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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chy foot Oct 18. 2023

3개 국어 하는 아이로 키우기 (1)

유아기부터 유치원까지

  해외 생활의 첫 관문은 언어이고 마지막까지도 언어인 것 같다. 그래서 해외살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면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살면 살수록 언어를 잘하는 게 얼마나 많은 혜택과 기회가 주어지는지를 봐 온 사람으로 언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노하우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개인적 경험담이 대부분이니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읽어도 된다.)


1. 싱가포르에 오기 전

  싱가포르에서 살기 시작한 건 아이가 만 36개월이 안 되었을 무렵이다. 그 무렵은 아이의 국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을 시기였다. 그래도 해외에 가기 전에 영어를 좀 가르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사과 그림을 보여주며 "애플이야. 애플. 따라 해 봐."라고 하자 아이의 반응은 "그게 무슨 애플이야. 사과지."였다. 난 순간 할 말을 잃었고 "그래 사과지, 네 말이 맞아."라고 말했다. 그냥 나중에 가면 영어 공부할 테니까 나중에 하자. 그리고 우리말부터 더 잘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국어책을 읽어줬다. 


싱가포르 유치원 과정 (3개 과정으로 나뉘지만 보통은 N1~K2 과정을 주로 다닌다)


2. N1 ~ N2 과정 (Nursery grades)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아이와 손잡고 간 놀이터에서 아이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놀이터에 가기 전에 딱 두 문장만 가르쳐줬다. 'Hello'라고 인사하는 것과 "I'm OO."이라고 본인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 말이다. 그런데 아이가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그 두 문장을 말하자마자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은 영어로 엄청난 질문을 해댔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얼어버렸고 아이가 대답이 없자 놀이터의 아이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저 친구들하고 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래서 아이에게 영어를 알아야 한다고 대답을 해 줬더니 영어로 된 만화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볼 만한 '도라도라'부터 디즈니 만화 시리즈까지 모든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아이는 매일 몇 시간씩 '도라도라'를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도라도라'에서 나오는 스페인어 '그라시아스'까지 따라 하며 영어에 빠져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첫 영어 선생님은 '도라'였다. 


   그러면서 콘도 안에 있는 하루 2시간짜리 유치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 후 HDB(정부 아파트) 아래에 있는 풀타임(종일반)으로 보낼 수 있는 유치원에 등록을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내가 회사에 다녀서 어린이 집에서 하루종일 있었던 아이라 여기에서도 잘 적응하리라는 생각에 풀타임으로 보냈는데 이때부터 몇 달간은 정말 전쟁이었다. 언어가 답답한 문제도 있었겠지만 유치원의 분위기 밝지 않은 관계로 유치원이 무섭다는 거였다. 아침마다 유치원 문 앞에서 30분씩을 울고 서성이고 실랑이를 하다 겨우겨우 들어갔다.  

  그래서 다시 유치원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밝은 분위기의 유치원을 말이다. 물론 유치원 가격은 훨씬 더 비쌌지만.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밝은 분위기의 유치원을 방문해서 다른 친구들 공부하는 것도 보여주고 화장실, 샤워실, 식사하는 것도 다 확인을 하고 나서야 아이는 새 유치원이면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새 유치원으로 옮겼다.  


   난 정말 1년만 지나면 아이가 영어를 로컬 아이들만큼 할 거라고 착각을 했었다. 아이들은 스펀지 같으니까 그걸 해 낼 거라고. 물론 1년 정도 지나자 아이의 영어 귀는 뚫리기 시작했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도 제법 잘했다. 하지만 영어가 많이 늘었다는 거지 로컬 아이들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에서는 영어 노출이 가능하지만 집에 오면 한글을 배우고 국어책을 읽고 콘도의 다른 한국 아이들과 놀았으니까 말이다. 그저 난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똑같이 향상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니 말이다. 


3. K1 ~ K2 과정 (Kindergarten grades

   아이가 유치원에서 K1이 될 때쯤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됐다. 그때 한싱(한국-싱가포르) 부부 가족의 아이들과 자주 놀게 됐는데 그때 알았다. 그 아이들의 영어 수준과 내 아이의 영어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어에 몰입시켜야겠다고 생각해서 친구들도 영어를 하는 친구들 위주로 놀게 했다. 그때 하루의 80% 이상을 영어 노출 환경으로 만들고 본인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또래 친구들과 놀면서 아이의 영어가 거의 로컬 아이들의 영어 수준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우리 집을 방문했던 한 지인이 있었는데 그 한국인 지인분은 싱가포르에 있는 미국 회사에서 근무를 할 정도로 영어를 정말 잘했다. 그런 지인이 나에게 우리 아이와 친구들이 노는 걸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본인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아이들이 사용을 하고 저렇게 편하게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다면서 본인도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거주했으면 너무 좋았을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아이의 영어가 엄청 늘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K1에서 영어를 다졌고 K2가 되면서 그동안 찔끔찔끔 공부하던 중국어를 넣기 시작했다. K2 과정이 끝나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야 해서 사실 중국어가 너무 걱정이 됐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배우는 중국어, 중국어 학원, 중국어 과외, 그리고 구몬 중국어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영어에서 중국어로 몰입할 수 있게 다시 판을 짜기 시작했다. 

