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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티백 Nov 23. 2024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읽는 걸 너무 좋아해요.

12년 차 B2B SaaS Translator, 라일라

영어랑 언어가 너무 재밌으니까 계속 많이 보니까 계속 발달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니까 계속 읽고 저는 읽는 걸 너무 좋아해요. 
아기 상어가 유아 아이돌 처럼 돼가지고 아이돌 기획사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안 해본 게 없어요. 그걸로 돈 벌 수 있는 걸 다 해본 것 같아요. 
통번역사들은 자기 분야가 아니고 남의 분야에 들어가서 통번역을 해야 되잖아요. 되게 척을 잘하는 사람이다. 빠르게 공부하고 빠르게 배워서 하는 척을 하면 되는 거거든요. 계속 읽고 계속 써보고 진짜 왕도가 없어요.

라일라님 모셨어요.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B2B SaaS 회사에서 트랜스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라일라입니다.
 
라일라님은 어떻게 IT 업계로 들어오게 되셨어요?

저는 IT 업계 본격적으로 들어와서 일한 지 오래 되진 않았어요. 근데 IT 업계가 진짜 내 자리구나라는 걸 느껴가지고 앞으로도 쭉 여기서 일을 하고 싶거든요. 저는 88만원 세대인데 그 때는 청년 실업이 심각했어요. 취직이 안 된다 이런 얘기 계속 나오고 당연히 공채 같은 것도 자리가 많이 없고 그런 시기었어요. 그래서 다들 불안해하고 이랬는데 저는 대학 다닐 때 진짜 공부를 안 했어요. 다른 친구들 공부할 때 우울에 젖어서 도서관에서 괜히 혼자 유럽소설 섹션 가고 ‘천재들은 스물일곱에 죽는다던데..’ 이러면서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공부를 정말 안 했어요. 그러니까 스펙도 없고 취직 준비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친구들이 다 대기업 공채 쓰니까 나도 써볼까 해서 썼는데 제가 인적성 다 떨어지는 거에요. 저는 언론정보학과 나왔거든요. 원래는 기자가 하고 싶었어요. 기자의 꿈을 꾸다가 절대 기자는 하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을 한 계기가 있거든요. 대학생 때 기자협회 같은데서 인턴을 했었는데 기자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를 갔어요. 진짜 대 기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거예요. 내가 지면에서 보던 칼럼리스트들이 있고 그래서 와 너무 멋있다 했는데 나이 드신 대 기자라고 하는 분들이 건배사를 하는데 ‘성추행’ 이러면서, 성공과 추억과 행복을 위하여 이런 건배사를 하는거예요. 
 
진짜 저질이다. 

거기서 너무 충격을 받아가지고 나는 절대 이 사람들이랑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때 느끼고 언론사는 가면 안 되겠다 생각하니까 대기업은 다 떨어져, 그땐 IT는 네이버 이런 거 밖에 없었지. 거기는 인적성을 보기도하고 전 IT 관심도 없었고요. 나는 글을 잘 쓰니까 글 쓰는 걸로 돈을 어떻게 벌지 하다가 마침 어린이 출판사에서 공채를 뽑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거기는 됐어요. 왜 이상하다고 생각했냐면 그때 취업난이었잖아요.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서류 통과만 거의 몇 100대 1이라고 했어요. 나중에 대표님이 저한테 얘기하시더라고요. 너가 토익이 만점이었다. 근데 자기는 토익 만점인 사람을 처음 봐서 만나보고 싶었다. 영어 공부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불렀대요. 토익이 만점이던데 영어 공부 어떻게 했냐고 물어봐서 그때 제가 답을 한 게 “그냥 했는데요.” 왜냐하면 진짜 제가 공부도 안 하고 ‘토익 필요하네 그럼 일단 봐야지’ 하고 그냥 시험을 봤는데 만점이 나온거에요. 
 
공부를 안하고 시험 봤는데 만 점이 나왔다고요?

