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이티백

의미있는 일로 밥값을 하고 싶어요.

3년차 데이터 분석가, 쿼카

by 아이티백
너는 무조건 100m를 몇 초 안에 뛰어야 돼 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항상 초시계가 같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 나고 계속 살았으니까 그 긴장감, 속도감이 항상 붙어 있다고 느꼈고 그게 너무 버겁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누군가 해석해 준 리포트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리포트를 잘 볼 수 있게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수준을 끌어 올려줄 수 있는 데이터 직군들이 더 많아질 것 같거든요.
독일 사람들이 깐깐하기도 하지만 명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야기 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난민이나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물어볼 때도 각자가 다 생각이 있는 거예요.


아이티백 쿼카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쿼카입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IT 스타트업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3년 정도 근무를 했었던 쿼카라고 하고요. 지금은 조직 바깥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홈 프로텍터로 3~4개월 정도 지내고 있고요. 요즘은 사실 어떤 길로 가야 되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가로 3년 일하셨는데 IT 업계는 어쩌다가 들어오게 되신 거예요?

사실 IT 업계를 들어와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온 건 사실 아니었고요. 제가 17년도에 교환 학생을 독일로 갔었는데 프랑스 친구네 집에 갔는데 그 친구가 IBM에 다니고 있는 개발자였어요. 근데 17년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재택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 였는데 친구가 회사를 가지 않고 소파에 누워서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는 일을 뭘 하냐?” 그랬는데 개발을 한다는 거예요. 근데 저는 교육학을 전공을 했거든요. 그래서 ‘나는 글렀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제가 독일 생활이 되게 잘 맞았어요. 되게 잘 맞아가지고 정말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 제가 2월 28일까지가 비자가 있었는데 2월 28일 날 출국을 했거든요. 울면서 출국을 했어요. 그때 생각했던 게 기술이 있으면 사실 제가 영어를 엄청 못하는 편은 아니어서 보니까 독일에서 만약에 제가 교육학을 하려면 독일어를 엄청 잘하는 외국인이어야 되는데 기술을 할 줄 아는데 영어를 할 줄 알면 그 사람들이 저를 채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꽤 괜찮은데 부럽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완전히 기술을 배우겠다라고 하기에는 좀 갭이 있으니까 근데 항상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탈 한국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어요.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유학 박람회를 가가지고 캐나다나 이런 데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라고 했을 때 컬리지를 가서 유치원 선생님을 하면 거기 이민을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랑 치위생사 같은 걸 하면 갈 수 있대요. 그래서 그 정도만 알고 항상 사직서를 마음에 품듯이 탈 한국에 대한 선택지가 마음에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지내다가 어쩌다가 대학원에 가게 됐어요. 근데 가서 굉장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학문이 좀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겠는데 여전히 그러면서 또 다시 그 개발자에 대한 마음이 또 이렇게 안에 들어왔는데

근데 대학원은 뭘로 갔어요?

교육학으로. 왜냐하면 이게 완전히 턴을 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었고 그리고 사실 그 당시에 그래도 학계에서 제일 좋은 학교라고 하는 데를 갔거든요. 가면 뭔가 다른 게 있을까 싶어서 갔던 거죠. 그래서 그분들은 뭘 어떻게 하고 살고 있지를 보러 갔는데 응원만 하고 싶다. 돈이 많아지면 난 장학 사업을 해야지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도와줘야지. 근데 내가 막 학문에 대한 어떤 걸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가 때마침 코로나 시즌이었어요. 그래서 부트캠프가 붐이었던 시절이었고 그때도 저랑 되게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그럼 개발을 해 봐라’ 라고 했는데 여전히 개발은 너무 먼 거예요. 저한테.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중간에 데이터라는 직군이 그 중간 어디쯤이 있다고 저는 느꼈거든요. 왜냐하면 숫자 이면의 것을 읽어내야 되고 약간의 기술은 또 필요하고 허들도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을 것 같고 그래서 그럼 여기를 포지셔닝을 해야겠다. 그래서 부트캠프를 듣고 그렇게 IT 업계로 처음 입사를 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데이터 관련 부트 캠프?

정확하게는 AI 부트 캠프를 갔어요.

AI 부트 캠프에서는 뭘 가르쳐줘요?

냉정하게 가르쳐 주진 않아요. 제가 초반 기수여서 약간 테스트 베드 같은 느낌이었어요. 근데 적절한 포장과 그리고 사실 저는 입사를 할 때는 제 전공도 그쪽에서 보셨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완전히 교육 전문 스타트업은 아니었지만 교육학의 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그러니까 숫자 이면의 것을 찾아내는 것을 원했던 분들 그리고 더하기 그분들이 저를 채용하실 답이 없는 문제를 같이 풀 사람이 필요한데 그거는 분석적인 스킬이나 이런 것들은 우리가 좀 더 도와줄 수 있지만 답이 없는 문제를 같이 풀어가는 거는 우리가 어떻게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해보고 싶다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인턴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정규직 전환이 돼서 한 2년 반 정도 일을 했었습니다.

