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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Sep 11. 2016

엄마와 딸

보통 사춘기에 아빠 속옷과 같이 빨래 돌리는게 싫어지는 때가 온다고들 하던데 난 그런게 없었다. 예민하지도 않았고 뭘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나는 첫 월경도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말할 정도로 자라면서 아빠와 더 가까웠다.


속옷에 관해 민감해진 건 오히려 성인이 된 후였다. 처음으로 (나 혹은 남자친구) 취향에 맞춰 산 내 속옷을 빨래하고 개고 있는 엄마를 볼 때 정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나는 딸이 제 용돈으로 속옷을 사기 시작할 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읽은 소설의 대부분, 엄마와 딸은 경쟁하고 또 견제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다 그런 건줄 알았다. 나는 늘 엄마 아빠가 싸우면 아빠 편에 섰고, 엄마에게 핀잔을 줬다. 내가 뭐라고 훈수 두는게 내 역할인 줄 알았다. 엄마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며 꼭 붙어 쇼핑을 다니거나 놀러 다니는 애들을 보면 부럽기보단 별 유난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엄마가 내 삶에서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존재가 된 건 5년 전, 정말 어느 한밤 중 일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악을 쓰고 버티면서도 옆방 문을 걸어 잠근 채 다 듣고 있을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와 나는 한번도 그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알았다. 늘 학생부 선생님 같던 엄마는 이미 무척 연약하고 나이든 여성이 되어 있었다.


나는 2년 전 외할머니를 보내고, 엄마를 조르고 보채 단 둘이 처음 간 여행에서의 엄마를 잊을 수 없다.

가장 큰 잔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리조트의 커다란 화장대 앞에서 빗질을 하며 하염없이 앉아 있던 모습. 엄마는 집이 없어진 후 자신만의 공간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나의 딸을 돌보면서 더 늙어갈 우리 엄마.

나는 엄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딸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나의 엄마... 능소화는 엄마의 꽃이다.
끼니를 거르지 말고 몸에 이로운 음식을 찾아 먹도록 해라. 이는 몸을 섬기려 함이 아니다. 몸을 잘 건사하는 것은 몸을 써서 해아 할 마땅한 일을 하기 위함이다. 해야 할 마땅한 일을 할때는 몸을 고되게 부려도 좋다.

작은 일에 지극하고 큰일에 대해서는 대범하도록 해라. 사람들은 작은 일에 연연하면서도 대충대충 하고 큰일에 대해서는 우왕좌왕하다가 중심과 맥락을 놓치기 일쑤다.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라. 그게 중심을 잡는 것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도록 해라. 그렇다고 말해야 할 순간에 입 다물고 있는 것도 매우 어리석어 보인다. 꼭 해야 할 말을 하도록 해라. 그리고 침묵하라. 말보다는 눈빚으로 말하라.

바람이 불 때는 그것이 곧 지나가는 것임을 잊지 마라. 비가 올때도 마찬기지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구름이 걷히면 해가 나는 법이다.

발끝으로 서 있으면 오래 있을 수 없다. 네가 가진 바 능력과 분수에 맞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항상 책임을 져라. 너무 빨리 가려면 쉽게 지친다. 천천히, 끝까지 목표한 데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마음을 다해라. 마음을 다하면 몸도 따라간다.

좋은 책을 손에서 놓지 말고 고전음악을 많이 들어라. 좋은 책과 고전음악은 너를 생각이 풍부하고 지혜롭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고 자기를 이기는 것은 지혜라고 했다.

남을 이기려고 힘을 키우기보다는 자기를 이기기 위해 지혜를 키우는 사람이 되어라.

하루하루를 그냥 넘기지 말고 무언가를 조금씩이라도 써라. 쓰면서 더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걸 성찰이라고 한다.

무릇 꽃이 빚이 좋고 향기가 좋더라도 꽃은 열매를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시위를 당길때 꽂이 아니라 열매를 겨냥해라.

쉽게 얻은 열매의 단맛에 취하지 마라. 그것은 어쩌면 네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네 땀과 피와 시간으로 익히 열매의 단맛이 네가 기쁜마음으로 취해야 할 것이다.

남에 것에 욕심내지 말고 제 가진 것을 아낄줄 알아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너 자신이돼라.

네가 먹을 음식과 네가 입을 옷과 네가 살 집을 스스로 마련해라. 해뜨고 난 뒤엔 걷고 일해라. 해진 뒤엔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지친 몸을 쉬게 해라.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쌓아두지 마라. 그것들이 귀한 시간을 갉아먹고 인생을 낭비하게 만든다. 한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만을 구하라.

양털로 지은 옷 한 벌, 책읽을 시간. 훌륭한 벗, 오래된 포도주, 비바람 막아 주는 집, 그 다음 동트는 새벽의 빛을 구해라. 늘 세상에서 처신함은 봄비와 같이 하고, 뜻은 가을하늘에 뜬 매같이 놓은 데 두어라.

 <장석주|딸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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