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차 이커머스 프로덕트 매니저, 유니크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이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 더 좋은 솔루션이나 더 좋은 아웃풋들, 인풋들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라는 것들을 느꼈어요. 결국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힘들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도움 받기도 주기도 싫어했었는데 나도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고 나도 도움을 줄 수 있고 줘야 되는 존재구나 그게 사회에 내가 선을 베풀고 환원하는 방식이구나를 많이 느끼게 된 것 같아요.
프로덕트 매니저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지식이나 능력을 가져가야 되냐라고 했을 때 결국은 두 가지가 있거든요. 팀이 커지거나 내가 푸는 문제의 크기가 커지거나. 다양한 상황의 데이터와 화면들, 고객 경험들을 접하면서 계속 길러져 나가는 것 같긴 해요.
아이티백 유니크님 모셨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약 9년 차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니크라고 합니다. 이커머스에서 6년 정도 일을 했었던 것 같고요. 그전에는 핀테크 업계에서 스타트업에서 업무를 계속 했었고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어쩌다가 IT 업계에서 일하게 됐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해요.
저는 사실 전공 자체가 정치학이랑 미술사학이었어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원래는 도슨트를 하고 싶었습니다. 도슨트랑 큐레이터 쪽을 하고 싶어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다가 아예 박사 과정을 고민을 했는데 좀 더 미술사를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 가지고 근데 그전에 한번 비즈니스를 해보자 그래가지고 친구들이 많이 컨설팅 쪽을 했었어요. 그래서 베인앤컴퍼니라든지 그런 컨설팅 쪽 업무를 아예 비즈니스를 손 떼기 전에 한번 해보자라고 들어갔다가 구글플레이 오퍼레이션 컨설팅을 같이 들어가게 됐는데 했던 업무가 뭐였냐면은 한 6개월 동안 구글 플레이에서 탑 트렌딩 앱들 있잖아요. 매일매일 제가 다운로드를 계속 받으면서 리뷰를 쭉 하면서 구글 정책에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계속 검수를 하고 그리고 또 한국의 앱 상황들과 구글 정책이 만약에 컴플라이언스가 안 맞는다든지 아니면 로컬라이전이 필요해야 되는 된다든지 이럴 때는 정책 설계도 하고 그런 것들을 진행을 했었는데 하나씩 다운 받다 보니까 그때 소개팅 앱들도 막 나오는 그때였어요. 소개팅 앱이라는 게 있어부터 시작했던 그때 제가 한번 다 벤 시키고 그랬거든요. 소개팅 앱 업체 분들이 구글플레이 와가지고 이거 벤 시킨 사람 누구냐 이럴 때도 있었고 KG이니시스 앱 있잖아요. 그게 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어요. 근데 되게 중요한 앱이잖아요. 결제하는 그런 앱들인데 그것도 제가 그냥 어리니까 몰라서 그래서 업체 분들이 와서 역삼 센터에 오셔가지고 아무튼 그럴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계속 앱을 다운로드 받고 계속 이렇게 하나하나씩 화면을 뜯어보다 보니까 이게 왜 이렇게 만들어졌지 그리고 이 앱은 이런 수직 모델을 가지고 있구나 나라면 이 화면에서 이런 식으로 앱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계속 들기 시작했던 거죠. 그러면서 나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나도 이런 앱들을 서비스들을 고객한테 제공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됐고 근데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미술사학 전공하는 애가 뭘 알겠어요? 그래가지고 그때 정부 지원 프로그램들도 우후죽순 생겨나던 때라서 저녁에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아니면 코딩 프로그램 피그마 그때 다 배우기 시작했고 자격증도 취득하면서 IT 업계에 좀 발을 담가보자 했던 거죠. 그러면서 시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도슨트가 꿈이었던 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거든요. 근데 그 전에 도슨트는 왜 되고 싶었어요?
사실 미술을 보면서 그러니까 그림들을 보면서 저는 최근에도 매년 프랑스나 아니면 이탈리아나 이런 데를 가면서 항상 미술관들을 방문하고 하는데 작품들을 볼 때 이 작품이 한 획, 한 획이 천 년 전 아니면 몇백 년 전 실제로 사람이 그 앞에 서서 그림을 하나씩 하나씩 그어 나갔다라는 게 되게 저한테는 전율이 돋는 행위거든요.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서 보게 되면은 나도 모르는 그 사람의 철학이랑 그 사람들의 생각들 이런 것들이 보이는 게 되게 매력적이었고 그것도 미술사학 관점에서 다양하게 사람들이 사실 보잖아요. 그런 것들도 너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되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그러한 행위였기 때문에
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행위 그것까지 상상하면서 전율을 느낀다는 거잖아요. 근데 구글에서 앱 심사할 때는 그것도 사람이 만든 건데 막 리젝하고 그거랑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그게 KPI 매트릭 관점인데 제가 담당했던 매트릭은 검수를 얼마나 정확하게 하는가 그래서 앱에 정책에 위반되는 앱들을 얼마나 많이 추출하는가 선별하는가 이런 것들도 매트릭이었죠.