그냥 나왔어요.
 
국적은 한국 사람 맞아요?

한국 사람 맞아요.

그래도 공부는 해야 되잖아요?

이 회사 너무 가고 싶고 면접 준비하고 이랬으면 그럴 듯한 대답을 했을 텐데 “그냥 봤는데요.” 이렇게 하니까 그 대표님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 분이 약간 괴짜에요. 다 천편일률적인 지원자가 많으니까 오히려 특이하네. 이랬던 것 같아요. 붙어서 일단 다녔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사회생활 경험을 한 거죠. 기업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그때는 어린이 영어 교재 만들고 에디팅도 하고 작가들도 만나고 그림 작가도 만나서 그림도 기획해가지고 넣고 인쇄소 가서 책 만드는 것도 이야기하고 콘텐츠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렇게 다 해보는 경험을 한 거여서 되게 재밌더라고요. 근데 이게 어린이 영어 교재니까 Hi, Hello, I'm fine 이것만 하니까 갈증이 있었어요. 그땐 어렸으니까 멋있는 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될 것 같고 이런 생각이 들어서 통번역 대학원을 갔어요. 거기서 공부를 하고 대학원을 가면은 무조건 목표는 국제회의 통역사예요. 저는 통역학과를 나와가지고 당연히 국제회의 통역사가 목표예요. 그거 외에 다른 거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구체적인 도메인 이런 것도 별로 생각한 적 없고 나는 그냥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해야지 하고 2년 동안 공부를 한 거예요. 그때도 사실 IT랑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그 뼛속까지 문과인 거죠.


토종 한국인인데 통번역 대학원가서 통역을 하신거예요?
제가 초등학교 때 독일에서 산 경험이 있기는 해요.


미국이 아니라 독일이요? 
거기도 영어를 아무도 안 쓰고 독일어만 쓰는 시골에서 살아서 영어는 안 하고 독일어만 하긴 했거든요.
 
토익을 만점 맞았으면 영어에 쭉 빠져들어가는 구간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디인지가 너무 궁금하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누구나 자기가 타고난 능력이 있잖아요. 저는 그게 언어인 것 같아요. 모국어도 굉장히 빠르게 잘했다고 하고 독일어도 제가 7살에 갔는데 한마디도 못한 채로 독일인만 있는 시골 학교에 갔는데 거의 한 3~4개월 만에 그냥 독일어를 했거든요. 언어쪽이 좀 많이 발달했는데 다른 쪽은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좀 그런 거 같아요. 그냥 타고난 것 같아요. 영어랑 언어가 너무 재밌있으니까 계속 많이 보니까 계속 발달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니까 계속 읽고 저는 읽는 걸 너무 좋아해요. 각종 매거진 읽는 거 굉장히 좋아하고 그래서 항상 읽을 게 없으면 불안해요.


통번역 대학원 이야기를 이어서 할게요.
졸업하고 당연히 동시 통역사를 해야지 생각을 하니까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 거예요. 장관 통역, 대통령 통역 너무 멋있잖아요. 그때 마침 산림청에서 공고가 떴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지원을 했는데 일단 돼가지고 산림청에 입사를 했는데 거기가 국제 협력이 많더라고요. 유엔 회의도 참석을 해야 되고 산림 관련된 국제 협력이 굉장히 많아요. 탄소 중립 관련된 것들도 산림청에서 하고 우리나라가 산림 강국이에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으로 인해서 산림이 완전히 파괴됐다가 산림 강국이 된 유일한 케이스예요. 그때 국제 산림 컨퍼런스를 우리나라에 유치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올림픽 유치 준비하듯이 그것도 유치 준비를 해야 되는데 유엔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에 가서 참가국들의 투표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투표일까지 1년 정도 남은 시점에서 각국의 산림 장관들을 만나서 설득을 하고 표를 얻어내고 실제 유치까지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그것 때문에 출장을 여기저기 많이 다녔고 청장님이랑 국장님이랑 다니면서 계속 똑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우리나라가 한국 전쟁으로 인해서 온 산림이 다 파괴되었다가 산림 강국이 됐다 이러면서 그 분들 찾아 뵈면서 설득하고 결과적으로는 유치에 성공을 했어요. 그래서 작년에 한국에서 유치를 했거든요. 거기 같이 참여하신 공무원 분들이 너무 고생 많이 해 주셔가지고 결국에 성사가 된거거든요. 

