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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Mar 28. 2024

제일 예쁜 길은 아스토르가 가는 날인 걸 기억해

2023년 9월 26일 순례길 22일차 산마르틴에서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2023년 9월 26일 Camino de Santiago Day 22
San Martin del Camino - Murias de Rechivaldo : 27.22 km/
출발 06:00/ 도착 16:20, 총 7시간 40분 걸림
*12:40 - 15:20, 2시간 40분 동안 아스트로가에서 휴식, 식사 *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순례길 중 제일 아름다운 날은 아스토르가로 가는 날이라는거

  순례길 22일 차. 오늘은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날이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이 날처럼 완벽한 길과, 뷰와 이벤트들이 가득한 날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스토르가라는 나름 잘 발단된 유명한 도시를 지나니 이것보다 더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 나와 언니는 아쉽게도 아스토르가에서 1시간 정도는 더 떨어진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라는 작은 마을에 묵었는데 같이 걸은 J 씨를 포함해 H 양과 메구미 셋 모두가 아스토르가에 묵어서 정말 부러웠을 정도다.


 어디에서 시작하건 아스토르가로 들어가는 날이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하는 이유가 크게 3가지가 있다.

• 첫 번째, Hospital de Orbigo에서 보는 일출은 내 평생 본 일출 중에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

•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통틀어 가장 맛있고 멋있었던 도네이션 바 La casa de los Diases 가 나오는 날이다

• 세 번째, 우리가 지나갈 도시는 아스토르가! 가우디의 건축물도 있는 나름 큰 도시라 재밌다

*** 31일간의 순례길을 마친 이후에도 이 날만큼 멋지고 아름다웠던 하루는 또 없었다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아름다운 일출의 장관과 최고의 도네이션바의 먹거리, 아스토르가의 볼거리, 크게 힘들진 않은 길까지 너무나 완벽했던 최고의 날임을 장담한다.


1. 오르비고에서의 아침
아직 어둑한 오르비고의 다리


 아침 6시에 일정을 시작했다. J씨가 우리와 함께 걷겠다 해서 오늘은 든든하게 셋이 출발을 한다. 길도 편해서 수월하게 2시간을 보내고 돌로 만든 다리들로 이어진 작은 마을 호스탈 데 오르비고에 이르렀다.

 "어, 나 기억나! 여기 걸을 때 정말 행복했었어!"

 언니가 이 공기와 분위기가 너무 좋아 신나게 다리를 걸었던게 기억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함께 걸었던 분이 여기가 옛날부터 마상 창 시합으로 유서 깊은 전통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해주셨다고 한다.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아직 어둑어둑하고 설치된 가로등이 겨우 길을 밝히고 있어서 긴 다리 끝에 자리한 Don Suero de Quinones에 아침을 먹자고 들어갔다. 호스텔도 같이 하는 곳이라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겸 바에는 커피 한잔을 하며 오늘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이 몇몇 있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크림치즈 연어 베이글, 빵오쇼콜라에 커피를 시켜 바깥 발코니에 자리 잡았다. 9월 말이 라 살짝 춥긴 했지만 뭔가에 이끌려 오늘은 그냥 자연스럽게 밖에 앉았다. 그리고...


일출이 미쳤다


 30분 동안 우리를 이 자리에 잡아둔 일출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예쁘게 불같이 타오르며 춤추듯 피어오르는 일출은 정말 매 분 매 초 그 모양새와 색감이 바뀌어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건 미쳤다."

 이 말을 서로 반복했다. 아름답다? 예쁘다? 평온하다? 이런 수식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열정적이고 변화무쌍하고 화려한게 정말 사람 혼 쏙 빼놓았고, 발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일출 전에 도착한 이곳을 지나가지 않고, 다리 끝의 바에 들어온 것, 베란다에 앉기로 한 것, 단순히 커피 한잔을 마시고 빨리 나가지 않고 음식들을 시켜 보통 때보다 오래 머문것 등 무언가 신이 우리에게 이 멋진 일출을 선물로 주기 위해 정교하게 마련해 두신 계획 같아 신비로운 느낌까지 들었다. 너무 재밌게도 이 순간을 기억해 두기 위해 한참 비디오로 풍경을 찍고 있는데 그 프레임 안으로 H 양과 메구미가 들어왔다.

 "여기야 여기!"