같은 사람이 봤지만 미술 작품을 볼 때 유니크님과 앱을 볼 때 유니크님은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었네요.
그렇죠. 미술 작품을 봤을 때는 이럴 수도 있지, 저럴 수도 있지 하는데 그 당시 정책가로서의 저는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되게 철저하게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리고 사실 미국 정책이었기 때문에 그걸 국문으로 번역한 게 따로 있었고 그래서 커노테이션이 사실 의미가 약간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들도 많이 보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정책이 법이잖아요. 그래서 그 정책 한 줄에 되게 많은 숨겨진 의미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정책을 검수하는 사람들에 따라 되게 다를 수 있긴 합니다.
미술 작품을 보면서 도슨트가 되고 싶어라고 생각이 들었던 건데 앱을 심사하면서는 이까짓 거 내가 만들 수도 있겠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걸로 저는 이해가 되는데 맞아요?
절대 절대 아니예요. 큰 업계에 파문이 일고 있는 거예요. 오히려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이 생각이 더 컸어요. 이 안에서 시스템들이 많이 돌아갈 텐데 저는 파이썬이 뭐야부터 시작했던 사람이니까 ‘앱을 어떻게 만들었지?’ 이건 되게 호기심부터 시작했던 것 같긴 해요.
그래서 바로 데이터 분석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데이터 분석을 선택한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기획도 뭘 알아야 기획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기획자가 되는 건 많은 리스크들이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저는 핀테크 업계부터 시작을 했으니까 데이터 하나하나가 가진 의미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를 하고 그리고 그 데이터를 그럼 어떤 식으로 나의 고객한테 보여줄 수 있을지를 정확하게 학습을 하고 소화를 해야 그걸 올바른 의미로 전달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데이터 분석부터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전략적으로 데이터 분석부터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거네요.
그건 아닌 것 같고요. 제가 스타트업에서 시작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우리은행의 위비 랩이라고 그 당시에 우리은행에서 키우는 핀테크 회사들이 있었는데 그 회사 중에 한 분이 제가 뭣도 모르고 레쥬메를 올렸어요. 잡코리아 이런 데 올렸는데 그걸 보고 연락을 해 주셨어요. 그래서 아직도 생각나는데 영등포 우리은행 지점에 눈이 내리는 밤이었고 제가 퇴근을 한 다음에 심지어 우리은행의 문이 닫혀 있었어요. 그래서 뒷문으로 해서 위비 랩으로 2층으로 올라갔는데 불이 다 꺼져 있고 한 분의 대표님만 계셨는데 거기서 독대를 해가지고 인터뷰 쭉 보다가 합격했는데 들어가 보니까 대표님이랑 머신러닝 박사님이랑 저밖에 없는 거예요.
회사에요?
네, 회사에. 그래서 정말 PoC부터 시작한 거죠. 근데 거기서 화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알고리즘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 알고리즘이 여신 포트폴리오를 예측하고 조기 상환이라든지 연체 확률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인데 그 알고리즘을 돌리고 수치를 더 개선하고 이런 것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데이터 분석부터 했죠.
여신이고 상환이고 쉽지 않은 단어인데 그거에 대한 이해가 있기는 했어요?
전혀 하나도 몰랐죠. 여신이 뭐야부터 시작했어요. 대학교 막 졸업한 애가 대출을 해 봤겠어요? 조기 상환을 해 봤겠어요? 그래서 감이 정말 없었는데 데이터를 보면서 이해를 하기 시작했던 거죠. 데이터 하나하나가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의 소득이 얼마였고 그리고 언제 상환을 했는데 그럼 3개월 후에는 이런 시그널들이 예를 들어서 이 사람이 다른 카드 연체를 했다거나 이런 전작이 있어서 결국 연체를 할 확률이 높아지는구나 이런 것들을 엑셀에 데이터 하나하나 보면서 파악을 했던 거고 그러면서 파이썬부터 시작했는데 그 인공지능 박사님이 진짜 많이 도와주셨어요. 머신러닝 그 당시에 딥러닝 막 하던 때였는데 파라미터가 뭐야부터 한 줄, 한 줄 파이썬 보면서 해석하기 시작했던 거죠. 그러면서 제가 파라미터 하나 바꿔서 돌려보고 그럼 수치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리콜이 뭔지 프리시즌이 뭔지 그때 제대로 알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진짜 학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일을 어느 정도나 했어요?
3년 반 정도 했었죠. 근데 이게 재밌는 게 정부에서 여러 펀딩도 많이 했었고 베트남이랑 다른 해외 업체들한테도 핀테크 박람회라든지 이런 데 가서 실제로 데모도 해보고 그리고 거기에 있는 은행들이랑도 같이 협업도 많이 해보고 그리고 인도랑 러시아 업체들하고도 이 시스템들을 좀 더 고도화하는 것들도 재택근무하면서 그리고 오프셰어링 업체랑 같이 줌으로 얘기하면서 만들기도 하고 되게 다양한 경험들을 했어요.
