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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itdaa Nov 23. 2017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잇다 김태균 멘토님이 작성해주신 칼럼이에요.

7개의 명함

1. 직업군인: 계약직(?)

2. 인력파견: 파견직

3. 민간기업: 계약직

4. 프리랜서: 프리랜서

5. 중소기업: 정규직

6. 공공기관: 계약직->정규직

7. 민간기업: 정규직


참 우여곡절이 많은.. 그리고 시끄러웠던 지난 13년

남들은 번듯한 대학 나와서 떡하니 좋은회사 취직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그렇게 사는데...

참 희안하게 그리고 별나게 살아왔다.(이제와서 생각이지만 어렸을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유를 이제야 찾은..) 세상에 원망도 많이했었지만 그래도 살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고 내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끄적이는 글...



직업 시작은 직업군인이였다. 뭐 갖춘것도 배운것도 없었던지라 튼튼한 몸 하나 믿고 시작한 직업군인의 길

당연히 장기복무가 될 줄 알았는데... 나가란다. TO가 없다고... 세상에... 그럼 뽑지말던가...

잃어버린 6년이 될것이냐 아님 6년의 경력자가 될것이냐는 본인 하기 나름이다...

한동안 방황을 하고 정신차려보니 와이프와 애가 있었다.

군에서 해왔던 네트워크 운영 기술을 바탕으로 조금 더 심도있게 배우기로 했고 약 2년간 주말을 반납하며

전문교육을 배우고 당시 트랜드였던 보안기술까지 배웠다. 


사회의 첫발은 파견직으로 출발했다.

파견직이란... http://blog.naver.com/evidence1052

위 블로그에 적어놨으니 참고;;;

여튼... 전역을 앞두고 불안함이 엄습해올 무렵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

XXX님께 ~~~포지션을 제안드리고 싶으니 첨부해드린 이력서를 작성하셔서~~~~

사회초년생에겐 온갖 전문용어가 멋있게 들렸고 바로 덥석 물어 인력파견회사에 이력서를 보낸 뒤

면접을 보고 그렇게 사회생활은 시작하였다.(군 전역일 보다 먼저 취업한건 비밀...)

관제업무... 듣도보도못한 업무 룰이였다. 주야간 교대근무... 급여는 정말 최저임금 수준...

여기서 또 갈림길... 계약기간 2년동안 잃어버린 2년이 될것이냐 아님 경력으로 쓸것인가...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것 같았다. 그래서 미친듯 매뉴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느낀 교훈은 진정한 실력은 남을 가르칠수 있어야 한다는것...


세번째 직업은 파견지에서 자체계약직으로 전환시켜주고 회사 IT를 운영하는 부서에서 근무했다.

번지르르 하지만 당시 내 별명은 여의도 거지 ㅡ.,ㅡ;;

혹시 드라마 '직장의 신'을 봤다면 그 와이장에서 계약직... 그게 딱 나였다.

최저임금보다 살짝 높은 급여를 받으며 정규직들 사이에서 업무 보조를 하던...

이때 또 한번 느꼈다... 공부를 해야한다. 지금 내 신분으로 어렵다면 업그래이드를 해야한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생활고는 누적이 되어가고 제대후 약 4년간의 마이너스는 결국 폭발을 한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프리랜서

매일 돈에 긍긍하던 날 어느분께서 프리랜서를 해보지 않겠다고 제안하셨다. 

페이가 당시 내 급여의 두배

앞뒤 안보고 뛰어들었다.

그런데.. 지방이란다. 숙소를 제공해준다지만 먹을것과 이동간 교통비는 다 내몫

하지만 그보다 더 속상했던건 개발업무라는것...

난 개발을 한 적이 없다. 배워본거라곤 보안강의 들을때 C, JAVA언어 3개월 배운것...

미안함에 눈치만 보였고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곳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일을 찾아봤다.

다른 사람들이 개발을 하면 난 그 화면의 매뉴얼을 만들었고 수천가지 공정에 대한 표준코드를 작성하였다.

그렇게 지원업무를 하며 틈틈히 공부를 하였고 내가 해줄수 있는 단순 노가다 작업은 자처해서 수행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끝났고 PM으로 부터 다음 프로젝트도 같이가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다섯번째는 중소기업 기술지원 담당자였다.

보안을 배웠고 회사를 다녀봤으며 프리랜서도 해봤더니 문뜩 다른회사들은 보안을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이 회사들을 다 돌아다닐 수 있는 직업... 기술지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보안 및 빅데이터 솔루션 담당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봤고 지원했으며 운좋게 합격하였다.

프리랜서 업무도 일종의 빅데이터였기에 이해하기 편했고 이 직장에 근무하면서 여러 회사에 돌아다니며

보안정책, 문화를 습득할 수 있었다. 


여섯번째는 공공기관...

군에 대한 미련이 남았을까??

공직에 대한 환상이였을까

공공기관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다행이 운좋게 최종합격을 하였고 입사를 했으나

아뿔싸

IT+보안+개인정보 통틀어 나 한명이였다.

이 기관에 다니며 정말 미치고 환장할 경험도 수없이 하였고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경험도 했다.

그래도 버텼더니 퍼즐이 조합되기 시작했다.

파견생활하며 매뉴얼 제작을 위해 익혔던 IT 기술, 군생활하며 익힌 네트워크 기술,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배운 개인정보, 전문기관을 통해 배운 정보보안, 그리고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봐뒀던 보안정책들...

이 모든것이 조합되니 업무가 한결 편해졌고 조금 더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에 따른 성과도 도출하였다.

그러나...

역시나 생활고에는 장사가 없는법...

거기에 성과연봉제라니... 공공기관에 다니면서 전에 다녔던 중소기업만도 못한 대우를 받게되니 가족부터도

난리였다.... 결국 둥지를 옮긴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노코멘트.... ㅎ


여튼... 

어디서 어떤일을 하던지.. 어떤 대우를 받던지... 뭐라도 남겨야 한다. 

나중에 내 기억, 내 실력, 내 실적을 남기기위해 작성해둔것들이 포트폴리오가 되고

내 몸값, 처우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현실에 만족할 수 없다면 미래를 위해 준비하자...

그렇지 않으면 남이 만들어둔 프로세스, 정책에 의해 끌려가게 되고 그러다 버림받는다면...

(경험자로써) 무지속상하다. ㅡ.,ㅡ;;


대한민국 청춘남녀 모두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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