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식혜를 아시나요?

브런치 작가 신청 심사 글.

by 카페 그린티


식혜는 맵다. 감주는 달다. 내가 알고 있는 식혜와 감주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감주를 식혜라고 부른다. 어려서 몇 번은 친구를 붙잡고 이건 식혜가 아니고 감주라고 설명도 하고 그림으로 그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애들은 도통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야, 비락식혜 있잖아. 이걸 식혜가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냐?” 오히려 친구들이 나를 답답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그냥 감주를 식혜라고 한다. 어느새 나도 사람들이 말하는 식혜가 식혜고, 내가 알고 있던 식혜는 변종 식혜처럼 말하게 됐다. 우리 시골 동네 식혜가 들으면 언짢겠지만.


자라기를 서울에서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는 경기도에서 살았다. 고향은 경상도다. 경북 의성, 마늘로 유명한 그 의성 맞다. 햄 때문인지 의성을 아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러나 나 어렸을 적에는 의성이 어딨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동 옆의 의성이요.”하고 덧붙여 말했던 기억이 있다. 안동 옆의 의성이 내 본가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매년 여름과 겨울을 의성에서 보냈다.


의성 업동이라는 할머니네 동네는 마을에 슈퍼가 없다. 집에는 대문도 없다. 슈퍼 대신 집집마다 사과나무가 있다. 사과가 천지인 그런 마을이었다. 사과가 많은 대신 그 외 먹을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어떤 음식도 다 맛있었다. 밭에 있는 배추 뽑아서 겉잎 떼어내고 부쳐주었던 허연 배추전도 맛있었고 살구처럼 조그맣고 못생긴 푸릇한 복숭아도 맛있었다. 그리고 가장 맛있었던 것은 식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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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그 알싸한 식혜가 맛을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정말 맛있었다.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했다. 무도 있어서 먹을 때 빼고 먹었던 것 같다. 당근도 있었다. 그리고 밥알은 없었던 거로 기억난다. 기억이 왜 선명하지 않냐면 초등학교 1학년 이후에는 한 번도 먹어본 적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 식혜의 빛깔과 냄새, 맛은 뚜렷이 남아있다.


할머니네 식혜는 서울 집 식혜와 달랐다. 우선 붉은 빛이다. 너무 진한 붉은 빛은 아니고 환타보다 조금 더 붉은 빛이라고 보면 된다. 채를 썬 무와 당근이 있다. 맛은 수정과와 비슷한 알싸함이 있다. 고춧가루를 넣었지만, 색으로만 나타낼 뿐 입자가 보이는 건 아니다. 입자가 보였으면 어린애인 나는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다. 무엇을 먹든 입가심으로 식혜를 먹었다.


할아버지가 아프시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골집에서 서울 우리 집으로 오셨다. 그 후 할머니는 식혜를 하지 않으셨다, 식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음식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옆에 종일 붙어 있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일 년을 앓으시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골로 할머니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우리와 함께 살지도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할머니 굉장히 젊으셨다. 근처에 집을 마련해서 결혼 안 한 삼촌이랑 고모와 함께 살았다. 종종 할머니 댁에 갔을 때도 그 식혜는 맛본 적이 없다. 그때는 그게 이렇게 그리워질 줄도 몰라서 해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식혜에 대한 조바심을 내지 않았던 건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그 시골집에서 내가 두 살 때까지 시집살이를 했다. 할머니가 하는 음식이라면 엄마도 당연히 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결혼해서 가끔 “엄마, 경상도 식혜 있잖아. 빨간 거. 그거 해 먹자.”라고 말하면 “나 못해. 할머니가 할 줄 알지?”하며 안 해줬다. 그때는 귀찮아서라고 생각했지 정말 모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대신 엄마는 내가 경상도 식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세상 쉬운 감주 있는데, 감주 해줄게.”하며 전기밥솥으로 뚝딱뚝딱 감주를 해주었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밥알 동동 식혜다. 명절날 친정에 가면 항상 있었던 음식이 잡채와 식혜였다. 집에 올 때면 다른 음식은 손사래 치며 안 받아 오면서도 생수병에 담긴 식혜는 두 병씩 받아 왔다. 나도 좋아하지만, 막내 아이가 더 좋아했다. 시중 식혜와 다른 엄마한테서만 먹을 수 있는 식혜다.


몇 년 전 저녁 엄마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쓰러져 두 달을 중환자실에 계시다 호흡기 때문에 말 한 번 못 건네보고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많은 것이 후회로 남았다. 이걸 보면 이게 후회스럽고 저걸 보면 저게 후회스러웠다. 하물며 엄마표 식혜를 못 배운 게 이렇게 후회스러운 줄 몰랐다. 식혜 맛을 못 봐서가 아니다. 많은 식혜가 있지만, 엄마 식혜 맛이 있다. 너무 달지 않으면서 달았던 식혜 맛. 그 엄마 식혜가 너무도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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