교육학 학부에서 전공하고 대학원도 교육학으로 갔다가 대학원 졸업은 한 거예요?

아직도 수료 상태거든요. 근데 제가 심지어 심사도 받거든요. 그래가지고 석사를 만약에 졸업하면 제가 7년인가 8년 만에 졸업을 하는 건데 보통 박사는 7~8년 만에 졸업하는 분이 많으세요. 근데 석사는 2년이잖아요.


대학원도 교육학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졸업도 안 했고 그 다음에 AI 부트캠프에 가서 냉정하게 아무것도 가르쳐 준 거는 없지만 나는 어쩌다 회사에 데이터 직무로 가게 되었다.

근데 가르쳐 준 건 없지만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알아서 생존해라. 거기서 제일 알려주는 거는 구글링을 잘해야 된다. 이런 거였어요. 근데 기대하고 봤던 것은 좀 더 체계적으로 정돈된 것들을 청사진을 한번 그려주고 그 안에서 헤맬 수 있게 도와줬다면 좀 더 좋았겠지만 그게 그렇게 치밀하지 않았고 그들도 아무래도 처음 해보는 거다 보니 그런 게 좀 시행 착오가 있었을 뿐이지 아예 아무것도 안 배웠냐 그건 아니지만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에 비해서는 그렇게 많이 주지는 못했던 기수였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실 때 궁금했던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독일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랑 두 번째는 왜 그렇게 탈 한국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요.

처음으로 독일에 어떤 게 제일 좋았냐고 한다면 맥주

술을 좋아하시는구나.

너무 좋아해서 거기서 양조학교 가려고 했어요.

독일 맥주는 맛이 엄청나게 다르나요?

그렇다기보다는 맥주의 종류가 진짜 다양해요. 독일에는 2,500개 정도의 양조장이 있어요. 우리나라에 전통 소주 만드는 것처럼 그리고 되게 재밌는 게 남부랑 북부 애들이 맨날 싸워요. 우리나라 전라도랑 경상도 싸우듯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처럼 저는 남부에 있었는데 남부가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지역이 뮌헨인데 거기가 남부고 퀄른쪽이 북부 쪽인데 퀄른에는 되게 유명한 카니발이 열리거든요. 하루는 친구들 초대를 받아서 같이 가서 먹는데 그 친구가 저한테 묻는 거예요. 남부 맥주가 맛있어? 퀄시라고 그러는데 퀄시가 맛있어 남부 맥주가 저거 쓰레기야 막 이러고 남부 가서 야 애들이 퀄시가 진짜 맛있고 이건 별로라고 그랬더니 야 퀄시는 진짜 쓰레기야.

많이 달라요?

어떤 느낌이냐면 바이젠 이런 밀맥주 있잖아요 밀맥주 이런 느낌이 좀 더 남부에 가깝고 라거 느낌 있잖아요. 우리나라 카스는 맛이 없어. 사람들이 막 그러잖아요. 그런 느낌이 좀 더 저쪽에 가까워요. 그건 취향이잖아요. 엄마 앞에서는 그냥 엄마가 좋아요 아빠 앞에서는 아빠가 좋아요 하는 형식으로 살았던것 같아요. 그래서 독일은 되게 뭐랄까 사실 그리고 제가 있던 시절만 해도 지금은 독일이 되게 상황이 안 좋잖아요. 제조업이 약간 몰락하고 이러면서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되게 부유했어요. 몰락의 초입이기는 했지만 부유했고 그래서 생필품 같은 게 되게 저렴하고 근데 그에 관해서 굉장히 그런 문화 수준 같은 건 굉장히 올라와 있어서 80대 할머니랑도 같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게으른 저한테는 딱이었던 게 제가 독일어를 그렇게 공부 되게 좀 부끄러울 수는 있지만 저의 스탠스는 그거였어요. 1년밖에 없을 거고 내가 이 나라에 돈을 들고 와서 생활을 하는데 독일어까지 배우려면 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친구를 많이 사귀고 문화를 경험하는 걸로 이 시간을 충분히 채워야지 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생활하기에 되게 좋았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어느 나라나 너무 깊숙한 곳까지 가지 않으면 되게 친절해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까지는 굉장히 친절하시고 잘 대해 주시고 영어로 소통하기도 어렵지 않고 그러니까 그런 게 되게 좋고 그리고 저는 명확한 거를 좀 좋아하긴 하거든요. 근데 독일 사람들이 정말 깐깐하기도 하지만 명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들에 있어서 그래서 독일의 유머 중에 하나가 뭐냐면 독일에서 정확하지 않은 거는 디비반(DB Bahn)이라 그러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코레일이거든요. 기차 시간 말고는 안 맞는 게 없다라는 말이 농담처럼 있어요. 그런 문화 같은 것들이 좀 편안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이런 이야기 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난민이나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물어볼 때도 각자가 다 생각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거 이런 것도 굉장히 좋다라고 생각을 했고

독일을 선택할 때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선택한 거예요?