 

유치 활동을 위해서 통역으로 참여한 분은 라일라님 말고 또 있었어요? 아니면 유일했어요?

저는 유일했죠. 사전 인터뷰에 특별히 더 힘든 게 있으셨나 그런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또 의외로 쉬워요. 왜냐하면 내용이 반복되거든요. 그래서 딱 하나만 잘 짜놓고 하면은 거의 슬슬슬 쉽게 할 수 있고 국제 회의나 장관 면담 이런 거는 모든 게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돌발 상황이 거의 없어요. 거의 99%는 이미 사전 조율이 다 돼 있고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사전 준비만 좀 해놓으면은 수월하다. 근데 어쨌든 내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온다라는게 있으니까 부담스럽고 잘해야 된다는 그런 게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진짜 위대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네요. 근데 통역을 그만 두신 이유가 궁금해요. 
일단 나는 정부 기관은 아니다라는 걸 느꼈어요. 통역은 진짜 기능인 역할인 거잖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이거는 이렇게 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인 것 같아. 이게 딱 눈에 보이는데 얘기를 해도 바뀔까? 혹은 말을 해도 안 바뀌겠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거기서 오는 답답함이 있더라고요. 출판사에서 일했을 때는 이것도 신경 써야 되고 저것도 신경 써야 되고 프로젝트 내가 다 신경 쓰는 게 너무 피곤하고 나는 진짜 통역 번역만 하고 싶어 이런 생각으로 대학원을 갔다가 막상 통번역만 하니까 이거는 왜 이렇게 안 되지 이렇게 하고 싶은데 왜 안 되지 그런 게 답답하더라고요. 고민하고 있는데 전 직장 어린이 출판사 대표님이 저를 다시 부르셨어요. 지금 해외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 네가 와서 같이 일해 볼래 그래가지고 고민을 하던 시기에 연락이 오셔가지고 일단 한번 가볼게요. 해가지고 갔어요. 갔는데 완전 스타트업인 거죠. 스타트업은 처음이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중견 기업에 갔다가 대학원 갔다가 정부기관에 갔다가 스타트업에 처음 와 본 거죠.
 
옮길 때 고민하지 않으셨어요?
엄청 고민했죠. 근데 나한테 사기칠 분은 아니니까 한번 가보자 해가지고 일단 갔는데 스타트업은 처음이니까 출판사랑은 완전히 달랐어요. 출판사에 있었을 땐 2000년대 출판사 분위기였고요. 스타트업은 처음인데 여기도 완전 충격인 거죠. 여기에는 너무 아노미 상태. 너무 적응이 안 됐어요. 6개월 동안 매일매일 나 퇴사해? 말아? 퇴사해? 말아?
 
그 스타트업에서 어떤 일을 하셨길래 6개월 동안이나 고민을 하셨어요? 

처음에 갔는데 분명히 해외 사업 지금 너무 많아서 할 게 많아 했는데 아무것도 없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네가 와서 할 걸 만들어줘 그거였어요.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모르겠고 왜냐하면 예전 출판사에서는 이미 하던 사업에서 제가 신입으로 들어가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프로젝트 매니징까지 해본 건데 여기 와서는 정글에 던져지고 한번 해 봐 이러니까 정신이 없는 거예요. 심지어 계약서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어떤 식으로 쓰는지도 모르겠고 계약서부터 제가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 시절에 핑크퐁 컴퍼니 아기 상어는 상태가 어떤 때였어요? 

