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날
2025년 5월 12일 월요일
생장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1
드디어 오늘부터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어젯밤 방을 셰어 했던 3명의 프렌치 여자분들의 이른 기상과 분주함에 아침 6시에 나도 함께 일어나졌다. 나 깰까 봐 어둠 속에서 조심조심 움직이시는 모습이셔서 얼른 방 불을 켜며 “굿모닝” 크게 인사를 건네본다.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이시던 분들이 웃으시며 이제야 얼음땡이 된 듯 편하게 움직이시기 시작한다. 이곳 43번 알베르게 Refuge accueil paroissial에는 주인분이 프랑스어만 하셔서 혹시나 방 안의 유일한 아시아인 여자가가 프랑스어를 못 알아들어 밥을 굶을까 봐 어제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이 프랑스 여자분들이 번갈아 가며 내 안부를 묻고 정보를 영어로 알려주셨다. ‘저녁 안 먹니?’, ’ 너 괜찮은 거지?’, ’ 아침 식사는 6시 반부터 7시 반까지래, 혹시 체크아웃 시간 들었니?’ 등등 단순히 번역이라기보단 정말 진심으로 챙기고, 염려하는 마음이 전해져 참 고마웠지 뭐야. ‘그래, 순례자들의 아침은 이렇게 서로 배려하며 시작했었지 ‘, 세 분의 배려가 잊고있던 순례길 감정들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근데 말이야 사람들과의 이런 따뜻한 교류가 너무 좋고, 이런 정 때문에도 길을 걷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공동생활을 하니 ‘나는 내 개인룸이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구나.‘를 다시금 느끼게 되더라고. 첫 순례길에서 개인실 위주로 묵느라 숙소에만 200만 원을 쓴 이유가 바로 그런 거다. 단지 다른 사람이 불편하다가 아니라 그 반대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까. 내 프라이버시도 그렇지만 나는 화장실 자주 가고, 잘 때 뒤척이고, 짐 여러 번 열고 닫는 등 부산해서 다른 순례자들에게 피해가 될 걸 알기에 그저 미안하다. 남한테 피해 주는 게 싫어 극도로 신경을 쓰고 조심하려는 나이기에 아마 그게 더 스트레스인 것 같다. 물론 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도 암묵적으로 단체에 맞춰 지켜야 하는 것도 조금 힘들고 말이야. 이렇게 한번 또 알베르게 공동생활을 해보니 첫 순례길에서 내가 놓친 것들도 보이고, 내가 나를 잘 알기에 돈은 더 줘도 남에게 미안하지 않게 다녀온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별거 없는 짐을 싸고 순례자들을 배웅한 뒤 Artizarra라는 베이커리에서 쇼숑 오 뽐므와 카페 오 레로 아침 식사를 해본다. 와 여기 또 프랑스 아니랄까 봐 카페 콘 레체(café au lait)가 아니고 카페 오 레(café au lait)라 부르네 그래. 이래나 저래나 커피에 우유 들어간 건 비슷할 텐데 여하튼 내가 프랑스에 있다는 걸 커피 이름이 일깨워주는 아침이다. 원래 사과 잔뜩 들어간 쇼숑 오 뽐므 빵을 참 좋아하는데 이것도 프랑스 꺼라 먹을 수 있는 것에도 너무 감사! 내가 지금 빵을 먹는 이곳 Artizarra는 이 지역 명물 타르트인 바스크케이크 맛집으로도 유명하단 걸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빵 종류도 많고 앉을 곳도 많아 지역 주민들은 물론 많은 순례자들이 즐겨 방문하는 곳이다. 마음에 드는 아침 식사도 했겠다 이젠 정말 생장 순례자 사무실로 봉사하러 갈 시간이다.