사실 독일을 선택할 때는 물가의 수준이 서유럽 치고는 안정적이다. 일단 맥주가 1번이고요. 맥주 1번이었고 2번이 물가나 그리고 영어를 쓸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안정적이라는 점 그리고 세 번째가 여행하기가 되게 좋다는 점

기차 시간이 안 맞는데도?

그렇죠. 왜냐하면 버스도 있고 비행기도 타고 다 내륙이니까 연결되어 있어서 이동의 자유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럼 탈 한국은 왜 하고 싶었어요?

탈 한국은 사실 누군가가 너는 무조건 100m를 몇 초 안에 뛰어야 돼 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항상 초시계가 같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 있으면서 그리고 23살에 적당한 모습이 있고 30살에 적당한 모습이 있고 40살에 적당한 모습이 있어 라고 많이 느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리고 거기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의 길이 되게 다양하지 않다. 그리고 정상의 어떤 분포라고 해야 될까요? 예를 들면 95%의 사람들이 가는 길 말고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이 되게 갑갑하다 라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너무 인텐스(intense)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서울에서 나고 계속 살았으니까 항상 그 긴장감, 속도감이 항상 이렇게 붙어 있다고 느꼈고 그게 너무 버겁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절에는 그 레일에서 저만 탈락해서 나오면 되게 패배자가 되는 느낌 그리고 패배자가 갈 곳이 없다라고 많이 느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쿼카님뿐만 아니고 또래 친구들도 많이 하나요?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주로 제가 동경했던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예전에 간디학교나 이우학교 다녔던 친구들이랑도 만날 기회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런 친구들을 되게 부러워하지만 사실 제가 그런 선택을 선뜻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확인할 때 그리고 그런 친구들의 행보가 되게 ‘너 되게 멋있다. 굉장히 결단력 있어 보여’ 라고 했을 때 사실 저만 그런 걸 느꼈냐라고 하면 제 주변의 친구들은 저런 걸 지향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친구들이 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편향인 거죠. 그런 비슷한 애들이 모이니까. 근데 이우학교나 간디학교에 있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해 봤을 때 그런 친구들이 우리나라의 어떤 문화에서 대단히 자유롭거나 대단히 평온함을 느끼냐 그럼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그들은 또 본인들이 그러니까 주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기도 하지만 어쨌든 어디에 위치해도 그렇게 행복한 사람을 많이 찾지 못했다가 맞았던 것 같아요.

간디학교나 이우학교 다녔던 친구들은 만족해요? 그런 학교를 선택한 걸

간디학교랑 이우학교는 또 되게 큰 갭인 게 우리가 보기에는 대안학교의 통칭이지만 이우학교는 인가 받은 학교이고 제가 알기로 간디학교는 비인가이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다시 검정고시를 봐야 될 거고 이우학교는 공적인 자금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히 표준 정규 교육 과정이라고 하는 걸 따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그 범주 안에 있기는 해요. 그래서 근데 또 거기에 간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훨씬 더 자기 주장 자기 색이 강한 친구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그런 게 다 조금씩 있었던 것 같아.

그래도 쿼카님은 그런 학교에도 관심이 있긴 했나 봐요?

선망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당시에 느꼈던 거는 그게 그렇잖아요. 원래 우물 안에 갇혀 있으면 그 우물이 전체 본인 세상이니까 약간 무서운 거죠. 남들과 굉장히 다른 선택을 한다라고 느꼈던 것 같고 그 시절에 아기 때는 그래서 뭔가 멋있다. 저렇게 농사 짓고 저러면 좋겠다. 그리고 다 획일화된 이런 교육을 받지 않고 그냥 내 얘기를 하고 예를 들면 그 친구들은 수행평가도 다큐멘터리 찍고 이런 걸 했었거든요. 그 시절만 해도 그러면 되게 저런 게 진짜 뭔가 교육에 가깝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저걸 선택하기에 내가 그렇게 특별한가 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 특별함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쿼카님이 학생 시절 때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불편함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교육학을 전공하신 거예요?

정말 놀랍게도 전혀 아니고요. 사실은 저는 그런 걸 하고 싶었어요. 원래 원대한 꿈이 있었거든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인권 변호사를 되게 하고 싶었어요. 근데 제가 생각했던 건 인권 변호사는 한 사람의 목소리 밖에 대변하지 못하지만 어떤 정책을 바꾸거나 이러면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거니까 이런 일을 해야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당시에 또 생각했던 저의 로직은 내 말을 사람들이 들으려면 이 사회의 체제 안에서는 좋은 학교를 가야 사람들이 제 말을 들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 몇 번의 시도를 했는데 시험이라는 제도랑 제가 되게 안 맞았던 거죠.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어요. 제 기준에 그래서 그때 엄청 큰 깨달음을 얻고 혼자서

말하는 중에 미안하지만 너무 그럴 듯한 개소리 아니예요?

그럴 수 있죠. 왜냐하면 18살, 19살에 개소리를 해야지 제가 79살에 할 수는 없잖아요.