나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우리 유튜브 해, 유튜브 좀 반응 좋아 그럴 때요. 전혀 빵 터지지 않았어요. 유튜브 뷰수 같은 게 해외에서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느 정도 나오긴 나오는데 이걸로 돈을 어떻게 벌어 이런 상태였어요. 숏폼 콘텐츠밖에 없었어요. 동요 콘텐츠 그거 1분 30초짜리를 어디다 팔 거야 유튜브에 적합한 영상인데 그 당시에는 애들한테 유튜브 아무도 안 보여줬어요. 그리고 그때는 아이들 어린이용 동화책을 앱으로 만들었어요. 디지털 시대니까 책을 팔지 말고 앱북을 팔자. 인터랙티브하게 책인데 넘기면은 뾰로롱 하고 효과음도 나오고 그림도 움직이고 어린이용 인터랙티브 앱북을 팔잖아요. 그런 시대로 막 바뀌기 시작할 때였어요. 
 

6개월 동안 계속 그 고민을 하면서 그만 둘까 말까 고민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맨 처음에 했던 게 인플라이트 엔터테인먼트가 있잖아요. 거기에다가 키즈 엔터테인먼트를 넣을까 생각을 한 거예요. 왜냐하면 일단 이걸 보면 애들이 확실히 완전 초 집중해가지고 칭얼거리던 애들도 갑자기 조용해지고 되게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비행기에서 애들이 칭얼거릴 때 그거 틀어주면 좋지 않을까 그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래가지고 콜드 메일을 막 보냈어요. 그러다가 됐던 데가 캐세이 퍼시픽 됐거든요. 거기도 마침 콘텐츠 담당자가 새로운 키즈 콘텐츠를 찾고 있었나 봐요. “너네 샘플 보내봐” 이래가지고 보냈는데 “그래 그럼 뭐 한 번 넣어 줄게” 해가지고 근데 무료로.. 원래 그쪽 업계는 아무도 그렇게 콜드 메일을 안 보내요. 인플라이트 엔터테인먼트는 콘텐츠 에이전시들이 자기들이 콘텐츠를 사가지고 공급해 주는 식으로만 하고 항공사가 이런 식으로 절대 안 받거든요. 근데 제가 모르고 막 콜드메일을 보냈던 거죠. 그때 처음으로 이거 되게 재밌다. 그때 느낀 거예요. 아무도 이렇게 하라고 얘기를 안 했는데 저 혼자 생각해서 해봤는데 된 거였잖아요. 무료로 들어갔지만 그거 자체로도 홍보가 됐고 양사 미디어 플랫폼에도 그걸로 홍보 크게 하고 공항에서도 어린이 승객 있는 가족들한테 팜플렛이나 스티커 북 같은 거 줄 수 있게 갖다 드리고 막 하니까 그렇게 하면 그거 사진 찍어서 또 비디오 플랫폼에 올리고 이러니까 그거 하나만으로도 되게 홍보가 잘 되고 좋더라고요. 어쨌든 그걸 하고 나니까 거기서 느꼈어요. 나랑 좀 잘 맞다 재밌다. 또 뭐 하지 뭐 팔지 막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막 보고 있는데 그때 유튜브에서 터진 거예요. 아기상어가 갑자기 인도네시아에서 터졌어요. 저도 몰랐는데 그런 콘텐츠 트렌드가 동남아에서 제일 먼저 터져요. K-콘텐츠도 다 동남아에서 먼저 시작이 되거든요. 그 다음에 남미 다음에 미국 그 다음에 유럽이에요. 유럽이 제일 늦고 근데 아기상어도 그랬어요. 


