것 같다. 이젠 내 나이가 마흔이니 할아버지뻘이라고는 못하겠고 아버지 뻘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가 능숙하게 부엌을 왔다 갔다 하시며 우리 모두의 아침식사를 준비하시는 가정적인 모습이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맞는 첫 아침을 매우 따뜻하게 만들어주셨다. 간단하게 빵과 커피를 곁들인 식사였지만 집에서 먹는 집밥 느낌이라 많이 안 먹었어도 마음이 든든한 식사였다.


자 이제 아침 8시, 순례자 사무실 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아침에 순례자를 맞이해 본다. 오늘은 열 분 정도의 한국인 순례자를 뵈었는데 여전히 한국인이 너무 반갑고, 응원하는 마음 한가득이라 활짝 웃고 맞이하는데 표정 하나 없으신 분도 계셔 뻘쭘한 순간도 있었다. 이것저것 설명해 드리고, 어떻게 오셨는지, 기분이 어떠신지, 혹시 질문이 있으신지 등 소통을 위한 말을 해도 돌아오는 단답형 대답은 건조하기만 하다. 내 친절과 웃음이 돌아오는 걸 바라고 하는 자원봉사는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조금 머쓱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야 너무 신기한 건 내가 30대 중반 정도만 되었다면 ‘뭐야, 사람 민망하게.’ 또는 ‘그래도 난 친절하게 하려는데 너무하시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거든? 근데 40대가 되니 ‘아, 혹시 무슨 우환이 있으신가.’, 또는 ’ 이분은 오늘 안 좋은 하루를 보내고 여기 오셨을 수도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거다. 살면서 나도 내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경우들이 있고, 일이 엉킬 때는 말도 하기 싫은 경우도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달까. 왜 인생이, 이 하루가 지독하게도 안 풀린다고 느껴지는 날들이 있잖아. 그러니 짧은 만남이라면 더더욱 사람을 속단하지 않고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늘 친절해야 하는 것 같다. 이리 저기압에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 분이 순례길을 시작하려 여기까지 오신데는 정말 슬프거나 답답한 어떤 동기가 있었을 수도 있잖아. 민망해진 내 마음은 옆에 제쳐두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 순례길 첫 시작을 좋게 만들어 드리자 다짐해 본다.


어린이 순례증과 비카리에 프로(Vicarie Pro)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배운 게 빛을 본 날
공식 콤포스텔라(좌)를 쏙 빼닮은 어린이 순례자 증명서(우)


오늘 정말 귀여운 순례자가 왔다. 바로 엄마와 함께 도착한 7개월짜리 프랑스 아기였는데 이렇게 작은 아이를 앞에 안고 엄마 혼자 순례길을 시작하신다고 하셔서 너무 놀랐다. 아이가 콤포스텔라를 못 받는 건 알지만 함께 하고 싶어 시작한다는 말에 “걱정하시마세요.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아기도 아기 순례증을 받을 수 있어요!”하고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발급해 주었던 어린이 순례증 사진을 보여드렸다. 너무 귀엽다고, 아기에게도 “너도 네 순례증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전해주며 즐거워하시니 나도 함께 즐거워진다. 와, 이럴 때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보고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되고, 그 경험과 정보들을 이용해 순례자들을 안심시키고, 더 즐거운 길이 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예쁜 아기와 엄마를 보내고 얼마 안 지나 노중년의 미국 남자분이 오셨는데 순례자여권에 오늘 날짜를 적으시면서 “이틀 뒤면 먼저 간 우리 딸 생일이에요. 내가 그래서 이 길을 시작하는 거야.”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조용한 톤으로 읊조리듯 말씀하셔서 응? 내가 방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길에 대한 모든 설명을 마치고 보내드리기 전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아까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조심스럽지만 따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신 게 맞나요.”. 그분이 그렇다고 하신다. 실수가 아니어서 너무 다행이지만 실수를 무릎 쓰고라도 확인해서 다행이다. 누군가를 추모하며 걷는 순례길은 우리가 비카리에 프로(Vicarie Pro)라고 돌아가신 분께 헌정이 가능하기에 물어본 거였고, 산티아고 순례사무실에 도착하시면 꼭 딸을 위해 걸은 거라고 말씀하시고 선생님의 이름이 담긴 콤포스텔라에 따님에게 헌정한다는 문구를 받으시라고 알려드렸다. 그럼 선생님의 이름과 따님분의 이름이 나란히 한 장의 콤포스텔라에 함께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설명을 해드리며 주책맞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분이 우는 나에게 “고마워, 나도 울 것 같다야.”라며 조용한 어조로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눈시울도 이미 빨개져 있었다. 가시는 분을 붙잡고 괜찮으시면 따님의 이름으로 콤포스텔라를 하나 더 만들어 드리고 싶은데 작성을 해주시면 어떠냐 여쭤보았다. 그럼 적어도 한 달간 두 개의 여권에 도장을 받으시면서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따님의 순례자 여권은 우리 생장 순례자 사무실의 작은 마음이라고도 전했다. 정말 고맙다며 딸의 순례자 여권을 작성하시는 아버지의 슬픈 마음을 차마 헤아릴 수 없어서 계속 눈물이 나 뒤돌아 훔치기를 반복했다. 이럴 때는 나도 좀 안 울었으면 좋겠는데, 적당한 거리에서 잘 도와드리고 싶은데 눈물이 말을 안 듣고 자꾸 앞을 가린다. 내가 뭐라고 주제넘게 우는 걸까, 이렇게 슬픔을 가진 분들에게는 더 조심하고 싶은데 말이다. 순례길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걷기와 자전거 둘 중 선택하는 칸에서 아주 잠깐 생각을 하시더니 걷기 박스에 체크를 하시며 나에게 “딸은 나랑 함께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 같이 걷는 거겠죠!” 하며 웃으시는데 그 멘트에 또 겨우 멈출 것 같던 눈물이 괄괄 흘러내려 티슈로 눈을 틀어막고 바보같이 “그럼요, 그럼요.”만 반복했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순례길. 어떤 이에게는 감사하러 떠나는 길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슬픔을 내려놓기 위해 걷는 길이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답을 찾으려고,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누군가를 기리며 걷는 깊고 다양한 의미의 길이 순례길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따뜻하게 대해줘서 참 고맙다고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순례길을 시작하시는 아저씨. 오늘은 많은 순례길 줄 헌정의 길을 떠나는 이 분께 따님과 좋은 길 되시길 바라며 그렇게 부엔까미노라는 인사를 전해본다.