알았어요. 쿼카님 화난 거 아니죠? 듣다 보니까 너무 그럴 듯한 개소리 같은 생각이 들어서 우선 알겠어요.
18살, 19살에 그럴 듯한 논리 구조 속에서 되게 원대하게 뭐라고 생각했냐면 제가 ‘나는 내가 그릇이 그래도 세수대야만 한 줄 알았는데 간장 종지도 안 되는 것 같으니까 세상을 바꾸고 나발이고 간에 네 인생이나 책임져’ 라고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그때 진짜 진지하게 고민을 했어요. 대학에 가지 않고 친구들은 되게 그래도 그럴싸하고 좋은 학교들을 많이 갔거든요. 그래서 쟤네보다 제가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쟤네가 학교 졸업하고 이 취업이 어려운 시절에 열심히 취준하는데 나는 멋진 공무원이 돼서 쟤네보다 훨씬 한 4년 먼저 앞서 가 있겠다. 이런 꿈을 꾼 거예요. 그래서 대학을 안 가고 공무원을 하겠다 했는데 그것도 좀 자신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공무원 시험 했다가 안 되면 대학도 못 간 애가 되잖아요. 그래서 그러면 공무원을 하기에 되게 좋은 과를 선택해야겠다. 근데 일반 행정직은 뭔가 너무 좀 그러니까 뭔가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교육 행정직을 해야겠다. 그래서 교육학과를 간거였어요.

진짜 생각을 많이 했네.

근데 좀 더 넓게 생각하거나 좀 더 길게 생각했더라면 그런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리고 그런 행동도 있었어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경영/경제는 그 당시에는 끌리지 않았던 것 같고 교육은 어쨌든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니 근데 또 철학과를 선택할 용기는 없었어요. 교육학과나 철학과나 나오면 비슷하거든요. 제가 봤을 때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교육학은 그래도 선택지가 옵션이 있는 거고 철학과는 상대적으로 옵션이 적어 보이니 그냥 교육학과에 가서 어떻게 비벼 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던 거예요.

그러면 재수 안 하고 바로 고 3에서 대학 갔나요?

아니요. 재수를 했는데 잠깐 다른 학교를 갔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시험을 본 거죠. 반수 같은 걸 해서 그러니까 시간이 또 지체가 되니까 더 메이크업을 해야 된다. 내 친구들은 다 좋은 학교 갔어. 이미 간판을 걸었어. 나는 그래도 내가 쟤네보다 그렇게 못하지 않았었는데 출발선에서 너무 뒤쳐졌어.

그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친구라고 하지만 결이 다르기도 했던 것 같고 생각해 보면 사실 제가 생각했던 좋은 학교를 갔던 친구들이랑은 교류를 하지 않아요.

그럼 사실 친구도 아니었던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그 시절의 시절 친구였던 거죠. 그냥 인사하고 그냥 같이 교류하고 같이 동아리를 하고 근데 아마 그 그런 것도 있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제가 갖고 싶었지만 같지 못했던 걸 가졌고 저는 같지 못했는데 가진 사람을 보면서 계속 괴로워하느니 저만의 어떤 걸 찾기 위해서 제 안으로 좀 침잠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대외 활동 같은 걸 진짜 많이 했었어요. 근데 생각해 보면 그게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저의 어떤 그러니까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시도들이었던 같아요.


그때 좋은 학교 갔던 친구들 2025년 현재 뭐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알기 되게 어려울 것 같아요. 저도 알고 싶어서 종종 페이스북 들어가 보면 페이스북이 이미 죽어버린 서비스잖아요. 그래서 약간 그들의 소식을 아는 게 되게 어려워요.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되게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뭐하고 지내나.


그 시절에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아닌가 지금도 비슷한가?
치유되지 않았어요. 약간 관성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말씀해 주신 대로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 시절엔 그게 진짜 전부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 친구들과의 어떤 갭을 생각하면서 항상 괴로웠다가 어느 순간 지워지잖아요. 제 살길이 바빠지면 그리고 그게 시간이 벌써 한 10년 정도가 딱 흘렀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말씀하신 대로 물론 다 대동소이하긴 하겠지만 엄청나게 뭔가 오늘의 하루가 평온하고 내 삶이 튼튼해지는 데는 크게 그 하나의 어떤 팩터가 영향을 주지는 않는구나. 그런 걸 좀 알게 되는 요즘인 것 같아요.

