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telmen Aug 25. 2016

하루 하루

결코 아무 것도 아닌 날이 아닌 날들

요즘 나는 마치 시한부처럼, - 이런 표현이 적당할까 싶다가도, 달리 대체할 말이 없어서 -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냥 묵묵히 열심히 지나쳐 보내는 것이다.

일과가 끝나고 정신적 긴장을 놓는 순간, 피곤함이라는 엄청난 무게가 그대로 온몸을 덮친다. 털컥 내려 앉은 기분은 계속 계속 구덩이를 파고, 집에 오면 그야말로 침잠의 시간.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다.
티비 채널을 돌리다 또 책 몇 장을 뒤적이다 휴대폰으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그냥 누워서 천장을 바라본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갈수록 더 엄청나게 쿵쾅거리는 뱃속의 아이가 때때로 상념 속을 비집고 들어올 뿐.

그나마 생각이 또렷한 시간은 아침이다. 지금 같은 출근길. 출산 휴가를 들어가기로 한 날까지 딱 2주가 남았는데, 어느 날은 얼른 다 내려놓고 집으로 달려가 그저 편히 몸을 누이고 싶다가도, 어느 날은 그나마 일하면서 느끼는 긴장마저 없으면 더 몸이 늘어지지 않을까, 불필요한 생각만 많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직까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내게 건강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데, 또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아직 닥치지 않은 워킹맘으로서의 날들에도 마찬가지일까, 이토록 일을 즐기며 고민하며 살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 역시 엄습한다.


지지난 주쯤인가 남편에게 물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6개월만 아이를 돌보고 회사로 돌아가겠다는 나에게 왜 제대로 말이 없냐, 진의가 뭐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아이가 일찍 다른 사람 손에 내맡겨지는 일이 마음 아프지만, 너가 즐겁게 일하는 게 난 너무 멋지고 부럽고, 그래서 그런 삶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거나 잃게 하고 싶지 않다. 만약 컨트롤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나도 방법을 찾아 보겠다. 너가 원하는대로 해라. 뭐든 같이 생각하자. 그 대답을 듣곤 주책맞게 눈물이 터져 버려서. 마주한 얼굴이 머쓱해질 때까지 계속 울었다.

앞으로 삶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순간 순간 벌어질 텐데, 나는 또 어떤 기로에 서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이란 내 삶에서 어떤 존재가 될까. 감히 아무 것도 짐작하고 싶지 않은 요즘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살아낸다. 최선을 다해. 그럼에도 결코 아무 것도 아닌 날이 아님을 알기에.

아, 데이데이나 무한 재생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식탁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