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을 이긴 그림책 한 권
나는 암환자이다.
우리 옆 집 아저씨도 걸렸고 우리 이모부도 걸렸었다.
암이 요즘 트렌드인가?
그것도 보험회사에서 제일 보험금을 많이 받는 고위험 암환자. 백혈병 환자이다.
나는 60킬로가 넘는 건장한 40대 중반의 아줌마다. 건장하다고 해서 아저씨로 생각했으려나?
내 또래 아줌마들이 즐겨한다는 스포츠센터 줌마댄스를 3년 넘게 했다. 날씬해서 근육이 단단한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지만 암을 앓을 정도의 약골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는 금연. 금주를 평생 해온 사람이다. 그런데 암환자가 되었다. 그것도 어린이에게 새 생명 모금 방송에서 보았던 백혈병 환자가 된 것이다.
이 병을 앓기 전에는 백혈병은 어린아이들만 걸리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백혈병에 무지하고 관심도 없었다.
1년을 꼬박 병원에서 보냈다. 수없이 토하고 토하고 또 토했다. 항암치료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처럼 머리도 빠지고 몸무게는 20킬로 이상 빠졌다. 면역력이 문제가 되는 병이기 때문에 통제된 병동에서 생활하며 1인 이상의 면회는 제한되었다.
가족들이 와도 병실에는 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주말이면 아이들이 병문안을 오곤 했는데 2시간 걸려 와서 30분 휴게실 만남이 전부였다. 시간제약이 있는 건 아니지만 휴게실 만남은 나에게 육체적인 피로를 안겨주기 때문에 길게 있을 순 없었다. 그나마 우리 아이들이니까 휴게실까지 나가서 30분 면회를 하고 들어왔지 사실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이 빠지는 상태까지 가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전 국민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지만 내가 입원해 있던 2016년에는 마스크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백혈병 병동에서는 마스크는 기본이며 생명줄이다. 1년을 마스크를 쓰고 살았다. 잠잘 때도 마스크를 쓸 때가 많았다. 작은 공기의 변화에도 몸은 한없이 무너졌다. 오로지 마스크만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처럼 의지했다.
병실에 창이 있었지만 아무도 창문을 열지 않는다. 혹여나 감기가 걸리면 바로 중환자실행이기 때문에 꽃피는 봄에도 창문 한 번 열지 못하고 지내는 시간은 계속되었다. 암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가까운 가족의 삶을 무너뜨린다. 모든 암환자가 그렇듯 처음에 나는 암을 실감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을 때 백혈병이 걸려 보험금이 8천만 원이나 나온다고 땡잡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암의 무서움보다 8천만 원의 꽁돈이 더 반가웠었나? 아니면 나는 암이 걸렸어도 죽지는 않겠지?라는 무모한 자신감이 있었나? 아니다. 나는 친구들에게 겁먹은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허세를 부린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무서워서 무섭다는 표현을 못했다.
6인실 병실을 쓰면서 바로 앞 베드 환자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다. 옆에 환자가 헛소리를 하며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는 것도 보았다. 같은 병을 앓고 있지만 그 작은 병실 안에서도 왕따도 생긴다. 장기입원 환자들이 텃새를 부린다. 어디에서도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도 이런 사회적 관계가 생성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혹여 병실일지라도 그 안에서 허세가 있고 허영이 있으며 험담이 있고 권력이 있다. 뒤돌아보면 나도 그 안에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다.
암이 걸리면 사람들은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러나 나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그리고 내가 그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이전 삶에서 변한 거 같지는 않다. 물론 난 그들의 병원 밖 생활은 모른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10개월 이상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바깥생활까지 짐작하게 된다.
영화나 티브이에서 보면 암 걸린 사람은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고 미웠던 것도 다 용서해 준다. 몇 십 년 얽혀 있던 인연의 고리도 풀게 되며 훈훈한 장면들을 그려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암 진단과 치료 그 이후에 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우울함과 무서움과 절망감 그리고 죄책감이 뒤엉킨다. 그 시절 심적 우울감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그림책이었다. 그리고 퇴원하고 다시 독서 강사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것 또한 그림책이다. 아이들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책이 어떻게 나에게 와서 마음을 치료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혹시 저를 아시는 분들이 걱정하실까 봐 지금은 거의 완치되었습니다. 5년이 지났으니까요. 물론 병원에서 '완치'라고는 아직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봐서 아시겠지만 건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