다시 커리어로 돌아가 볼게요. 데이터 분석가로 입사를 했어요. 그 일은 할 만했어요?
처음에는 엄청 잘 하고 싶어 가지고 회의마다 울고

왜 울어요?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싫으니까


그렇게 못 했어요?
아니 그랬더니 저희 CSO님께서 도대체 너는 인턴이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맨날 너만

주변에서 쿼카님한테 ‘일 좀 잘하세요’가 아니고 그냥 아무 말 안 했는데 혼자

아니 잘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잘하고 있다고 했는데 막 울었어요?
저는 제가 너무 못해서 너무 화가 나요. 약간 이런 거죠. 근데 이제 인턴인데 진짜로 그래가지고 제 상사분도 그렇고 맨날 상사분한테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시나요?' 저는 상사분이 한 10분이면 할 수 있는 거를 이렇게 붙잡고 있는데 도대체 이들은 왜 나를 고용하는 거며 나는 도대체 이 회사에 무슨 밥값을 하고 있는 거며

돈을 좀 내고 다니지 월급 받지 말고

진짜 그래서 처음에 무급으로 하려고 그랬다가 주변에서 진짜 그러면 안 된다고 그래가지고 그런 식으로 계속 이렇게 하기 시작하면 정당한 가치를 받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어집니다. 고민을 되게 오래 하면서 회사를 다녔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한 1년 좀 지나고 한 2년쯤 이렇게 되면서 주변을 보게 되잖아요. 근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그렇게 인식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못한다기보다는 뭐랄까 별로 이렇게까지 본인을 괴롭히면서 다니지 않는 거예요. 회사가 당연히 나 고용했는데 밥 줘야지 그러면 약간 이런 상황들이 옆에 있으면서 약간 저래도 돼. 근데 또 그만큼 일하고 있어 라고 했을 때 그냥 일단 들어왔어. 이런 느낌의 그런 것들을 보면서 아 이렇게도 생활을 하는구나 라고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거예요. 뭘 그렇게 잘하려고 하냐 그러니까 물론 잘하려고 하는 건 좋으나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이렇게 쥐어 짜면서 이럴 문제가 아니고 이게 하루 이틀 뛸 게 아니라면 좀 긴 호흡으로 뛰어야 되는 건데 그리고 제가 정말 질문을 많이 했거든요. 도대체 상사분은 나의 이 지난한 과정을 왜 견뎌주고 있는 것이냐

일을 하라고 했더니 '왜 견디세요?' 라는 걸 질문을 많이 했다고요?
아니요. 그분한테만 하다기 보다는 원온원 같은 거 할 때 궁금하니까 원온원 할 때 원래 일 얘기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CSO 분이 저한테 그분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거니까 그냥 너한테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누려라. 그러면 그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일단 하루 정도는 좀 흘러가고

지금은 공부시키고 나중에 빼먹으려고 한다. 이런 말은 안 하셨어요?

하기는 했죠. 하기는 하셨지만 사실 있었던 곳이 스타트업이고 내가 긴 호흡으로 사실 볼 수가 있나 라는 생각도 사실 하기 했던 것 수 그래서 오히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이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라는 고민도 좀 했던 것 같고

내가 일을 잘 못하네 괴롭다 이거 외에 업무적으로 데이터 분석가로서 일은 맞았어요?

사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점이요?

데이터 분석가는 액션을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무리 리포팅을 하더라도 사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조금 제가 어려웠던 점은 데이터라는 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어떤 하나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방식이지 걔가 원 툴은 아닌 거잖아요. 근데 말하자면 그럼 제가 쓰는 리포트는 굉장히 제한적인 뷰를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리포트인데 이게 이 바쁜 비즈니스 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게 하나가 있었고요. 두 번째로는 데이터라는 건 결국은 규모가 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건데 사실 스타트업도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데이터가 많이 쌓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 작고 귀여운 데이터 모아서 내가 어떤 인사이트를 도출한다는 것이 사실 그냥 예를 들면 의자가 5개 있는데 그 의자가 모두 검은색이었어요. 그러면 의자가 검은색이에요 라고 말을 하는 게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좀 들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직적으로 누군가가 조금 더 예를 들어서 그런 상황에 대해서 지금의 우리는 여기에 있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고 이런 것들을 제 상사는 좀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셨던 것 같지만 제 상사는 어쨌든 데이터 리드이셨기 때문에 제품에서 결국은 그게 나와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제품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실 뭔가 이해가 좀 어렵거나 이랬던 상황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BI로 대시보드 그리고 하는 건 맞는데 그 정도로 제가 뭔가 데이터에 대해서 ‘의미 있어. 너무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어’ 라기보다는 하고 있어 누군가는 필요하다고 했어. 그래서 하기는 하지만 제 스스로 저는 이게 되게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고 제가 처음에 그렸던 모습은 누군가의 의사 결정에 하나의 생각해 볼 지점이 된거나 혹은 모두가 다 예스라고 할 때 이게 예스라고 해도 되는 부분일까요? 라고 질문을 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사실상은 그렇다기보다는 훨씬 더 그것보다는 예를 들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몇 명이 어떻게 됐는지 이런 걸 보여주는 것에 그치다 보니 내가 밥값을 제대로 하고 있나 두 번째로는 이렇게 해서는 내가 다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어 계속 이 길로 나아갔을 때 이건 사실 그 데이터가 잘 적재만 되면 소프트웨어로 다 될 것 같은데 사람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좀 많이 지냈었 것 같아요.

스타트업이 데이터 분석가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팀까지 두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거기는 좀 특별했나 봐요?