자원봉사자가 자원봉사자에게
11시에 모임 시작인데 조금 일찍 가서 다른 봉사자들이 어떻게 순례자들을 대하고 말하는지 옆에 앉아 살짝 들어봤다. 오늘은 캐나다인 게리 아저씨 옆에 앉아봤는데 이분은 숙소에 대한 조예가 남달라 ‘여기 가면 이 숙소 진짜 멋져’, ‘이곳은 순례자 예배를 다 함께 올리는 곳이 있는데 정말 뜻깊을 거야.‘ 등등 10분도 더 넘게 산티아고로 가는 길 곳곳의 알베르게를 추천하신다. 정말 어제 본 크리스티안느와 너무 달라 내가 어떤 기준으로 순례자들에게 설명을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아는 내용을 다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게리의 친절한 마음은 꼭 배워야겠다 싶다.
11시가 되어 앞으로 함께 봉사를 이어갈 4명의 프랑스인 봉사자 장 베누와, 조세, 미슐린, 버나드와 아일랜드에서 온 봉사자 아이린과 통성명을 하고, 우리를 한자리에 있을 수 있게 모든 것을 총괄하는 모니크도 만나 앞으로의 봉사활동에 대한 브리핑을 가졌다. 모니크는 프랑스어만을 사용하는데 다행히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 중 버나드와 장 베누와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기에 그분들이 중간중간 중요한 건 다 통역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모두가 프랑스인이었으면 조금 소외되는 느낌도 들었을 텐데 아이리쉬인 아이린이 함께 있어 너무 다행이다. 또 나만을 위해 통역해 주시면 더 죄송할 텐데 다행히 나뿐만이 아닌 우리 둘을 위해 해주시는 거지 휴 이것도 운이 좋은 것 같네.
브리핑이 끝나고 12시가 되어 순례자 사무실의 문이 닫히고 지난 한 주 고생해 준 봉사자 다섯 분과 오늘부터 업무를 이어 갈 봉사자 우리 여섯 명이 모니크와 그녀의 남편 장 루이스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이 생장피에드포르 순례자 사무실은 부부인 모니크와 장 루이스가 10년 넘게 운영을 기획하고, 꾸려오고 계시다고 한다. 이런 분들을 뵙고 함께 한다는 것도 순례자로서 굉장히 이색적인 일인 데다 조금 신기하기까지 했다. 다들 연세가 있으셔서 내가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 중 유일한 젊은이 이기에 식사 준비하시는 거를 도와드리려 벌떡 일어났더니 “도와주려는 마음은 너무 고마운데 이 식사까지 넌 게스트니까 앉아있어. 우리 가고 나서부터 실컷 일해야 하는데 지금은 좀 쉬렴.” 하고 굳이 날 자리에 앉히신다. 팔팔한 젊은애가 70대 할머니들이 차려주시는 식사를 앉아서 받자니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그게 여기의 룰이라고 하시니 조용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도와드리고 싶다고 몇 번을 다가갔지만 착하게 거절하셔서 일을 못하게 하시니 어쩔 수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는 식사에 집중을 하는 수밖에.
식사를 다하고 이제 건물을 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응? 한분도 안 남기시고 다 떠나네? 어제 나에게 시범을 보여주셨던 크리스티안느 할머니도 떠나신다. 이분 직원 아니셨나? 엄청 전문적이셨는데…라고 생각하는 도중 모니크와 장 루이스도 떠나고 한 시간 전에 만나 인사한 우리 6명의 자원봉사자만 남아 순례자 사무실 문을 열 준비를 한다. 이렇게? 전 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앉아 핸드오버, 인수인계 해주며 가르쳐주는 거 아니었어?