제가 일본인이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생장 시내 산책을 한다

즐거운 사연, 마음을 울리는 사연, 여러 순례자들과의 가슴 따뜻한 순간을 나눈지라 마음의 힘을 충전한 듯한 행복한 오전 근무를 마쳤다. 이번에도 조세 아저씨가 언제 준비하셨는지 이미 점심을 차려두셔서 오전에 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식후에 동네 산책도 하고 기분 좋게 오후의 사무실을 열었단 말이지. 그리고 다양한 순례자들을 맞으며 정말 순조롭게 오후 7시를 넘겼을 때 한 순례자가 도착하시는데…

60대 후반쯤 돼 보이시는 일본인 아저씨가 아일린 테이블로 다가가며 번역기를 켜고 고전하시는 것 같아 ‘같은 아시아 사람을 도와주자!’ 싶어 나는 한국인이지만 안내와 도움을 드리겠다고 내 테이블로 이동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기양양하게 번역기를 통해 시작한 이분과의 대화는 2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고 순례자 사무실 문을 닫고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는 것. 그 이유는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서 나를 원망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거든. 일단 순례자 여권도 일본 순례자 사무실에서 이미 만들어 오실 정도로 준비는 많이 하신 것 같았다. 멋지세요 하고 도장 찍어드리고 내일 일정을 설명드리려는데 본인은 하루 쉬고 내일모레 출발하실 거라 하신다. “좋은 선택이세요, 하루 쉬고 여독 풀고 가시면 더 좋죠.”, 대답하고 피레네 산맥을 올라가는 나폴레옹 루트에 대해 설명드리는데 본인은 오리손에서 묵을 거라고 하신다. 당연히 숙소를 예약하셨나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셔서 오리손과 훈토, 보르다는 지금 예약이 다 차 있어서 불가하시다고 말씀드리고 보통 2-3달 전에 예약들 하시더라고요 말씀드렸는데 “나도 2달 반 전에 시도했는데 안 됐다고!”라며 내 말이 틀렸다 지적하신다. 여기서부터 무한굴레의 뫼비우스 띠 같은 끝도 없는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몸이 안 좋아서 하루에 피레네 다 못 올라가 - 네, 힘드시다니 안타깝지만 현재 중간에 있는 숙소들은 예약이 불가하세요, 그럼 발카를로스 길은 어떠세요, 여기는 도로길이지만 중간에 하루 쉬어가실 수 있어요 - 나는 피레네 산맥을 오르는 나폴레옹 루트를 꼭 가고 싶어 - 중간에 하루 끊어가실 숙소가 없어서 발카를로스길이 아니라면 론세스바예스까지 가셔야 해요 - 나 몸 때문에 한 번에 못 간다니까 - 너무 죄송하지만 숙소가 만실이에요 - 난 꼭 나폴레옹 루트를 가고 싶어, 나는 몸이 안 좋아서 하루에 피레네 다 못 올라가… 무한 반복