맞아요. 조금 연구에 가까운 일들을 많이 하시기는 했었고 그래서 제 상사분도 연구를 어느 정도 하시는 분이기도 했었고 그리고 국책 과제 같은 게 여러 개가 돌아갔던 회사였어요. 그 국책 과제가 저희 프로덕트를 베이스로 해서 했는데 조금의 혼선이 있었던 거는 완전 B2C 향도 아니고 그러니까 원래 B2C 향으로 개발된 걸 가지고 R&D를 해서 조금 더 업그레이드를 시키겠다 였는데 이게 완전 치료 목적이랑 또 B2C 소비자를 위한 건 되게 다르잖아요. 거기 안에서의 혼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데이터 분석가로서 데이터를 가지고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발견해내고 그런 리포트들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그렇지 않은 상황으로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되나'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했잖아요. 규모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많은 재직자들한테 들 법한 생각인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었을까요?

저는 외부에 되게 많이 돌아다녔었거든요. 제 리드 분이 계시고 저랑 같은 팀의 팀원 분은 데이터를 하시는 분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 상사분은 저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에 같이 갈 수 있으면 그게 가장 베스트의 그림이라고 얘기를 해 주셨었거든요. 그래서 제 업무를 맡은 바는 다 하고 제가 동료의 외주화라고 해가지고 다른 회사의 데이터 분석가들 되게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글쓰기 모임이나 이런 것도 되게 많이 가고 독서 모임도 가고 그래서 들어보면 대기업이라고 해서 데이터를 되게 잘 적재하냐 그것도 아니고 흥청 망청 더 티켓 날리고 쿼리 돌리는 데 1만 원씩 쓰는데 애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1만 원씩 풀 스크리닝 해가지고 막 돌리고 이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걸 알게 되면서 첫 번째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두 번째 사람들이 다 자기들만 보고 있는데 다른 회사에서도 그러니까 데이터 분석가만 보고 있는데 나도 내 쿼리를 믿지 못하는 게 전혀 크로스 체킹이 안 되고 있다. 우리 진짜 잘 가고 있는 거 맞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세 번째로는 GPT가 한창 나올 때였거든요. 2022년 23년 그러면서 우리가 GPT보다 일 더 잘하는 거 맞냐 진짜 안 잘리는 거 맞냐 우리 그러면 인간은 어디에 있어야 되냐 이런 이야기들 그런 얘기를 하면서 밖에서 들은 이야기를 또 조직 안에 같이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떤 회사는 이런 식으로 하는데 우리랑 물론 출발점이나 지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려가고 우리의 지금 모습은 AS-IS는 이런데 TO-BE는 어떤 모습이면 좀 더 좋을 것 같은데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거나 혹은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게 하나 시작점이 있다면 뭘 해보면 좋을 것 같은지 이런 거나 그리고 지속적으로 얘기를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요. 원온원 같은 거 하면서 상사분한테 밥 값을 하고 싶다. 근데 물론 내가 대단한 밥값을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밥값을 하고 싶은데 근데 사실 데이터 분석가로서 무조건 해야 되는 건 아니고 데이터에 관련된 내가 하고 싶은 건 결국은 데이터를 통해서 액션을 하는 일이야. 혹은 기여하는 일인데 지금의 환경 속에서 제일 좋을 것 같은지를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도 하고 그래서 실제로 웹 대시보드 개발 배워가지고 막 하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그 다른 팀의 개발자분이 같이 하자고 하셔가지고 그리고 고도화 같은 것도 사실 결국은 하기는 했어요. 근데 물론 그게 제 마음에 좀 성에 차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식으로 접점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근데 완전 너무 완벽하게 너무 훌륭한 생활을 했나요? 라고 했을 때는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게 어쨌든 조직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고 항상 제가 생각했을 때 의사결정권자랑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대충 싱크가 맞아요. 머릿속에 다 집어 잘 넣어줬어요. 라운드를 한 바퀴 딱 돌고 오면 다시 원점이 되어 계세요. 그러면 왜 그런가요? 라고 물어봤을 때 뭔가 대단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항상 우선순위에 어떤 문제에서 데이터라는 것이 지금 당장 안 먹으면 굶어 죽는 그런 느낌의 종류가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의사 결정에서 밀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찾아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동료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도 요즘 고민이 있냐 어 나는 이런 게 고민인데 너네 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네 혹시 너랑 나랑 내가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을까? 이런 것들을 좀 동료들이랑도 얘기하고 위랑도 이야기를 하고 그런 식으로 해봤던 것 같아요.

쿼카님은 데이터 분석가가 본인한테 잘 맞는다고 느껴요?