처음에 우리은행 영등포 지점에 가서 조명 아래에 있던 대표님 만나고 그다음에 박사님하고 같이 협업을 한 거잖아요. 근데 그 회사에 3명만 있었던 건 아니겠죠?
정말 3명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이제 한 80명
도메인에 대한 지식도 없는 상태인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들지 않으셨어요?
저는 사실 너무 감사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래도 날 믿고 어떻게 보면 파운딩 멤버잖아요. 정말 3명밖에 없는데 나를 발탁해 주시고 같이 해보자라고 말씀을 해 주셨으니까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유니크님은 시각적인 처리도 그렇고 숫자나 데이터에 대한 처리도 둘 다 굉장히 잘하는 편인 건지 궁금해요.
UX 디자이너나 데이터 분석가만큼은 못하겠지만 계속 업계에 있을수록 다양한 상황의 데이터와 화면들, 고객 경험들을 접하다 보니까 계속 길러져 나가는 것 같긴 해요. 왜냐하면 저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지식을 아니면 어떤 능력을 가져가야 되냐라고 했을 때 결국은 두 가지가 있거든요. 팀이 커지거나 아니면 내가 푸는 문제의 크기가 커지거나. 팀을 키우는 건 어떻게 보면은 정말 팀을 조직적으로 꾸리는 오거나이제이션의 느낌이 있고 문제를 사이징을 키워나가는 거는 내가 하나의 A/B 테스팅 여부 결정할 수 있는 기능을 하나 뽑는 거에서부터 시작해서 6개월 아니면은 1년짜리로 긴 프로젝트를 어떤 식으로 이터레이션이나 아니면 문제를 더 축약해서 조직적으로 만들어 나가는지 이런 오케스트레이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다양한 데이터를 접해야 되기도 하고 다양한 화면들을 접하고 피드백을 드려야 되기도 하고 하면서 이렇게 늘어나는 것 같아요.
데이터 분석가는 숫자를 보고 이 사람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뭘 해야겠다라는 인사이트도 뽑아내야 하잖아요. 근데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렇게까지 흘러가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을지가 궁금해졌어요.
우리은행 전산실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냐면 그러니까 저도 뭣도 모르고 그냥 전산실에 던져진 거예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우리은행 센터가 있어요. 데이터 센터 IT 센터가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만들어가 됐는데 그래도 그나마 감사했던 거는 저희가 펀딩을 어느 정도 받았다 보니까 외주 업체분들이 같이 도와주셨어요. 왜냐하면 은행은 데이터 정확도가 엄청나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은행권들 다니면서 원장이라고 하죠. 예를 들어서 고객 원장이 있고 고객들이 대출을 하면 대출 이력 연장 원장이 또 있고 그리고 대출 상품별로 원장이 따로 있고 이거를 일별로 한 거랑 월별로 한 거랑 엄청 복잡해요. 그걸 다 데이터를 가져와서 데이터를 말아내고 그 데이터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고 이런 것들은 사실 도메인 지식이 없는 사람은 못 해요. 그래서 그런 엑스퍼트들이 전문가들이 그 업계에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초빙해서 같이 했었는데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3개월이었고 그분은 3개월 이후에 다른 것도 또 차출이 됐었어야 해가지고 그리고 심지어 그 USB가 따로 있어요. 도메인 USB. 본인이 가지고 있는 쿼리들이랑 갖고 다니는 거예요. 사실 은행에서 프로젝트 하는 게 엄청 다르지는 않거든요. 결국 그게 본인들 돈이에요. 그러니까 본인들의 월급. 그래서 그걸 갖고 다니면서 갖가지 은행들 다니고 필요한 것들을 쭉쭉쭉 뽑아낸 다음에 만드시는 건데 그러면 저는 어떻게 했냐 그분은 맨 처음에 오셔가지고 하시는 게 그냥 USB 꽂아요. 그다음에 한 30분 동안 이렇게 해요. 엔터 쳐요. 그다음 밖에 나가서 담배 피우다가 걷고 이렇게 하다가 점심 다 드시고 오셔서 잘 쿼리가 말아졌나 실행이 다 됐나 한대요. 그다음에 실행이 됐네. 그러면 또 이렇게 엔터 치고 또 가세요. 그런 다음에 4~5시간 후에 온 다음에 이거 잘 됐군. 내일 정도까지는 원장이 작년 것부터 시작해서 월별로 착착착 쌓이겠어요. 한 다음에 또 엔터 치고 나가세요.
이렇게 들으니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줄 알겠네요.