한참을 도돌이표처럼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되게 못된 사람처럼 보이는 게 꼭 해줄 수 있는 걸 안해주는 사람처럼 구석에 몰리는 기분이 좋지많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분이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시고 책상에 고개를 푹 박으신다. 순간 우시나? 싶어 너무 놀라서 달래 드리려고 몸을 숙이는데 울음소리가 안 들리는 게 싸하다. 이분은 우는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화를 참고 계셨다. 나한테 넘치는 화를 누르려고 하시는 것 같아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꼭 동사무소에서 컴플레인하시는 분처럼 ‘너는 공공기관, 나는 국민, 내가 원하는 걸 해결해 주는 게 너의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계신 것 같았다. 설명을 여러 번 해드려도 계속 같은 말만 하시고, 나한테 해결을 하라는 듯하다. 정말 그렇게 나폴레옹 루트로 피레네 산맥을 오르고 싶으시다면 많은 분들이 하듯이 교통편을 이용하시는 방법도 있다 설명드렸다. 미리 픽업차량을 예약해 두시고 오리손까지 걸어 올라가신 다음 차 타고 내려오셔서 다음 날 차로 오리손으로 이동 후 거기에서 걸어서 피레네를 넘으시면 된다고 말씀드리는데 그건 싫으시단다. 실제로 체력이 안되시는데 피레네 중간 숙소를 예매 못하신 많은 분들이 차량을 이용해 나눠서 길을 걸으시는데 이분은 일단 그건 아니라고 하시니 그 이상의 드릴 답이 없는 나도 답답하다.


30분 정도가 지났지만 내가 마법사가 아닌 이상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일본 아저씨는 테이블에서 일어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이신다. 한참을 내 앞에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시더니 갑자기 내용을 바꿔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소매치기나 도둑이 많냐고 물어보신다. 내 경험상 크게 걱정하실 건 없다고 하니 “내가 인터넷에서 본 어떤 사람은 지갑이랑 핸드폰이 없어졌다는데 무슨 소리야.” 이러신다. 아… 이건 그냥 내 말꼬리를 잡고 싶으신 거구나… 가끔 그런 불미스러운 일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가방에 열쇠 잘 잠그시고, 소지품에 신경 쓰시고 주의하시면 괜찮으실 거라 대답했더니 이번에는 최근 일어난 순례길 범죄 레코드를 달라고 하신다. 안심을 시켜드리려고 몇 분 간 노력을 해도 무조건 수치를 내놓으라고 하시길래 프랑스 자원봉사자 장 베누와에게 이분이 범죄 기록들을 달라고 하시는데 혹시 있냐고 물어보니 그제야 급하게 번역기로 ‘없으면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고 내게 폰을 가져다 대신다. 뭐지, 이분이 말싸움하고 싶은 상대는 검은 머리 아시안인 나에게만 한정된 것인가 싶어 현타가 온다. 결국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다 말씀 드렸고, 장 베누아가 문 닫은 지 한참이 지나서 이제 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일어나시는 듯하다가 프랑스랑 스페인의 경찰번호와 응급상황시 전화할 번호를 묻고 나서야 나가셨다. 아이린과 미슐린, 조세가 다가와 이마에서 땀 닦는 시늉을 하시며 “너 정말 참을성 있게 잘 대했어. 네가 잘 설명하려고 노력한 거 우리 모두가 공감해.”라며 다독여준다. 이분들 눈에도 내가 긴 시간 고전하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나 보다. 그분을 끝으로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작업들을 하고 나니 9시가 다 되어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예고 없이 갑자기 탈탈 털리니 현실감이 없어질 정도랄까. 내가 일본인이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했어야 하나? 뭐지? 할 정도로 궁지에 몰아세우신 일본인 순례자 분 덕에 하루 내내 충만했던, 순례자들과의 교감과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따뜻해진 마음이 차갑게 식어 발끝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정말 혼이 다 빠졌다.


자원봉사자는 순례자들의 어떤 존재일까?

나도 안다. 오늘 이 일본인 아저씨 같은 순례자 분들이 많지는 않을 거라는 걸. 하지만 그분 덕에 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순례자 사무실의 자원봉사자는 순례자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내가 걸을 순례길을 오랜 시간 준비해 왔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내 앞길을 준비해 주실 거라는 일말의 기대 없이 순례자 여권을 만들러 갔었는데, 아닌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자원봉사자는 단순한 조언가를 넘어 더 심도 있는 해결사가 되어야 하는 걸까. 순례길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드리는 게 우리의 몫이긴 한데 오늘처럼 궁금증을 넘어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들어 달라고,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듯 떠넘기시고 오히려 답답해하시는 순례자를 마주하는 건 정말 힘든 경험이었다.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친절하려 했지만 이건 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는 걸, 정말 극도로 드문 순례자 유형이라는 걸 누가 봐도 알기에 이유 없이 얻어맞은 듯한 뺨처럼 얼얼한 마음도 푹 자고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근데요, 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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