갑자기 확 터졌을 때 그 시기에 그 회사에 있었다라는 게 엄청 큰 경험이었겠어요.
그러니까요. 저는 진짜 너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너무 재밌었어요. 왜냐하면 가만히 있는데도 인바운드 콜이 미친 듯이 와요. 제발 우리랑 콜라보 해줘. 근데 엄청 바쁘기도 했죠. 그때 저 혼자였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7명이 된 거예요. 그때 채용한 1호 팀원이 유자님이죠. 유자님이랑 쿵짝이 잘 맞아가지고 너무 재밌게 일했어요. 동남아에서 먼저 터지니까 동남아를 중심적으로 먼저 활동을 많이 했는데 아기 상어가 유아 아이돌 처럼 돼가지고 아이돌 기획사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안 해본 게 없어요. 그걸로 돈 벌 수 있는 걸 다 해본 것 같아요. 이것도 하면 돈 벌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저것도 될 것 같지 않아 막 이러면서 일단 콘텐츠 다 팔고 숏폼 달라고 하는 데가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쭉쭉쭉 계약하고 팔고 넷플릭스 말고도 그런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동남아에도 굉장히 많았고 남미에도 그쪽 리전에서 사람들이 많이 보는 플랫폼들이 있어서 그쪽으로 다 팔고 숏폼을 하다 보니까 이건 유튜브용으로 좋은데 좀 더 긴 것도 필요하겠다 해서 조금씩 길게 또 붙여서 만들고 그런 것도 팔고 IP 세일즈 해가지고 IP 머천다이즈해서 팔 수 있는 것들 계약해가지고 쭉 만들고 F&B부터 시작해가지고 각종 생필품, 유아용품 부터 시작해서 파티 용품, 학용품 뭐 별의 별게 다 들어왔어요. 쫙 계약하고 리전별로 IP 에이전시들이 또 오니까 매번 콜 해가지고 쭉 계약하고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럼 그 회사는 몇 년이나 계셨어요?
4년 정도 있었어요. 저는 거기에 굉장히 오래 다닐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거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이래가지고 아이를 낳으니까 진짜 아기 상어의 매력이 더 느껴지는 거예요. 회사 안에서도 내 자리도 잘 찾았고 앞으로 더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 같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한테 주어진 과제가 실물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일이었어요. 실물 제품이라 하면 결국에는 유아 IP니까 장난감이거든요. 근데 해보니까 저랑 너무 안 맞는 거예요. 제조는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이거는 정말 치밀하게 마진 계산을 애초부터 해서 기획을 잘 하지 않으면 무조건 망하게 돼 있어요. 그리고 시기 조절을 굉장히 잘해야 되고 릴리즈부터 역으로 계산해서 모든 준비가 쫙 돼야 되는 거예요. 저도 물론 책을 해봤지만 책이랑은 차원이 다른 거예요. 왜냐하면 중국 공장이랑 물류도 끼어 있고요. 우리는 국내만 할 게 아니라 해외까지도 하려고 생각을 했으니까 해외 수출입도 관련이 있는 거니까 나 같은 쪼랩은 내가 손을 대서 될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IP 세일즈나 파트너십 만들고 이런 것들은 파트너십을 할 때 대화의 스킬 이런 것들을 좀 눈치껏 해 나가면은 어떻게든 했는데 제조는 완전 다른 얘기고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와 돈이 엮여 있기 때문에 이거는 아트의 영역이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제조를 존경하게 됐어요. 제조는 진짜 대단하다. 이거는 내가 좀 잘못하면 너무나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근데 그 정도의 책임을 아직은 질 수 없는데 그 대표님은 할 수 있다고 하셔서 제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는 무슨 일을 해야 될까 그때 많이 고민을 했거든요. 내가 너무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거 아니야 약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자아가 생겨버렸네요? 우리 라일라님 또 자아 생겼어요.
맞아요. 근데 장난감을 친환경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내가 평생 내 걸로 가져갈 게 뭐야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글쓰기인 거예요. 나는 여전히 읽고 쓰고 하는 게 너무 좋으니까 그럼 나는 번역을 해야겠다. 생각을 다시 했어요. 그래가지고 이직을 한 거죠. 그래서 IT로 오게 됐어요.
 