초보 자원봉사자라 죄송합니다
허허… 무언가 전개가 빠르다. 내가 직원들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모두 자원봉사자였고, 이곳에서 직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가 자원봉사자를 데리고 반일 간 일을 가르쳐주지도 않으며(내가 생각했던 인수인계식), 식사 시간의 담소를 통해 인사만 하고 그냥 바로 바통터치다. 물론 모니크와의 브리핑을 통해 어떤 서류들을 줘야 하는지, 크레덴셜 발급 시의 주의사항 등에 대해서 듣기야 했지만 이렇게 밥 먹고 바로 우리끼리 오후 2시에 문을 열고 그렇게 순례자들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이거 갓 태어난 새가 둥지에서 나는 법부터 배우게 생겼다. 조금 긴장되었지만 나는 바로 실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어쩌긴 어째 정신 차리고 잘 설명해 주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함께 일하는 프랑스인 4인방이 엄청난 능력자에 베테랑 자원봉사자들이어서 내가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봉사를 이번에 처음 하는 건 나와 아일린 둘 뿐이었고 나머지 네 분은 매년 팀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오래된 친구였던 것이었다니. 이 사실을 모르고 순례자 사무소의 문이 열리는 순간 얼마나 당황했는지 식은땀이 다 났었다.
처음 시작하고 30분 정도는 꼭 뭐 하나씩 빠트리고 설명한 것 같아 날 지나가신 순례자 분들께 좀 죄송했다. 특히나 작년 12월부터 시행했다는 필그림패스( Pilgrim Pass) QR코드에 대한 설명을 아주 많이 빼먹었던 것 같다. 내가 걸었을 때는 없었던 시스템이라 나한테도 생소해서 자꾸 까먹지 뭐야. 필그림패스는 이제 런칭한지 얼마 안 된 거라 많은 분들께 생소한데 순례길 중 숙박하실 때 수기 없이 개인 QR코드로 쉽게 체크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아직 운영초기라 모든 알베르게가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점차 늘려갈 계획이고, 특히나 첫날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서부터 확인을 한다니 이왕이면 오시기 전에 받아두면 더 편하실 것 같다. 우리가 도장을 찍는 순례자 여권과는 별개로 필그림패스는 숙박을 위한 숙소에서만 사용하는 개인 QR코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내문에 있는 필그림패스 QR을 스캔하면 등록하는 페이지가 뜨는데 이름, 여권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넣고 순례길 시작점 등의 정보를 넣는데 보통 3분 정도면 끝나더라. 등록하면 바로 이메일에 개인 QR 코드가 도착하니 바로 그걸 앞으로 쭉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필그림패스(Pilgrim Pass)란?
Pilgrim Pass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걷는 순례자들이 온라인으로 사전 등록을 하고, 발급받은 QR 코드를 숙소에서 제시하여 빠르고 효율적으로 체크인할 수 있도록 만든 디지털 등록 시스템이다. 스페인 정부와 지역 자치단체에서 도입한 이 시스템은 순례자의 안전, 체계적인 정보 관리, 통계 수집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왜 생겼을까?
기존에는 순례자가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도착할 때마다 이름, 여권번호, 국적 등을 직접 적어야 했는데, 이 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니 디지털화된 시스템을 통해 체크인 절차를 간소화하고 법적으로 필요한 정보 등록을 자동화한 것이다. 순례자의 숙박 이력을 기록하여 순례 통계를 수집하는 데에도 활용하고, 응급 상황에서의 빠른 대처를 위한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어디서 쓰일까?