사실 분석가보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어떤 의사 결정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제가 분석가로서 잘 맞는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데이터 분석가라는 롤이 저는 앞으로 향후 몇 년이나 더 있을지 모르겠거든요. 얘 이름이 아마 바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사이언티스트랑도 조금 이렇게 합쳐질 것 같고 그리고 엔지니어링이랑도 합쳐질 것 같고 근데 중요한 건 만약에 엔지니어링이나 이렇게 합쳐진다고 했을 때는 그런 업무는 저랑 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데이터의 중요성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고 그리고 그걸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한지를 설명해 줄 수 있고 결국은 점점 더 나아가야 되는 방향은 제가 봤을 때는 누군가가 해석해 준 리포트를 사람들한테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리포트를 좀 더 잘 볼 수 있게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그 수준을 같이 끌어올려줄 수 있는 데이터 직군들이 더 많아질 것 같거든요.

그런 방향을 향해서 쿼카님이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있는 거예요. 계속 데이터하고 관련된 일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이 혼란한 세상에 뭔가 이렇게 뭐 하나 있잖아요. 걔는 숫자라는 게 남아 있으니까 그게 좀 좋은 것 같아요. 많은 현장에서 그러니까 물론 제가 많은 현장을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A라고 말하고 있는데 B를 원하는 게 너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경우는 커뮤니케이션 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차라리 그냥 B를 원해 라고 하면 차라리 B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찾으면 되는데 나는 A를 원해 라고 하면서 B를 원하는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러니까 밑에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하라고 뭘 원하는

근데 왜 그러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A를 말하지만 실은 B를 원하는 사람은
그거를 제가 못 찾았어요. 사실 저의 이 짧은 식견으로는 안 돼서 제 상사분한테 가서 물어봤어요. 제가 봤을 때는 지금 이런 상황으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이게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랬더니 제 상사분이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가 뭐였냐면 결국은 사람은 자신의 어떤 욕망 그리고 니즈를 가지고 회사에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작은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더더욱이 자기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오는데 회사가 지향하고 가야 될 방향으로 보이는 것이 있잖아요. 그 두 개가 충돌했을 결국 사람이라는 거죠.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이 조직이 되는데 이거를 오케스트레이션이 잘 되지 않을 때 결국은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약간 이거는 괄호 부분이었다고 느꼈는데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굉장히 말하자면 에고가 강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잖아요.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그렇기 때문에 말하자면 조직의 방향성이 이거니까 A라고 말은 하는데 내가 B 때문에 여기에 조인을 한 거예요. 예를 들어 그러면 사실 A가 아니라 B에요 라고 말을 하긴 좀 그래요. 근데 하지만 A로 그냥 가게 해도 난 B 때문에 왔는데 라는 이런 결국 사람이 하는 거니까 그 지점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고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거든요.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사실은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를 잘 모르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쿼카님은 그런 경험 없나요?

아직 제가 덜 깨져서 그런 것 같다라고는 생각을 하는데 예를 들면 우리 우리라고 했을 때는 조직이라고 한다면 회사이잖아요. 근데 회사에는 사실 결국은 아무리 수평하지만 위계가 없지 않잖아요. 책임을 지는 사람도 책임을 지지 않는 그러니까 본인의 일에는 책임을 지지만 좀 더 더 많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렇다고 한다면 그 시절의 최선에 대해서 그 최선이 왜 나왔고 우리가 그 문제를 왜 풀려고 하고 그러니까 우리의 가장 상위에 풀고자 하는 지금 시점에 풀고자 하는 게 뭔데 그래서 내가 뭘 하려고 하는데 이걸 하기 위해서는 뭐 뭐가 필요한데 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게 틀릴 수 있죠. 잘못될 수도 있고 번복될 수 있는데 그 시절의 최선과 그 시절에 어쨌든 우리가 공유해서 이게 어느 정도는 싱크를 맞춰서 출발을 해야지 그래도 난장판이 될 텐데 약간 여기서 보면 이렇게 생겼고 저기서 보면 저렇게 생겼고 저렇게 막 해석이 다양한 상태로 시작을 하면 더 그러니까 다 다른 데로 가고 있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지점에서의 이야기였고 그러면 너의 삶에서 너는 완전히 그렇게 심가가 된 상태로 출발을 하냐 어 사실 그래서 출발을 못하는 냉정하게 출발 못하는

오락가락이 아니고 계속 출발선에 있는 거예요?
머리 속에서 오락가락을 하니까 몸을 봤을 때는 그런 상태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사실 뭐 이렇게 조직에서 왜 이렇게 빠르게 못해요 라고 할 수 없는 것도 근데 하지만 내가 조직을 꾸렸다. 그리고 하겠다라고 했을 때는 결국은 혼자 못한다면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그런 게 부족 하다 보니 그런 조직에서는 그런 걸 좀 많이 보고 배우고 싶었다. 가 좀 더 맞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걸 간명하게 할 수 있지 풀어야 하는 문제를 그리고 우선순위를 어떻게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 그리고 하나씩 어떻게 뽀개 나가는 거지 이것들을 어쩌면 회사의 일을 통해서 배우고 싶은 상태인 것 같아요.

어차피 문제를 풀기 시작하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문제를 정의하는 단계에서 가장 심플한 방식으로 쪼개다거나 우선순위를 정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방법을 회사에서 배우기를 원한다고 했잖아요. 실제로 회사 다니면서 아 이건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경험이 있었는지?

