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두 번째 행선지
퇴사하고 나서 대부분의 날을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이 든다
아무런 의무도 나를 찾는 이들도 없기 때문에 느슨하게 일어난다
아침에 자연스럽게 생태시계와 인기척에 깬다는 것은 정신에게 이로운 일이다
이번에 온 곳은 영어로 플로렌스(Florence) 꽃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음에 드는 정착지를 찾고자 타 지역으로 여행 겸 이동하면서 지내고 있다
지금이야 웃어넘기는 작은 해프닝이지만 가는 과정에 우열곡절이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외국인인 나는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모른다
기차에서도 짐 도난이 있다고 해서, 잔뜩 경계를 풀지 않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재밌게도 좌석이 크게 4등급으로 상세하게 나뉘어 있다 (Smart, Business, Executive, Salotto)
처음 탔던 기차는 Smart-ecomomy 좌석이었다
행선지가 나오는 화면이 없어서 오로지 스피커에 의존했다
철로 구조상 피렌체 역이 종점일 거라 추측하며 '모든 사람들이 내릴 때 함께 내려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여성이 와서 '실례지만 여기 제 자리예요' 하고 말을 거는 순간
기차가 다시 출발했고, '아차' 이곳이 내려야 할 곳임을 깨달았다
다음 역에 기차가 멈추면 이번엔 꼭 내려야지 하고 아예 복도에 서있었다
검표원이 무임승차로 생각하면 어쩌지 하고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무심하게도 기차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40여분을 더 가서 볼로냐 역에 정차했다
이왕 여기 온 김에 볼로냐를 구경할까 생각도 잠시 스쳤지만
거대한 캐리어들을 끌고 어디를 갈 정신이 아니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피렌체 역에 도착했다
'여기도 돌길은 마찬가지구나' 캐리어는 이미 흠집 투성이가 된 지 오래이다
호텔 앞에 도착했는데 대문에 초인종이 없었다 (인터폰으로 열어줘야 건물로 입장할 수 있다)
마침 함께 도착한 타이완 여성과 함께 몇십 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입장할 수 있었다
셀프 체크인이었고 채팅으로 신원이 확인되면 입장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클래식한 이탈리아에서 누가 셀프 시스템인 줄 알았겠어, 하하..
이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캐리어를 들고 낑낑 올라갔다
함께 들어온 타이완 여성은 고맙게도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셨다, 나도 보답하며 살아야지
낯선 외국에 있을 때 작은 도움들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 사람으로 인해 해당국가의 인식조차 바뀌기도 한다
들어가서 본 내부는 태어나서 본 호텔 중 가장 허름했다
건물은 지어진지 거의 100년이 다되었고, 그 이후 리모델링을 한 번이라도 했을까
열쇠 하나가 잠금장치의 전부였고, 방 문은 마음먹으면 남자가 부실 수 있을 정도였다
혹시나 밤에 누가 침입할 까봐 문 앞에 의자를 끌어다가 막아놓으며 잠들기도 했다
'여기 2층이니까 누가 들어오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도 괜찮을 거야'
작은 머릿속으로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겁쟁이였다
웃기게도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였는가, 며칠 지나니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피렌체에서 눕고 널브러질 수 있는 공간
이탈리아는 식당에서 음식을 코스로 주문한다
식당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긴밀히 대화하는 장소로 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와인 한잔을 곁들여 마시는 천천히 누리는 분위기이다
그래서인지 혼밥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은 카페에서 긴밀한 대화를 하는 반면 이탈리아는 그 장소가 식당이다
여기의 카페에 한 시간씩 앉아있으면 에스프레소 싸대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중부지역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왔다고 물가가 높아진 게 실감 난다
식당, 마트, 커피 어딜 가든 로마보다 1~2유로 높다
직원들은 여행객들에게 맞춤되었는지 이탈리아 답지 않게 세상 친절하였다
나중에 계산할 때 금액을 보니, '자본주의에 학습된 친절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고향이 피렌체이다
어린이 신문에 단편으로 기재하다가 오늘날의 동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피노키오 원목 장난감을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상점이 많다
이밖에도 티본스테이크와 가죽이 유명하다
가죽시장에서 저렴하고 질 좋은 제품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스테이크 사용하고 가죽을 활용해서 발달되었나?라는 합리적인 의구심을 가져본다
호텔이 위치한 길을 따라가면 로맨틱한 와인가게가 있다
피렌체는 이런 골목골목이 아담하고 예뻐서 매력적이다
제리가 나올 것만 같은 작은 문을 두드리면 와인을 한 잔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일어서서 안주 없이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이탈리아는 대부분 가톨릭교라 성당이 많고 미학적으로 정말 우수하다
무교인 내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종교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산타 마리아 대성당'도 일요일에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다
나도 여기 만의 종교 문화에 참여하고 싶어서 맞춰 참여했다
30분 정도 진행되었고 한국의 천주교에서 교황의 분위기가 더해진 느낌이었다
돔에 있는 천장화는 신과 구원해 주는 인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스레 우러 보게 되니 저 높이 그리지 않았을까
Vecchio 다리는 '오래된'이라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짧은 다리 위 에는 롤렉스부터 해서 각종 보석상점이 모여있다
여기를 기점으로 관광지화 된 모습과 꾸며지지 않은 현지로 나뉜다
아르노 강에서 건너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온다
목적 없는 여유로운 여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가다가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서 충분히 구경하고 머무르다 오는 것
모든 걸 느낌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맞춰 이동한다
목적지에 가다가도 끌리는 골목길이 보이면 경로를 이탈하기도 한다
로마는 현지인과 타지인이 어느 정도 섞인 분위기라면
여기는 거의 대부분이 여행객인지 너도나도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동네이지만,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관광지화 되었고 규모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지금은 조금 여유롭고 영어보다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현지에 스며들고 싶다
그래서 또다시 정착지를 찾고자 이동한다, 다음 편에 리코타씨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