디지털 체크인용 시스템으로 개발되었으며, 법적 정보 등록 의무가 있는 숙소에서 사용된다. Pilgrim Pass는 순례자 여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순례자의 편의성과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숙박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시간이 지나가며, 대하는 순례자 숫자가 늘어감과 동시에 긴장도 누그러들고, 더 해주고 싶은 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 50명 정도의 순례자들의 첫 도장을 찍어드렸는데 그중에 역시나 제일 반가운 건 우리 한국인 순례자분들이지. 하루 종일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간간히 한국분들이 내 테이블에 오실 때면 반갑고 신기하고, 한국말할 생각에 즐거웠다. 오늘 뵌 총 7분의 한국인 분들 중 이번 순례길이 세 번째이신 중년의 남성분, 혼자 시작하는 삼 심대 여성분 등 나이도, 이유도, 분위기도 다 다른 게 재밌다. 엄마 아빠와 함께 순례를 시작하시는 20대 딸, 이렇게 가족으로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정말 사이가 너무 좋아 보이는 게 바라보는 내가 다 행복해질 정도였지 뭐야. “우리가 운이 좋네. 한국인 봉사자가 있으실 때 생장에 도착하고 말이야.” 라며 반가워해주시니 내가 다 힘이 난다. 아직 부족한 첫날이라 어색하긴 하지만 역시나 한국어로는 더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다.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왜 오셨는지, 어떻게 길을 시작하게 되신 건지 물어보며 한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순례자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오후 2시부터 순례자 사무소가 문을 닫는 오후 8시까지 6시간을 쉴 새 없이 일했지만 재밌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당연히 말을 많이 하니 몸이 힘들긴 하지만 뭔가 그들의 에너지와 설렘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작은 기쁨들이 전이되는 것 같아 나도 으쌰으쌰 힘을 내게 된다고나 할까.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지나온 여정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고 대부분은 그분들이 하는 말씀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선 내가 정보들을 전달하고, 궁금증을 해결해줘야 해서 압도적으로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래도 많이 질문도 해주시고, 받으신 정보에 대해 유용하다고 해주실 때 참 뿌듯하더라. 작은 마음 담아 내일 당떨어질 때 드시라며 준비한 캐러멜을 하나씩 드렸는데 얼마나 기뻐해주시던지,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내가 2년 전 바로 이 순례자 사무실에서 만난 자원봉사자의 환한 웃음과 친절함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우연한 인연으로 나의 테이블에 오셔서 내게 순례자 여권의 첫 장에 도장을 받아가신 순례자분들이 작지만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오늘의 나를 기억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처음이라 많은 분들께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정보도 빼먹고 설명하고, 종이 드려야 하는 것도 깜빡 잊고 그랬는데 죄송해요. 저도 생장에서의 자원봉사는 처음이라…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부터는 더욱더 잘해야지 다짐해 본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보는 진귀한 경험
작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는 콤포스텔라 외곽의 봉사자들을 위한 전용 알베르게에서 머물렀다. 근데 생장은 우리가 찾아가는 그 순례자 사무실, 39번지 안에서 일주일간 머문다는 사실! 이게 정말 진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길을 시작하는 모든 순례자의 첫 시작점, 각각의 이유와 떨림을 가지고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에서 나는 오늘부터 잠도 자고, 식사도 하며 자원봉사를 이어가게 된 것이다. 사무실 뒤로 부엌과 응접실이 있고 이층, 3층에는 봉사자들이 쉴 수 있는 방들이 잘 준비되어 있다. 나와 아이린은 3층을 나눠 쓰고 다른 분들은 2층에서 머무는데 운 좋게 화장실이 달린 침대 두 개가 있는 방을 혼자 쓸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은 1인 1실을 주는데 생장 순례자 사무실은 혼자 방을 쓸 거라 장담은 못해준다고, 안내문에 이미 적혀있었기에 누군가와 같이 방을 셰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온터였다. 와보니 알겠는 게 겨울에는 두 명 정도, 봄가을 성수기 전에는 4명 정도, 성수기에는 6명씩 자원봉사자의 수도 바뀔뿐더러 남녀 성별 비율도 다 달라 그런 거였다. 산티아고에서도 많은 방중에 채광도 좋고, 다른 방들과 조금 떨어져 더 조용했던 방을 배정받아 참 운 좋다 생각했는데 생장에서도 운이 좋네.
내 방의 화장실은 아이린과 공유를 해야 하는데 그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이린은 막 은퇴를 한 중년의 아이리쉬 아줌마인데 너무 착하고 친절해서 내가 먼저 방을 같이 써도 된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언제든지 필요하실 때 신경 쓰지 마시고 들어오시라고 했다. 간단하게 샤워하는 시간만 서로 조율하고 씻은 뒤 바로 침대행이다. 피곤하긴 피곤하네… 내일부터는 아침 7시에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아침 8시 순례자 사무실 문을 열어 저녁 8시까지 달려야 한다. 그래도 오늘 경험의 첫인상이 ‘재밌다 ‘ 여서 앞으로 즐거운 한 주가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