그게 축적의 힘이라는 걸 거기서 되게 많이 배웠거든요. 처음에는 사실 어떻게 했냐면은 그분 나가신 다음에 그분이 6시에 나가면 저는 그 쿼리를 다 인쇄해서 봤어요. 그냥 프린터 안에 인쇄해서 그래서 예를 들어서 2~300개의 그런 변인들이 있잖아요. 그럼 그거 다 인쇄해서 아니면 ctrl+C, ctrl+V 해서 어디서 데이터 가져왔는지 이게 어느 DB에서 가져와서 어떤 식으로 됐는지 이런 것들을 다 분석을 했고 만약에 모르면 그분이랑 친해진 다음에 밥 먹으면서 ‘이건 근데 왜 그런 거예요? 저건 왜 그런 거예요?’ 이렇게 하면서 물어봤었죠.
그분한테 물어볼 때는 톤이 달라지네요.
당연하죠. 진짜 솔직하게 말하면 그분의 모든 그러니까 그 당시에 전문가분들의 월급도 제가 드려야 됐던 상황이니까 그분들이 얼마를 받는지 저는 다 알았거든요. 근데 저의 네다섯 배를 받고 있었단 말이죠. 네다섯 배가 뭐야 한 7배 받았어요. 사실 초년생의 기준으로는 아니 이 사람은 무슨 엔터 한 열댓 번 치고 담배 피우고 밖에서 그냥 놀다 오시는데 이렇게 받는 이유가 뭐야부터 시작하니까 약간 오기가 생겼는데, 얘기하는 거 듣고 그리고 쿼리랑 이런 것들 다 보면서 오히려 선생님으로 삼아야겠다. 이 사람이 3개월 후에 나가니까 나는 최대한 빼먹을 수 있는 거는 빼먹어야겠다 이 생각으로 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걸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유니크님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저는 항상 저의 커리어에 대해서 약간 그리고 저는 메타인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해요. 그러니까 나의 현재 스탠스는 어떻게 되고 나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나에게 지금 부족한 건 무엇인지 매일매일 회고하는 사람이긴 한데 사실 그 절대적인 숫자를 보면은 되게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근데 그분이랑 얘기하면서 느껴졌던 거는 이분의 커넥션 왜냐하면 이분은 그 업계에서 이미 알려졌던 분이었고 3개월 후에 국민은행, 3개월 후에 신한은행 이런 식으로 다 짜여져 있었거든요. 그리고 새천년 프로젝트라고 해야 되나요? 새 시대 프로젝트 뭐 이런 것들을 10년 아니면 5년 주기로 해요. 은행마다 그럼 그것들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하시니까 커넥션들이 생긴 거예요. 근데 저는 그걸 보면서 이것도 능력이다 이것도 자산이다. 이런 네트워크와 이분의 지식과 이런 것들이 그럼 나는 이런 것들을 학습하려면 그러니까 오히려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호기심과 도전 의식 이런 것들이 그 당시에는 좀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회사에서 3년 반 정도 일하다가 이직을 한 거잖아요. 이직한 이유는 어떤 거였어요?
그 당시에 프로젝트 매니저 PO. 그때 그 개념이 시작됐어요. 그래서 코세라라든지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학습을 하기 시작했던 거죠. PO란 이런 거구나 이러면서 근데 스타트업에서 PM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었고 B2B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의 대고객 서비스를 하기엔 부족한 환경이었고 근데 저는 PO로서의 역량을 키워보고 싶었던 거예요. 강의에서 나오는 A/B 테스팅이 아니면 가설 기반으로 움직이는 PO들의 사고 방식은 뭔지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럼 B2C를 이제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고 피어(Peer)들과 같아 같이 일하는 스쿼드 조직은 뭔지 이런 흥미들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여기서 할 거는 어느 정도 했으니 다음 스텝으로 옮겨갈 차례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직한 회사는 어떤 도메인이었어요?
모든 여성분들이 화장품에 대해서 알고 싶어라고 하면 항상 인스톨하는 서비스였고 거기도 굉장히 PO 조직을 키워 나가는 그런 상황이었고 PO 중심의 테크 컬처를 만들고 싶어 하시는 그런 환경이기 때문에 되게 저는 좋은 환경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고 특히 지금도 연락하는 분이 있는데 인스파이어드 책 아시죠? 그걸 번역하신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을 만나 뵙게 됐고 그분이랑 같이 마티 케이건의 철학은 뭐고 어떤 식으로 조직을 만들어 나가야 되고 PO는 어떤 것들을 했고 이런 것들을 그분이 친절하게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러면서 같이 집약적으로 성장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일을 통해서 성장한 것도 있지만 공부도 같이 하면서 성장한 거예요?
저는 공부는 일하고 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일을 한다는 건 결국 공부를 해나간다는 거고 결국 공부를 할 때도 가장 효과적인 공부는 일에서 필요한 것들을 내가 공부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긴 해요. 아니면은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일을 하면서 그 당시에 스터디도 같이 했었고 인스파이어드 책도 같이 읽고 데이터 분석, 린 UX 이런 것들도 같이 읽으면서 토론도 했었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B2B 중심으로 일하다가 B2C로 PO라는 직무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서 옮긴 거잖아요. 내가 여기 옮기길 잘했다 이렇게 생각이 든 요소들이 있었을까요?
