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쯤부터 집 밖을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이 1분1초가 아깝지만, 세네시간 텀으로 수유를 하는 패턴에 맞춰 하루를 6번으로 나눠 보내다보면 때때로 허리를 펼 시간도 없다보니 최근까지 회복이 더뎠다. 몇개월을 제대로 걷지 않아 다리 근육은 물렁해졌는데, 아이를 안다보니 팔과 상체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 균형도 완전 깨졌다. 정말 얼마 전까지는 혼자 똑바로 몸을 펴고 가만히 서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아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 왼쪽으로 쓸려 있었던 탓에 허리가 틀어졌는데, 모유수유를 하면서 통증이 더 심해졌다.
스스로 놀랄 만큼 처음엔, 아이가 내 젖을 먹다가 칭얼대면 분유부터 타기 시작하는 친정엄마에게도 히스테리컬하게 굴 정도로 모유수유에 꽤 집착했다. 계속해서 젖을 물리면 어떻게든 아이에 맞춰 양이 늘어난다고 해서 내려놓은지 삼십분 만에 아이를 다시 품기도 했다. 그렇게해서 양을 제법 늘렸지만 모유를 직수로 하면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수유텀이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보니 종일 가슴을 추스리고 허리를 세울 틈도 없이 대기조가 돼야 했다. 그게 우울하거나 싫은 건 아니었는데 그냥 몸이 정말 힘들었다.
직접 물리는 것 대신 유축을 하기 시작하면서 젖은 차츰 자연스럽게 줄었고, 결국 간신히 100일 가까운 3개월을 채우자마자 그만두어 버렸다. 요즘은 젖을 떼고 몸을 움직이니 허리 통증이 좀 가신 덕분에 아주 살만한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젖물릴때의 교감으로 인한 기쁨이 어마어마했기에 젖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서운했다. 아이도 그럴까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젖떼기의 경험이 아이에게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장의 문턱이고, 아이에게 성장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부모가 먼저 받아들여야 가능한 일>이라는 글귀를 보고 위안을 삼을 뿐이다.
어쨌든 젖떼기 이후 나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로 마음 먹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엄마가 낮동안 와주거나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면 하루 두세시간쯤 혼자서 바깥에 나가 시간을 보내고 온다. 외출이 생활에 가져다주는 활력은 생각보다 더 크다. 오늘은 운동을 한 뒤, 아주 오랜만에 홍대까지 갔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찍었던 필름들 중 몇장을 골라 인화 맡긴걸 찾았고 휴대폰으로 사진도 몇장 찍었다.
돌아오는 길엔 좋아하는 베트남 식당에 들러 엄마와 나눠 먹을 생각으로 반미 2개를 포장했다. 하나는 고수를 잔뜩 넣고 하나는 빼서. 아! 카페 쑤어다도 한잔 테이크아웃. 달콤쌉싸름한 커피를 홀짝이며 걷는데 그게 뭐라고 진짜 행복했다. 매일같이 다니던 길인데 생소한 곳에 온것마냥 좋았다. 외출을 삼갔던 근 삼개월간 동네는 또 바뀌어 있었다. 가끔 갔던 고깃집은 치킨집으로, 그 옆 횟집은 또다른 고깃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요란한 주점들 사이로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계속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주변 환경(쾌적함, 안전함 등등)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져 조금 더 한적한 교외의 넓고 깨끗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아이를 기르는 상상(인스타에 넘쳐나는 더 큰 평수의 집, 더 많은 물건들의 풍요로움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을 종종 해보다 관두곤 하는데 남들에겐 부산서 상경해 무조건 서울살이를 주장하는 남편 핑계를 대지만, 실은 내가 이 도시와 골목들의 활기찬 소란스러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신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그 특유의 구획된 질서정연함이 싫었다.
이 요란한 서울에서도 운좋게 좋아하는 곳에 터를 잡고 아이를 낳았다.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오래오래 이 동네, 이 마을서 살고 싶다. 평평한 보도블럭이 깔리고 계획형으로 조성된 공원이나 놀이터가 집 앞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신 돌이 박힌 단단한 흙길에 자연숲이 있는 야트막한 산이 집 뒤편에 있다. 차 타고 대형마트도 갈 수 있지만 재래시장에 걸어가 갓 튀긴 도너츠도 사먹을 수 있다.
부디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 곳곳의 변화무쌍함을 다채롭고 재밌는 자극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형몰에 갇힌 키즈카페와 패밀리 레스토랑보다는 골목골목의 예쁜 카페와 음식점, 작은 서점을 더 흥미로워 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