지금 IT 기업 옮기신 첫 회사가 지금 회사이신 거예요?
이전에 다른 바이오테크 회사에 1년 반 정도 있었는데요. 유전자 정보 회사였어요. 해외 쪽 어 글로벌라이제이션이 필요한 곳이었어요. 유전자 정보를 검사를 해 주고 그거를 앱으로 그 결과지 내용을 제공해 주는 서비스였거든요. 그 제품을 다 영문화 작업을 하고 웹사이트 영문화하고 매뉴얼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영문화하고 그때 영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영문 관련된 것들을 다 제가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SNS 콘텐츠라든지 이런 것들도 영문화 작업 같이 하고 그랬었어요. 

 

번역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전문 지식을 번역할 때는 또 더 어려움이 있지 않아요?
맞아요. 통번역사들은 항상 자기 분야가 아니고 남의 분야에 들어가서 통번역을 해야 되잖아요. 통번역사는 되게 척을 잘하는 사람이다. 빠르게 공부하고 빠르게 배워서 하는 척을 하면 되는 거거든요. 잘하는 척을 계속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잘하게 되는 그런 게 있어요. 유전자 분야에 들어왔잖아요. 산림청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도 탄소 중립이니 뭐니 그런 되게 이과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기후 변화 관련된 논문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되게 많았기 때문에 어쨌든 나는 모르는 분야잖아요. 최대한 많이 읽고 최대한 많이 들어보고 필요한 용어들 단어들을 빨리 뽑아내서 정리한 다음에 그걸 내가 잘하는 척을 하는 거예요.
 
잘하는 척도 어느 정도 뭐가 있어야 척이 되는데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나 노하우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아니요. 없어요. 그냥 무조건 많이 봐야 돼요. 저는 그냥 절대적인 양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무조건 나한테 주어진 시간에 그냥 계속 읽어요. 계속 읽고 계속 써보고 진짜 왕도가 없어요. 저는 노하우가 진짜 없는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라일라님의 성향에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직을 했는데 여기는 마테크 회사예요. 여기도 한 3개월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 하고 왔어요. 여기 면접 보기 전까지도 마테크가 뭔지 몰랐어요. 막연하게 그냥 마케팅 관련된 IT 회사구나 하고 왔는데 뎁스가 정말 깊은 거예요. 실질적으로 IT 문서를 번역을 하게 된 건 처음이었고 개발자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프로덕트 자체가 굉장히 복잡해요. 프로덕트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고 마테크 생태계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고 온라인 광고에 관련된 것들도 시장의 이해 관계자들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이런 것들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고 근데 ‘그래 할 수 있어 한 3개월 하면 되겠지’ 하고 열심히 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쉽지 않네 생각이 들어서 책을 많이 찾아봤어요. 블로그에서 추천을 해 준 책이 있었어요. How to Make Sense of Any Mess 라는 책이었거든요. 정보 설계에 관련된 책이었어요. 원서로 주문서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 책을 읽으니까 내가 왜 지금 이 회사에서 이렇게 헤매고 있는지 알겠다 감이 온 거예요. 이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던 이유가 내가 아직 지식이 부족한건지 아니면 국문으로 된 자료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프로덕트, 개발이 잘못된 건지 이 세 개를 구분을 못하겠는 거예요. 이 세 개가 합쳐져 있고 매 케이스마다 다르니까요. 그 세 가지 중에 뭐가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데 1년이 걸렸어요. 근데 그 책을 읽으니까 1차 용어가 통일이 안 됐구나. 그리고 내부 인원들도 똑같은 개념을 다 다른 단어로 쓰는구나. 내부 용어랑 외부 용어 다르게 쓰는 거 너무 위험하구나. 뭔가 결정을 할 때 몇 명이서 내부자들끼리만 결정하고 공유 안 되는 거 이런 것들이 굉장히 위험하구나 이런 게 이해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고 하나씩 책에서 하라는 대로 해봤어요. 책 제목이 엉망진창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거든요. 내가 지금 엉망 진창에 빠졌으니까 어떻게 해야 되지 했을 그냥 진짜 하나씩 내가 뭐가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한지를 정리를 해보고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정리해 보고 용어를 내가 스스로 정리를 해서 길을 만들어 가보니까 한 1년 되니까 좀 자신감이 생겼고 번역은 확실히 자신감 있고 프로덕트 국문 카피 쓸 때도 더 자신 있게 의견을 낼 수 있게 됐고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만약에 안 맞았으면 아마 3개월 안에 그만 뒀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번역가는 그만뒀을 거예요. 왜냐하면 번역가는 나는 번역만 하고 싶지 다 틀린 거 나한테 줘 놓고 뭐 있는 대로 번역했는데요. 약간 이런 거거든요. 근데 저는 그게 너무 재밌었고 한 1년 하니까 진짜 너무 적성 잘 찾은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본다는 건 말이 쉽지 그렇게 하는 사람 많지 않을 것 같거든요. 원래 좀 그런 성향이 있으세요? 아니면 처음이었어요?