 크게 손을 흔들어 그들도 지나가지 않고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서 이 귀한 진풍경을 지켜보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이렇게 멋지게 아침을 시작하다니 꿈같았다. 다시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그때도 잊지 않고 꼭 일출 전 어둑할 때 미리 이곳에 와서 앉아있을 것이다. 일출에 매료돼서 보통은 좋은 걸 볼 때 생각나는 남편이나 우리 엄마가 머리에 스치지도 않았다. 바닷가에서 항해를 너무 오래 하면 선원을 홀리는 세레나의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아마 오늘이 나에겐 그런 날이었지 싶다. 나에겐 일출의 일렁임이 슬로모션처럼 느렸는데 메구미와 H 양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걸어보려 하니 이미 30분이 훌쩍 지나있었다. 혹시 알아? 우리가 천국을 살짝 엿봤던 거였을 수도. 왜 시공간이 다른 곳에선 그 시간의 속도도 다르다잖아. 여하튼 순례길 22일 차에 이런 엄청난 일출은 처음이어서 감동이었어.


2. 도네이션 바에서의 간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도네이션 바 La casa de los Dioses


 오늘은 길도 널찍한 데다 자갈밭도 덜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있긴 했지만 귀여운 수준이어서 걷는게 훨씬 재밌다고 느껴졌다. 언니도 나와 생각이 같아 오늘이 어제보다 더 수월하고 재밌다고 해서 다행인 데다 J씨와 셋이 마치 매일 함께 걸었던 사람들처럼 위화감 전혀 없이 말이 너무 잘 통해서 즐거웠다. 성별이 다른데도 서로 불편함 없이 함께 걷긴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건 아마 유한 성격의 J씨나 사교적인 언니 둘 다 아무 하고나 잘 어울리고 서로 존중하니까 가능하긴 한 것 같다.

 살짝 긴 언덕을 올라가니 평지를 걷기 시작했을 때 언니가 소리친다.

 "저기야, 저기! 내가 너랑 같이 가고 싶었던 도네이션 바!"

  저 멀리 오른쪽에 뭔가가 보이는데 점점 거리가 가까워져서 보니 정말 멋진 도네이션 바다. 언니는 9년 전에 산티아고를 걸으며 곳곳에서 좋은 도네이션바를 많이 만나 소정의 기부를 해가며 바나나, 복숭아도 챙겨가고 작지만 소중한 감동과 힘을 얻었다고 했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어떤 사람들은 순례자들을 위해 매일 간식과 음료를 준비하는 그 컨셉 자체가 너무 따뜻하고 재밌어서 나도 정말 기대를 많이 했던게 도네이션바인데 정작 22일을 걸으면  제대로 만난 적이 없어 잊어가던 차였다. La casa de los Dioses라고 이름도 있는 이곳 도네이션바는 부부가 터를 잡고 운영하는 정말 유명한 곳이다.


다들 기분 좋게 먹고, 인심 좋게 도네이션 듬뿍하고 간다


 "이 도네이션바가 내가 제일 행복했던 곳이야!"

  도착하고 보니 이건 일반 도네이션 바의 상상을 넘는 파티 수준이다. 커다란 나무 상에는 하나씩 다 맛보기도 어려울 정도의 가짓수의 과일, 간식이 놓여 있었고 맞은편에는 커피나 티 등 각종 음료를 만들 수 있는 간이바가 만들어져 있었다. 수박귀신인 우리 언니는 가장 먼저 수박을 집어먹고 눈이 커다래진다. 평소 수박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언니가 하도 들이대는 바람에 작은 조각 하나를 먹었는데, 어머나, 수박이 달고 맛있는 건 물론이고 시원하다! 도네이션 바에서 어떻게 수박까지 차게 준비했는지 이분들은 순례자를 배려하고픈 마음이 정말 보통이 아니시구나 싶었다. 내가 39년 살아오는 동안 가장맛 있었던 수박이었다. 더운 날 미적지근한 과일, 특히 미적지근한 수박을 먹는게 유쾌하진 않을 것 같아 눈길도 안줬는데 뭐야 여기. 여기도 마법의 공간인 거야 뭐야.