일단 너무 짜릿했던 거는 고객분들의 반응을 VOC에서 계속 보는 거 그리고 구글 평들을 계속 보는 거 이런 것들이 되게 저는 재밌었어요. 즉각적으로 고객분들의 선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을 거쳐서 또 이직을 하셨죠?
거기도 B2C였는데 되게 글로벌한 회사였고 제가 사실 외국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중국어도 했었어요. 아버지가 너 대학교 내가 보내줄 테니까 물론 장학금을 받고 갔지만 일부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었죠. 그때 내셨던 조건이 중국어를 꼭 공부해라. 그래서 언어적인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었는데 그래서 글로벌 회사에서 좀 더 많이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제가 오잉님을 만나 뵀던 때에 제 상사분이 세 분이 바뀌었는데 거기는 임원분들이 계속 바뀌어요. 근데 다 인도 분 아니면 캐나다 분. 제 상사가 한국분인 적이 없었어요. 개발자분들도 다 중국분 아니면 인도 분
그러면 그 분들하고 영어로 소통하고 중국어로 소통하고 이랬어요?
네 맞아요. 제가 거기서 3년 반 정도 일을 했었는데 1년 반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1년 반 정도는 대만에서 물론 한국에서 일을 했지만 대만 서비스를 만들었었고 그래서 한 분기에 한 2~3주 정도는 항상 대만에 있었단 말이죠. 그리고 개발자분들도 다 중국 베이징에 계셨고 상해나. 그때 통역 분들이 워낙 거기는 너무 잘 해주셔서 동시 통역이 되게 잘 되어 있어요. 근데 너무 잘 되다 보니까 그분들이 수요가 높아서 매번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개발자분들하고 중국어로 소통을 해야 될 때도 되게 많았고 근데 그때도 사실 제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단 말이죠. 그래서 중국어 공부 또 하고 그랬어요.
닉네임 뭐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20년째 아이디로 쓰고 있는 유니크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진짜 유니크한 사람 그 자체가 아닌가 싶어요. 유니크함을 추구하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저는 오히려 항상 모토가 일상에서 감사함을 찾자 아니면 일상의 루틴함에 감사하자이긴 한데 그 안에서 계속 나 자신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항상 고민하긴 해요.
회사도 일이 많은 회사 위주로 다니셨을 것 같고 본인이 하시는 것도 많으신데 일상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사실 일이 제 일상의 우선순위는 아니에요. 저는 교회를 다녀가지고 수요 예배, 금요 예배에는 필수적으로 참석하고 토요일에는 애들 영어 공부를 제가 가르쳐요. 왜냐하면 거기 저소득층 애들도 있고 편부모 가정도 있고 어머니가 중국분인 분들 친구들도 있고 그래서 그런 친구들. 제가 인천에 살기 때문에 그런 가정들이 많아서 교육에 대해서 저 스스로도 중산층에 살았고 공부를 그냥 열심히 했고 좋아했기 때문에 미국 유학을 간 케이스거든요. 돈이 있어서 가는 케이스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오빠가 저 때문에 포기를 많이 했었어요. 물론 오빠도 잘 됐어요. 오빠도 공부를 열심히 해가지고 일본의 장학금으로 해서 전액 장학금 받고 갔거든요. 근데 비싼 대학교 이런 것들을 저 때문에 사실 포기를 했었고 근데 교육의 힘을 제가 뭔지 알기 때문에 토요일에나 아니면 주일 예배 끝나고. 그래서 아침에도 가능하면 새벽 기도 꼭 가려고 하고
일하고 종교를 위해서 쓰는 시간하고 비중이 어느 정도 돼요?
저는 일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하루에 반 아니면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니까 절대적인 시간 자체로는 더 많이 당연히 일에 쓰겠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저는 교회 다니는 것들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공부는 저녁에 한다던가 아니면 여가 시간에 한다던가
하루에 몇 시간 주무세요?
한 5~6시간. 근데 나이를 먹다 보니까 잠이 필요하긴 해요. 처음에는 그냥 뭣도 모르고 그렇게 했는데 이제는 좀 조절을 하려고 해요.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조직 문화스럽게 써주셨어요. Start with WHY / Playing to Win / Their time matters too / Let the numbers speak 이라고 써주셨는데 본인이 만드신거죠?
3, 4번은 제가 만든 것 같고요. 1번 2번은 제가 읽은 책에서 따온 거긴 하고 왜에서 시작한다는 게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저 스스로한테도 그렇고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이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 사실 더 좋은 솔루션 아니면 더 좋은 아웃풋들, 인풋들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라는 것들을 느꼈고 결국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이게 프로젝트형 와일이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사람의 인간적인 매력일 수도 있고요. 이런 것들을 얻지 못하면 되게 힘들더라고요.