4. 매일 집에서 시킨 언어 공부 방법 

   매일 집에서는 영어 만화와 영어책, 국어책을 읽혔다. 정말 하루도 빼먹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아기 때부터 자기 전에 매일 한두 시간 책을 읽어줬기에 아이는 책을 무척 좋아했지만 유아기에 영어라는 다른 언어가 들어오면서 한글이 늦어졌다. 그래서 국어책은 엄마가 읽어 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학습지를 가지고 와서 그것도 같이 했다. 
   영어는 '잠수네 영어' 방법에 따라서 영어 듣기를 흘려듣기, 집중 듣기 두 가지로 다 시켰다. 그런데 커가면서 아이는 책의 내용이 궁금해져서인지 CD로 책을 듣기 시작하면 다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집중 듣기를 2시간 이상 하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매일 영어 만화도 아이가 보고 싶다는 걸 틀어 줬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한데 우리 아이는 좋아하는 건 몇십 번 몇 백번을 보는 타입이라서 원하는 대로 계속 보여줬다. 
   중국어는 집에서 과외나 학원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러다 싱가포르 서점을 뒤지다 보니 중국어도 책과 CD가 같이 나오는 게 있어서 그걸 구입해서 보게 했다. 
   언어 공부와는 별도로 오후 2~3시간은 친구들과 항상 놀게 했다. 친구들과 놀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사용해야 해서 그 시간은 아이에게는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기도 하고 언어를 연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로컬 유치원 vs 국제학교 유치원


   내 아이에게 맞는 유치원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 게 로컬 유치원인지 국제학교 유치원인지이다.  


   1) 싱가포르의 거주 기간을 생각해 봐야 한다.    

        보통 주재원으로 나와서 학비를 지원받는 경우는 국제학교 유치원 선택이 맞을 것이다. 주재원이 아니더라도 2년 정도 거주 예정이라면 그 또한 국제학교 유치원 선택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해당 언어권의 국제학교를 보내면 원하는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아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국제학교 특성상 아이는 좀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거주할 생각이며 향후 초등학교를 로컬로 보낼 생각이라면 로컬 유치원 선택이 나을 것이다. 물론 국제학교에서도 중국어 수업(다른 외국어 수업도 있음)을 추가로 하지만 수업이 많지 않다. 하지만 로컬 유치원은 매일 영어와 중국어 수업이 있다. 그리고 유치원 커리큘럼도 초등학교 커리큘럼을 따르기 때문에 이 점이 유리하다.


    2) 학비에 대한 부담감을 생각해 봐야 한다. 

       로컬 유치원을 선택할 경우 학비는 다양한 선택지가 가능하다. 유치원 시간은 하루 3시간, 반나절, 풀타임(종일반) 중에서 선택하게 된다. 물론 유치원에 머무는 시간에 따라 학비가 달라지지만 무엇보다 공립이냐 사립 유치원이냐에 따라 금액 차이가 많이 난다. 보통 HDB(정부 아파트) 아래에 있는 유치원들은 좀 저렴한 편이지만 브랜드가 있는 유치원들은 한국의 고급 영유 정도의 학비라고 봐야 한다. (우리 아이가 선택한 밝은 분위기의 유치원이 이곳이다.)
       국제학교 유치원의 경우는 로컬 유치원의 2~4배 이상이 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장기간 학비를 부담할 수 있으면 몰라도 1년만 보내고 옮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안 된다. 국제학교는 입학금부터가 만만치 않다. 


    어떤 유치원이 좋냐고 묻는다면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라고 하고 싶다. 아이가 자유로운 영혼에 가깝고 오래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면 국제학교가 더 맞을 수도 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거나 배우는 걸 좋아하면 로컬 유치원이 더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성향이 바뀌기도 하고 유치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살면서 싱가포르 교육 커리큘럼이 기대가 된다면 로컬 유치원 선택이 좋을 수 있다. 참고로 다른 동남아시아와는 달리 싱가포르는 국제학교보다 로컬 학교의 수준이 훨씬 높고 공부도 많이 시킨다. 이 점을 판단 기준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사진 출처:  https://www.schoolbag.edu.sg/story/driving-moe-kindergart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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