예를 들어 제 상사분이 어떤 A라는 업무를 하라고 하셨어요. 근데 아니 우리가 가야 될 때는 쩍이라고 하는데 그 일이 여기서 지금 어떻게 쓰는 거야 모르겠는 거죠. 그럴 수 있지 근데 그냥 했어요. 그냥 뇌를 열심히 빼려고 노력하면서 했어요. 어쨌든 근데 하고 나니까 그거를 중간에 쓰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BI 대시보드였는데 처음에 그 구축을 이렇게 해놓고 보니 어 어느 순간에 그러면 그걸 보면서 BI 대시보드를 보면서 이렇게 접근을 해보는 게 어때요? 라고 하시는데 이걸 만드는 순간에는 제가 보지 못했던 거잖아요. 못 보니까 너무 힘들다. 이거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하는 게 너무 힘든데 근데 그 시절에 그게 있어요. 그분이 설명을 해 주셨거든요 왜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고 이거 왜 해야 되는 거고 그게 머릿속에 없죠. 왜냐면 없으니까 이게 그려지지 않았던 건데 그려놓고 보니 그분이 하라고 했던 이야기가 왜 그런지를 알게 되고 사실 그분의 어떤 신뢰로 그걸 시작한 거죠. 저는 그러니까 납득이 되지 않지만 저 사람이 하라고 했을 때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까 참고 견디고 진짜 너무 하기 싫지만 너무 할 것 같아서 하는 거야. 왜냐면 저 사람 그러니까 물론 상사가 시키는 모든 일은 해야 되는 게 맞지만 그런 경우에 제가 상사를 좋아하면 그럴 수 있는 마음이 좀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그 지점에서 좀 느꼈던 게 그 동력이 되게 좀 약한 사람이구나 진짜 줄이 난장을 틀면서 했거든요.


그 상사는 업무 지시를 할 때 본인은 명확하게 보이는 상태였는데 그거에 대한 설명을 쿼카님도 똑같이 보일 만큼 잘 못했거나 아니면 어차피 나중에 하다 보면 볼 거니까 라고 설명을 생략했거나 이런 걸까요?

상사분은 명확하게 이 조직 안에서 지금 당장 이 상위에 무언가를 정의하는 게 어려워.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의 환경 지금의 이 제한된 환경 속에서 우리 팀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퍼포먼스를 내는 데 있어서 네가 하는 건 이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여기가 아무리 출렁여도 이거는 쟤네가 나중에 이 단계에서 필요로 할 거야 요청을 할 거야 아무리 봤을 때 그러면 우리는 이걸 스탠바이에서 준비해 놓고 있으면 이게 나중에 저기가 아무리 출렁거리더 라도 쓰임이 있을 거야 라고 하셨었거든요.


일하면서 만난 좋은 상사가 따뜻하고 사려 깊으면서도 단호하고 명료한 분들 이었다고 하셨는데 지금 말씀하신 상사가 그분인가요?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건 어떤 특성인가요?
일단 제가 생각했을 때 명료함이 1등인 것 같아요. 저의 근데 그건 솔직히 추구미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긴 해요. 사려 깊음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감정도 척 느껴질 때는 그러니까 이게 너무 다이렉트로 오면 그걸 힘들어 하지 않지는 않는데 제가 생각을 해 봤을 때 그 30년 경력의 개발자 분이랑 같이 일을 했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분은 단호함 밖에 없었어요. 단호함과 명료함. 근데 그분이 일하는 게 생각보다 안 힘들었어요. 저는 사실 근데 그분이 되게 조직 안에서 뭐랄까 좀 어려움의 말들이 좀 많았거든요. 상처를 입거나 그런데 물론 제가 그래서 저는 너무 바보입니다로 시작을 해가지고 그런지 공격을 하셔도 바보인데 어떡하나요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래서 조금 잘 지냈을 수는 있지만 오히려 명료하지 않을까. 아무리 사려가 깊더라도 명료하지 않을 때 약간 돌아버리겠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왔으면 좋겠는 건 사려 깊음과 같이 왔으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명료함인 것 같고요. 근데 여전히 마음은 약간 뿌잉 상태이기 때문에 사려 깊음이 없으면 좀 뿌잉이기 때문에 그래서 말씀드린 대로 추구미랑 조금 제가 반응하는 게 조금 다른 것 같다 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오늘 아이티백에서 차 한 잔 함께 나눴는데 소감 궁금합니다.
사실 굉장히 떨려 하면서 왔거든요.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정말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고요. 정말 솔직히 도대체 나와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을 했었어요. 그리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오잉이 나와보지 않겠냐 라고 하셨는데 제가 올해 하려고 하는 게 누군가 뭐라고 하시면 YES 해보는 거거든요. 왜요? 뭘요? 이런 거 안 물어보고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너무 즐거웠습니다.



CREDIT

오잉

인터뷰 오잉, 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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