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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기념해 산티아고를 걷기로 했다

만으로 치자! 아직 39살이다!

by 몽키거

2023년 8월 17일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나는 어떤 감정들을 발견할까? 그냥 궁금하다.


너무 어리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나이 40

단순한 치기도 아니고, 이제는 내가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나이.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때는 처음 마시게 된 술로 기념했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 때는 좋은 식당에서의 식사와 선물로 기념했다면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건 술이나 물질이 주는 일시적인 기쁨보 다는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스스로에게 주기로 했다. 그게 나의 30대에 안녕을 고하고 40대를 잘 시작하는 나의 기념식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산티아고를 선택했다.


다녀온 사람이 더 무서워

9년 전 2014년도에 쌍둥이 언니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우리 언니는 초반에 그만둘까봐 두려워 산티아고행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첫 일주일은 사진도 안 올릴 정도로 힘들어했다. 오죽했으면 내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부터 산티아고로 바꾸라고, 올리면 사람들이 알게되니 더 그만둘 수 없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냐고 했었다. 언니는 정말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글을 산티아고 순례중이라 바꿨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온 뒤 32일간의 여정을 잘 마무리했다.


2016년 언니의 순례자 여권

산티아고 길 위에서 큰 감명을 받은 언니는 돌아와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나와 함께 꼭 그 길을 걷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위대함은 익히 들어 알면서도 내가 찾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해 관심이 없었다. 단지 우리 언니가 걸은 길이라 조금 더 친숙한 느낌일 뿐?

무엇보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는 내가 외국 항공사에서 비행을 하고 있을 때라 한 달을 훌쩍 넘는 시간을 낼 수도 없어서 더 관심 밖이었던 것 같다.

* 오고 가는 비행기와 하루 이틀 전후로 여유 있게 날짜를 잡으면 짧아도 35일 이상이다.


코로나로 2년간 멈춘 세상

그러다가 2019년에 결혼을 하고 이탈리아로 왔다. 그리고 2020년에 코로나가 세상을 멈춰버렸다. 나는 외국에 있어서 그 단절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한국을 갈 수 있는 하늘길이 닫혀버리니 더 답답하고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이때 생각난게 산티아고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코로나가 끝나면 자유롭게 넓은 평야를 걷고 싶었다.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유가 필요 없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그런 이미지였다.


만 2년의 코로나가 끝난 건 2021년 겨울.

2022년부터 언젠가는 산티아고를 가야지 마음을 먹고 버킷리스트에 올려놨는데 30대를 마무리하는 2023년에 갈지, 40대가 시작되는 2024년에 갈지 생각하던 중 언니가 지금이다! 결정을 해줘서 2023년으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컨설팅으로 바쁜 언니가 일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끝내고 그동안 못 쓴 휴가를 모으고 모아서 3주를 받아내 산티아고를 부분이라도 함께 걷자고 한 것이다.

총 31일의 여정 중 언니와 11일, 마지막 3분의 1을 함께 걷고 산티아고에 같이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고민 할 일도 없었다. 적지 않은 마지막 11일을 언니와 함께 한다니 너무 즐겁지 않을까! 게다가 앞선 20일은 혼자 오롯이 산티아고 길을 경험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았다.


9월에 시작하는 나의 첫 산티아고. 만 39세가 되는 생일을 마드리드에서 축하하자마자 생장삐에드뽀흐행이다. 두근거리고 떨린다.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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