사람에 대한 Why도 생각하려고 노력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유니크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세요?
저는 약간 이중적인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긴 해요.
의도적으로 이중적일 수도 있지만 의도는 아닌데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걸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말씀 주신 것처럼 사람을 싫어하는 게 거의 없긴 해요. 저는 사람을 싫어한 적이 많이 없어요. 제가 예전에 제 친구 캐런님께도 말씀드렸는데 일할 때 모든 사람들은 악의를 가지고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다 본인이 잘하고 싶어서 얘기하는 거예요. 본인이 본인의 생각으로 이게 더 맞는 방향일 것 같아서 행동하고 말을 하는 거지. 악의를 가지고 말하는 건 사실 없으니까 만약에 나랑 의견이 불일치하거나 그 사람의 어조가 힘들거나 아니면 이 테이블에서 지금 얘기를 나누는 게 개판이다 하더라도 사람의 본래 의도는 그냥 선하게 얘기를 할 거야. 그냥 이 생각으로 항상 대하는 것 같긴 해요.
그런 생각한 다음에 어떻게 거기에 반응하세요?
그래서 Start with WHY죠. 왜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래서 그 테이블 안에서 저도 적대적으로 말하는 거나 이런 게 아니라 곰곰이 생각한 다음에 원온원으로 끝나고 얘기를 한다든가 한 다음에 그분의 의사랑 어조를 좀 파악을 하죠. 그다음에 이분의 의도는 이거였구나 제 의도는 이거였어요. 이렇게 해서 좀 다 같이 합의를 만드는 거. 바로 다음 날 미팅을 한 번 잡는다던가 근데 어떻게든 액션 아이템을 만들어야 되니까요.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적당히 일을 잘하고 똑똑하다라는 전제면 그 사람 의도가 내가 이해하면 우리가 서로 합의점에 다다를 수 있어라는 게 가능한데 어떤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랑 협업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화 이런 것조차도 없는지 이게 궁금하다는 게 아마 뚜까의 마음 아닐까 싶은데요.
저는 글로벌 커머스 조직에서 감사하게도 C레벨 분들도 되게 많이 만났어요. 대만에 일할 때는 부회장, 회장님 분들도 신사업이었다 보니까 되게 많이 만났고 저는 거기서 배웠던 게 여기에 적용 가능한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오히려 중간 레벨의 사람들을 안 뽑았어요. 무슨 뜻이냐면은 맨 위에 정말 잘하시는 분들 몇 명을 뽑고 레벨 1, 레벨 2를 100명, 200명을 뽑았어요. 그래서 한 일이 뭐였냐면은 그 사람들의 업무를 다 만들고 진짜 디테일한 레벨로 다 쪼갰어요. 그래서 레벨 1, 2 역량이 어떻게 보면은 아직 안 되시는 분들은 정말 시키는 것들 얘네만 할 수 있게 YES or NO를 할 수 있는 그 디테일한 레벨을 쪼개는 거예요. 그렇게 오히려 조직화해서 업무를 프로세스를 해서 나눠주는 게 오류도 덜하고 이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게 그러니까 아예 생각 자체를 못하게끔 그러니까 의사 결정을 모든 것들을 매뉴얼로 내려줘서 하게끔 하는 게 근데 이건 프로그램 콘스가 있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뚜까님 말씀하신 그런 경우도 저는 메타인지를 하는 거죠. 내가 이 사람한테 이 프로젝트의 PO로서 디테일한 방향성을 더 내려줬어야 되는구나 액션 아이템들을 더 디테일하게 내려줘서 이거는 ETA를 다 받고 예를 들어서 이게 다음 주까지 갔을 때의 매드사인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걸 그린으로 전환시킬지까지 제가 고민해서 다 내려주는 거죠. 근데 그걸 사실 만약에 그분이 못하시는 역량이다라고 하면 콜 아웃을 해야겠지만 더 어떻게 하면 디테일하게 그 사람이 생각 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가 명확하게 제시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걸 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일할 때 들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다 너무 멋있어요. 다 소년 만화의 대사 같은 너무 멋진 말들을 들으신 것 같은데 마지막이 되게 인상적인 것 같아요. 파랑새가 되지 말라 이제 너는 시니어다. 이 얘기를 들으셨을 때의 구체적인 상황을 말씀 주실 수 있으세요?