이번이 저도 처음이었어요. 저도 신기한 경험이었고 해보니까 뭔가 됐고 이 책이 그래서 너무 마음에 든 거예요. 이 책을 이 회사 사람들한테 너무 알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 작가한테 연락을 했어요. 나 이러 이러 했는데 너 책을 읽고 이렇게 해결이 돼가지고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나 너 책 번역해도 되니? 했더니 너무 좋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스페인어랑 포르투갈어로 이미 나왔고 일본어도 출판이 됐더라고요. 번역을 해가지고 지금 마지막 퇴고를 하고 있어요. 
 
살면서 이건 잘했다 생각하는 일이 아들 낳기라고 하셨어요. 아들 몇 살이에요?

이제 만 5살이에요. 지금은 많이 커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진 않은데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너무너무 힘들어요. 왜냐하면 이런 건 줄 몰랐거든요.
 
출산 혹은 육아 어떤 게요? 

육아요. 너무 너무 상상을 초월하는 힘듦이었고 저는 일할 때 에너지가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약간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집에서 이렇게 조용히 앉아서 뭐 보고 이런 걸 좋아하지 활동적으로 뭘 하지는 않거든요. 근데 얘는 주말마다 어딜 나가야 해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다섯 살 되니까 너무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진짜 좋은 게 저는 이런 걸 처음 경험해 보는데 그리고 안 낳았으면 못 경험해 봤을 것 같은데 진짜 아들이 저를 조건 없이 약간 사랑해 주는 게 느껴져요. 보통은 부모가 조건 없이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그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안 하면 혼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의지나 의도가 있잖아요. 그거에 맞지 않거나 반하면 굉장히 실망을 한다거나 부모님들은 좀 그런 게 있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예쁘게 하고 있어도 아니면 완전 집에서 널브러져 있어도 엄마를 똑같이 대하고 칭찬해 주고 예쁘다 예쁘다 해줘도 아니면 혼내고 화를 내도 결국에는 엄마 찾거든요. 진짜 엄마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그게 진짜 조건 없는 사랑이 있구나, 이거를 나도 남편에게?(웃음) 


오늘 아이티백에서 차 한잔 함께한 소감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차 너무 잘 마셨고요. 그리고 재밌었어요. 저도 이런 얘기 어디서 많이 할 기회는 없는데 하니까 재밌고 아이티백 들어보면은 나랑 결이 맞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들었거든요.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기분이 들어서 되게 재미있고 뜻깊은 것 같아요.
 
오늘 나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저희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CREDIT

글 오잉

인터뷰 뚜까, 오잉, 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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