여긴 요정들이 만찬하는 곳 같다


 나는 복숭아 1개랑 치즈를 좀 썰어 먹고 초콜렛을 한 조각 잘라먹었다. 그리고 5유로를 기부했는데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J 씨는 그곳에 있는 기타를 집어 들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우리 언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수박을 먹느라 행복하고, 순례자들이 이곳저곳 자신의 그룹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나누는 이 분위기의 선함이 좋았다. 이 분위기가 조금 표현하기 힘든데 아침에 일출을 봤던 때와 비슷하게 다른 시공간에 들어와 슬로모션 같이 움직이는 잔치 같았다. 너무 신기하고 재밌고 쿨했던 도네이션 바. 주인 커플이 곳곳에 피우는 인센스의 향까지 모든게 행복했다. 다시 가도 너무 일찍도 아니고 더 늦게도 아닌 같은 시간에 오고 싶다. 10시 40분!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3. 아스토르가에서의 점심
가우디의 주교궁 그리고 아스토르가 대성당


 12시 반쯤 큰 도시 아스트로가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들은 이곳에서 오늘의 일정 끝이라니 부럽다. 대성당도 있고, 광장도 있고 가우디의 건축물인 주교궁 등 볼 것이 참 많아 여기서 1시간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은게 아쉬울 정도였다. 스페인 광장에 있는 Cafe Pasaje에서 점심 세트 메뉴를 먹고 가기로 했는데 그냥 근처 만만한 곳이 없어서 광장에서 분위기 좋아 보이는 곳을 골라 들어간 곳이었다. 나중에 확인하니 평점이 안좋던데 우리는 아주 예쁜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고 2층에서 프라이빗하게 해 가득 들어오는 곳에서 맛있게 식사를 해서 정말 좋았다. 음식도 그동안 2~3개의 메뉴 중에서 골랐던데 비해 통 메뉴에서 코스당 10가지 정도의 음식 중에서 원하는 요리가 다 되어서 역대급 초이스를 할 수 있었다. 가격은 인당 16.9유로로 2만 4천 원 가격이지만 그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 싶게 맛있었다. 나와 언니는 처음 코스로 대구수프와 빠에야를 먹었고, 메인으로는 소고기 버섯소스에 문어를 먹었는데 다 맛있었다. 디저트는 플란과 치즈케이크로 마무리.


오늘의 메뉴 델 디아


 간만에 고급스럽게 세팅된 테이블에서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마시며 도시 나온 기념을 한다. 모든게 완벽한 하루가 계속 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언니와 나는 자리를 털고 남은 1시간 정도를 마저 걸어야 했다. 지나가는 길에 가우디의 주교궁도 봐주고,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로 이동했다. 언니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똑같이 도시를 정했는데 뭔가 아쉽다. 그리고 걸으면서 큰 교훈 하나를 새겼다지


오후에는 절. 대. 로. 걷지 말자고!


 겨우 1시간 더 걷는 거고 길이 힘든 것도 아닌데 2시 반을 지나서 걷기 시작하니 해가 더워도 너무 덥다. 1시간을 걷는게 꼭 2시간을 걷는 느낌이어서 앞으로 어디 들려서 쉬고 가지 말기! 하루의 일정은 오후가 되기 전에 일찍 끝내기로 결정했다.

 너무 지치는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도착한 숙소에선 우리 방 화장실에 문제가 있다고 다른 호스텔로 안내해 주겠단다. 뭔가 완벽했던 하루가 점심식사 이후로는 힘들어져간다. 재배정받은 같은 급의 호스텔에서 짐을 풀고 정말 일찍 잠이 들었다.

 일출 때 살짝 천국을 엿보고, 도네이션바로 만찬에 초대되었다가 아스트로가에 사람들이 만든 문명으로 걸어 들어간 꿈같았던 하루를 뒤로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오늘의 산티아고 숙소 리뷰
2023년 9월 26일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Albergue Casa Rural Las Aguedas
다음 날 나가기 전에 불 밝혀진 리셉션 사진 밖에 없다

가격: 개인실, 60유로 (8만 6천 원)

구글평점 4.6 내 평점 4.3

제일 중요한 수건 유무 : 있음

담요/이불 유무 : 있음

위치 : 마을 초입이지만 마을이랄게 없다.

다시 와도 여기 예약할 건가요? 글쎄요

 나의 경험 : 인테리어는 산장 느낌, 전체 분위기는 히피 느낌. 형제 같아 보이는 주인 두 남성분이 매우 친절하고 영어를 엄청 잘하신다. 개인실 건물이 도미토리 건물과 떨어져 있고, 우리만 개인실을 예약했는지 조용해서 좋았다. 전체적으로 돌과 나무로 된 산장 느낌이라 올드한 느낌에 매우 추웠지만 담요가 넉넉해서 잘 잤다. 개인적으로 이 마을 자체가 아무것도 없어서 아스토르가에 묵을걸 후회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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