이거 진짜 최근이었어요. 사실 그래서 약간 충격 먹었었는데 지금 말씀 주신 것처럼 너무 인간적이지만 비인간적이다라고 말씀을 주셨는데 어떻게든 좀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저는 애쓰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은 제가 조직 내에서도 더 중요한 위치로 계속 올라가면 갈수록 사람들을 좀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리고 이 사람을 정말 속된 말로 쳐낼지 안 쳐낼지 이 사람을 계속 함께 할 사람으로 태울지 안 태울지 이런 것들을 고민을 해야 되는데 그리고 조직 안에서도 사실 3명 이상 있으면 정치라고 하는데 아무리 정치가 없다고 해도 말도 안 돼요. 사실 이 안에서도 지금 저희 5명 있는데 정치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러면 내가 예를 들어서 내 상사라든지 아니면 내 윗상사들을 대할 때 어떤 식으로 대해야 될지 이런 것들을 좀 더 사람 위에 숫자가 떠다녀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됐던 거죠. 그래서 저랑 예전 직장에서 되게 친했고 제 멘토 아닌 멘토였던 개발자분이 다른 업계에 계시다가 저랑 같이 함께 일을 하게 되셨는데 현재 일하는 업계 오셔서 그런데 같이 커피 챗을 하다가 이제 유니크님은 시니어지 않냐 그러면 이제 파랑새가 아니다 받을 건 받고 그리고 너가 액션 해야 될 건 액션 하고 말할 건 말해야 된다. 더 이상 파랑새가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 또 다시 한번 메타인지를 하게 됐죠.
시니어로서 단호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주저했기 때문에 그 개발자분이 그렇게 얘기를 한 걸까요?
그렇죠. 조직 내에서 제가 의사 결정을 했었어야 되는 부분이 있었던 건데 이게 상사와의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었던 부분이었던 거고 회사 내에서 여러 조직이 있었는데 위험한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어요. 거기 안에서 너가 지금 1~2년 후에 이 조직은 이런 식으로 바뀔 텐데 지금 당신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이런 행동 등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 수 있다. 진실하게 조언을 해 주셨어요.
지금 시니어가 된 상황과 주니어 시절의 유니크님이 느꼈던 시니어는 차이가 있나요?
저는 근데 아직도 제가 시니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은 저는 요즘에 아마존이나 구글도 그렇고 지금 어떤 방식으로 프로덕트 매니지먼트가 변하고 있냐라고 했을 때는 기존의 시니어라고 하면 팀을 잘 꾸리고 조직을 더 키워나가고 OKR을 잘 세우고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롤보다는 오히려 IC 즉 진짜 더 큰 문제를 어떤 식으로 AI를 통해서 조직화는 AI가 오히려 더 잘할 수가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위클리 리포트 생성하고 그리고 팀 내에 매니저 하는 그런 리포트를 한다 생성한다가 워크 플로우를 만든다거나 이런 것들은 사실 어느 정도는 AI를 통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인데 문제를 푸는 거는 계속 가져가야 될 스킬이거든요. 그래서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시니어라는 정의 자체가 지금 업계에서 많이 바뀌고 있고 그래서 아마존이나 이런 데는 진짜 디렉터들 아니면 시니어 디렉터들도 다 IC예요.
유니크님이 생각하는 시니어라는 거는 연차를 기준으로 경험을 기준으로 한 어떤 상태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들리는데 맞아요?
요즘은 진짜 저도 고민이에요. 근데 제가 만약에 저를 시니어라고 정의를 한다면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 사람이 처한 상태나 환경 아니면 프로젝트에 가이드를 줄 수 있는 그런 정도를 시니어라고 해야 되나 요즘에 저도 좀 고민이에요. 물론 업계에서는 저를 시니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정의 자체가 지금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이라서
시니어라는 단어에 되게 부담을 가져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책에서 봤는데 제가 앞으로 바라보는 시니어라는 거는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로는 질문을 어떻게 잘하는가. 제가 완벽한 답을 제공을 해 줄 수는 없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여러 가지 가설들을 바탕으로 거기서 나오는데 SO WHAT, IF SO 계속 이렇게 질문해가면서 그 사람들이 다른 가능성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스스로 탐색할 수 있게끔 알려주는 거. 그래서 질문을 잘하는 게 하나랑 두 번째는 제가 인상 깊게 봤던 책이 회사 개조라는 책인데 그 안에서 나오는 그런 부분들이 뭐냐면 어떤 식으로 프레이밍을 할 것인가 그러니까 문제를 봤을 때에 어떤 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프레임을 가지고 접근 방식을 가지고 해결을 잘 해 나갈 수 있는가라는 건데 그런 것들은 시니어 레벨로서 많은 문제를 경험하고 해결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 두 가지를 잘 보유하고 있으면 시니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프로덕트라는 건 특정 도메인이 아니라 저는 계속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그러니까 문제들은 계속 우후죽순 발생할 거고 다 새로운 문제일 거고 그래서 저는 이 업계를 사랑하는 거고 루틴한 삶을 저는 되게 필요로 하고 왜냐하면 루틴한 삶 속에서 되게 다이나믹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잖아요. 근데 일상도 루틴하지 않으면 정말 정신이 없거든요. 일상이 카오스고 그런데 그 안에서 다양한 문제를 접하면서 이 문제는 이러한 프레임으로 풀어야지 저 문제는 저런 프레임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유연하게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시니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변화가 많고 항상 뭔가 결정해 나가는 과정들을 많이 거치신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개인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가 많잖아요. 특히 취준생 같은 경우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저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다듬어 가는지가 궁금해요.
