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와 대형마트

by 아인도

플랫폼 기획자의 아침은 전날 밤 쌓인 데이터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된다. 밤새 사용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이탈자는 없었는지, 어떤 상품이 잘 팔렸는지, 프로모션의 성과는 어땠는지, 테스트 중인 기능은 가설대로 작동했는지, 그리고 CS센터로 접수된 불만은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본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루의 업무 우선순위를 정한다.


직원들이 잠든 시간에도 플랫폼은 멈추지 않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은 24시간 서비스를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데이터로 흔적을 남기고, 그 데이터는 곧바로 기획팀의 분석 자료가 된다. 덕분에 플랫폼은 낮 시간에만 운영되는 기존 오프라인 중심 경쟁자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며,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만큼 강력해진다.



홈플러스의 몰락은 영업시간 규제 때문일까


최근 홈플러스의 위기가 화두다. 기업 회생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전국 15개 매장의 폐점을 예고했다. 매출은 2018년 7조 6천억 원에서 꾸준히 줄어 현재 6조 원대에 머물고 있고, 2021년 이후 적자가 지속되는 상태다. 회생법원 의뢰를 받은 회계법인의 분석에 따르면, 계속기업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아 앞으로의 전망 또한 어둡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홈플러스가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에 밀린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의무 휴업’ 규제를 꼽는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이 제한되면서, 휴일이나 늦은 밤의 소비 수요가 온라인으로 이동했다는 설명이다. 규제만 풀어도 매출이 20~30% 증가해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영업시간의 제약이 아니다. 설령 규제가 완화돼 매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해도 대세를 바꾸기는 어렵다. 본질은 데이터에 있다. 쿠팡은 직원들이 잠든 시간에도 365일 24시간 소비자의 클릭, 검색, 구매 여부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학습한다. 반면 홈플러스는 매장 영업이 종료되고 불이 꺼지는 순간, 데이터의 흐름도 함께 멈춰버린다.



시간과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플랫폼


문제는 시간만이 아니다. 플랫폼은 지리적 제약에서도 자유롭다. 고객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출장지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밤늦게 KTX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길에도 그는 여전히 쿠팡으로 주문할 수 있지만, 집 앞 홈플러스에 들러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설령 대형마트가 365일 24시간 영업한다 해도 이러한 지리적 제약을 극복할수는 없다.


김기훈 교수는 저서 <AI 시대의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터넷상에서는 지리적인 제약을 뛰어넘은 플랫폼 형성이 가능해졌다. 온라인 시장을 통하면 서울에 사는 구매자가 부산에 있는 판매자로부터 난로를 구매하고 택배 업체를 통하여 배송 받을 수 있다. 지리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제약도 뛰어넘었다. 온라인 구매는 24시간 가능하다. 이런 물리적인 제약 없이 판매자와 구매자 간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온라인 시장은 확장성이 뛰어나고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


플랫폼이 수집하는 데이터는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전통적인 대형마트가 접근하기 힘든 영역까지 파고든다. 고객이 처음 유입되는 경로, 구매 결정에 이르는 과정, 구매 이후의 반응, 개인의 신상정보와 취향까지. 경험 전반이 데이터로 축적된다.




예컨대 이커머스는 고객이 ‘구매하지 않기로 한 순간’조차 기록한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내려놓은 상품, 특정 프로모션이 전환율에 미치는 효과, 구매 전환이 일어나는 적정 가격대, 이탈이 발생한 단계, 병목으로 작용한 지점까지 모두 추적하고 분석한다. 대형마트가 결코 알 수 없던 ‘보이지 않는 선택의 과정’을, 플랫폼은 정밀하게 기록하고 학습한다.



멈추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


위와 같은 차이는 유통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 콘텐츠, 교육 등 다른 분야의 플랫폼 역시 24시간 데이터를 수집한다. 누군가 새벽에 송금하거나, 출근길에 영상을 시청하거나, 밤늦게 온라인 강의를 듣는 순간 모든 활동이 데이터로 기록된다. 반면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업은 매장 문을 닫는 시간에 데이터 축적도 함께 멈춘다.


이러한 변화는 스마트폰 보급 이후 본격화됐다.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을 쥐게 되면서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이 데이터화되었다. 여기에 스마트워치·스마트링·스마트 글래스 같은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 스피커·로봇청소기·스마트 냉장고 같은 스마트 홈 기기, 전기차·공유 자전거 같은 모빌리티, 스마트 패치·스마트 체중계 같은 헬스케어 디바이스까지 더해지며, 플랫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마구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는 전통적 방식으로 매출을 올리는 기업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역량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가 곧 경쟁력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매일 축적되는 데이터의 양과 질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미래의 승부는 당장의 매출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학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조직 전체가 명확히 인식하고 업무에 임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인수할 때도 매출보다 데이터를 먼저 본다. 인스타그램은 2012년 페이스북에 인수될 당시 매출이 전무했지만, 약 3천만 명의 사진과 소셜 데이터를 보유한 덕분에 1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7년 애플이 약 2천억 원에 인수한 래티스 데이터 역시, 이미지·텍스트 등 비정형 데이터를 정형화해 AI 머신러닝에 활용할 수 있도록 변환하는 기술과 관련 데이터셋을 보유한 점이 핵심 가치로 평가됐다.



정보경제 시대의 총알,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개인이나 법인이 은행에는 돈이 별로 없지만 거대한 정보 데이터 은행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 사람 또는 법인은 그 나라에서 가장 부유하거나 가장 힘 있는 존재일 수 있다.


화폐경제 시대에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승리했듯, 정보경제 시대에는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자가 승리한다. 플랫폼은 새로운 디바이스, 시간·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서비스, 데이터 수집에 최적화된 조직을 통해 전통 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다. 데이터가 무기인 시대, 전통 기업이 수백 발의 총알을 들고 싸우는 동안 플랫폼은 수천 발의 탄환을 장전한 채 전장에 나서는 셈이다.


이커머스와 대형마트의 경쟁을 자산, 매출, 영업이익 같은 눈에 보이는 수치로만 평가한다면 본질을 놓친다. 진짜 경쟁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형마트가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재무구조 개선이 아니라, 고객 여정 전체를 데이터로 포착하고 이를 의사결정에 녹여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결국 정보경제 시대의 생존 전략은 데이터에 투자하고, 데이터로 무장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로벌 기업과 가톨릭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