전 지금도 사실 저에 대한 확신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매일매일 감사하면서 그리고 매일매일 나는 무엇을 배워 나간다. 그리고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간다 이걸로 저는 계속 살았던 것 같고 근데 만약에 어떤 식으로 나에 대한 확신을 찾아가냐라고 한다면은 배울 때에 목표한 것들이 있잖아요. 습관의 힘이어서도 말하는데 찰스 위그가 ‘자그마한 성공부터 시작해라’라고 했는데 예를 들어서 중국어를 배우면 자격증을 딴다든가 아니면 데이터 분석을 했어요. 데이터 자격증을 딴다든가 아니면 프로젝트를 하나 돌려요. 그럼 작은 성공이라도 그 프로젝트 안에서 만들어 낸다던가 그러니까 하나하나가 모여서 축적되고 그것이 나의 길을 돌아봤을 때 내가 이런 것들을 해왔다라는 어떻게 보면은 자기 성취감 이런 것들이 생기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살면서 이건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다섯 가지를 적어주셨는데 저는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로 봤던 것이 누군가와 함께해서 감사한 것, 그리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배운 것 이라고 하셨어요. 두 가지 키워드가 유니크님한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좀 정체되어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 것 같긴 해요. 저 스스로가 진취적이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인 건데 사실 달려가다 보니까 저 스스로도 20대 초반까지는 상처 주는 말들을 많이 했어요. 되게 일 중심적이고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되게 많이 줬던 것 같고 그리고 친오빠랑도 얘기를 했을 때에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오빠가 그때 일본에서 살았었는데 지진을 그 당시에 굉장히 크게 났던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오빠가 도호쿠 대학을 다녔었는데 도호쿠에서 지진이 엄청 크게 났었고 그 지진이 났을 때에 오빠가 자고 있었는데 밖을 보니까 나무가 평행이 되어 있더래요. 그 말인즉슨 엄청 울렁울렁하다 보니까 나무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때 엄청 놀라서 맨발로 뛰어나오고 그다음에 피난소에 한 3~4주 있다가 왔는데 그러면서 공황같은 것도 오고 했었는데 제가 그때 오빠의 상황을 이해도 못했어요. 제가 그 정도로 철이 없었어요. 오빠는 왜 맨날 안에서 집 안에서 누워 있는 거야.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저는 진취적인 사람이니까 그 정도로 제가 함께하는 것 자체를 몰랐던 사람이었고 그리고 미국 대학을 준비하려 하다 보니까 엄마, 아빠는 사실 영어를 몰랐어요. 영어 할 줄도 모르셨고 그런데 저는 용인외고에 있었거든요. 용인외고에서 해외 유학도 안 갔었는데 들어가 보니까 애들이 다 영어를 하고 다 미국에서 유학해 오던 애들이고 저는 악바리로 너무 살아왔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정체성이 그때 그런 식으로 생겼었는데 교회를 다니다 보니까 그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특히 제가 사모님을 만나면서 되게 인간 갱생이 됐어요. 그래서 함께하는 삶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사람들과 사랑하는 것들 그리고 서로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되게 감사한 거구나라고 생각했었고 그 당시에 교회 사모님이 저 미국 대학교 제가 갔었는데 그전에 일주일 동안 그 한국에 있는 교회에 간 다음에 제가 미국 대학교 갔었는데 그분이 저를 되게 좋게 생각해주셔 가지고 고추장이랑 김치를 보내주겠다고 하신 거예요. 근데 제 입장에서는 아니 일주일밖에 안 봤는데 나한테 왜 고추장이랑 김치를 보낸다는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김치를 보내주신다 하는데 거절하고 그랬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도움 받기도 싫어하고 도움 주기도 싫어했었는데 지금 30대 중반이지만 그렇게 하면서 나도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고 나도 도움을 줄 수 있고 줘야 되는 존재구나 그게 사회에 내가 선을 베풀고 환원을 하는 방식이어야 되는구나 이런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지금 시간과 돈을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게 대학원 준비라고 하셨는데 어떤 공부를 준비하세요?
AI가 계속 도래를 하고 있으니까 AI에 관련된 지식을 전문적으로 쌓아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물론 계속 일에서도 배우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는 좀 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프로덕트 매니저가 필요할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럼 프로덕트 매니저를 계속한다면 전문성을 더 쌓아 나가야 되지 않을까 데이터 분석이던 UX던 근데 저는 데이터 분석 쪽을 더 쌓고 싶은 거고 그럼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이 생각을 하고 있긴 합니다.
오늘 아이티백에서 차 한잔 함께 했어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너무 호응을 잘 해주셔 가지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CREDIT
글 오잉
인터뷰 오잉, 찌니, 써니, 뚜까,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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