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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Feb 07. 2022

포트폴리오 첫 줄을 바꾸다

윤아 3.0 리브랜딩

콘텐츠 마케터, 글 쓰는 마케터,

그 다음은?


멋진 글을 쓰려면 도입부가 중요하다. 내 경력을 한눈에 보여줄 포트폴리오 첫 줄도 마찬가지. 회사로 치면 메인 슬로건인데 직무랑 연차만 쓰기에는 아까운 자리다.


이번에 포트폴리오를 다듬으면서 3년 만에 이 문장을 바꿨다. ‘스타트업의 진심을 전하는 스토리텔러’. 몇 달째 하던 커리어 고민에 답을 내린 문장이라 마음에 쏙 든다. 이걸 윤아 3.0 리브랜딩이라 치고, 1.0과 2.0 시절과는 어떻게 달라진 건지 기록으로 남겨둔다.


1.0: 콘텐츠 마케터(0~3년차)

내가 일을 한다! 는 것만으로 감동이던 사회 초년생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자리에 다 떨어지고 스타트업을 살펴보던 취준생 시절. ‘콘텐츠’라는 말이 들어간 직무를 발견하고 이거다! 싶었다. 콘텐츠의 기본은 글 아니겠어, 글 쓰는 거야 예전부터 좋아했으니까. 잉여롭게 온라인 유머를 찾아보고 낄낄대던 내 취미에도 잘 맞겠다 싶었다. 그렇게 운 좋게 콘텐츠 매니저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앱에 들어갈 콘텐츠 카피를 쓰고, SNS 광고를 만들고, 상세페이지를 쓰고. 콘텐츠 마케팅 하면 떠오르는 여러 일들을 후딱후딱 해냈다.


첫 3년 동안 여러 회사를 거쳤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월급 축내는 사람 취급 받으며 눈칫밥을 먹고, 광고성과가 안 나온다며 1달 만에 잘리기도 하고. 자신감 바닥 치던 시절이었지만 덕분에 자아성찰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패션뷰티 쪽이랑은 안 맞는구나, SNS 광고를 잘 만드는 사람은 아니구나. 그리고 뭐, 너무 기죽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처음부터 일 잘 하나. 망해가는 팀 막내라고 눈치 주는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 한 달 만에 성과 못 냈다고 수습 종료해버리는 회사도 잘한 거 없고!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겨내려고 글을 썼다. 등장인물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못 알아보게 각색한 소설 같은 에세이였다. 스타트업 다니는 여러 사람들이 그 글을 재밌게 읽어줬다. 힘을 얻어 열심히도 썼다. 쌓여가는 글, 올라가는 조회수를 보면서 무쓸모병을 버틸 수 있었다.


2.0: 글 쓰는 마케터(4~6년차)

내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말하다


콘텐츠 마케터가 뭐 하는 사람인지 나름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갔다. 그런데 실무자 입장에선 하는 일이 사람마다 회사마다 달라서 설명을 잘해야 했다. 영상 만드는 사람, SNS 콘텐츠 만드는 사람, DA 광고 카피 쓰는 사람 모두 콘텐츠 마케터. 나로 말하자면 그중에 글 쓰는 사람이라고.


다행히 글 쓸 일이 정말 많은 회사로 이직 성공했다. 이전까지 회사에서 쌓아온 3년 경력이 아니라 몰래 써 왔던 에세이 덕분이었다. 대표가 내 에세이를 재밌게 읽은 분이었다.


글 쓰는 마케터라는 말은 이 시절 사내 강연 온 분이 만들어주신 거다. 당시 회사의 대표가 그분께 나를 글 잘 쓰는 사람으로 소개해줬는데, 그분이 ‘그럼 글 쓰는 마케터네요!’ 하셨다. 그 말이 마음에 들어 여기저기 쓰기 시작했다. 쓰면 쓸수록 내 일을 잘 표현하는 말 같아서 좋았다.


이때부터는 회사 밖에서 쓴 글이 아니라 회사에서 한 일들로 역량을 인정받게 되었다. ‘글 쓰는 마케터'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했고, 새로운 형태의 글을 써나갈 때마다 엄청 재밌었다. 영업팀이 있는 회사, 다른 마케터들이 있는 회사를 다니며 협업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못하는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할 줄 몰랐다. 일이 많고 피드백이 다양해서 힘든 상황이야 언제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내 일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 쓰는 일도 이 정도면 대부분 해 보았다 싶은데. 이 다음에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하는 일만 계속하면 한계가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로 많이 벌고 싶은데, 단순히 해내는 일의 양을 늘리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의 해답을 찾고 싶었다. 1.0때는 퇴근하고 쓴 글이 나를 키웠고, 2.0때는 다양한 글을 쓴 게 나를 키웠다면. 지금부터는 뭘 해야 하지?


이 고민을 작년 말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퍼블리에서 ‘포트폴리오를 위한 마케터의 데일리 기록법' 주제로 콘텐츠 제작을 제안받았다. 콘텐츠를 기획하신 JH님은 여러 마케터들이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 좋을지, 어떻게 내 일을 기록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그들에게 도움이 될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몇 년째 일간 업무 정리하고 있는 걸 어떻게 아셨지! 그렇게 신나게 만들게 된 콘텐츠가 <포트폴리오를 채울 하루 10분 업무 기록>이다. 하루에 10분이면 충분한 일간 업무일지 작성으로 포트폴리오까지 뚝딱 만드는 내 방식을 알려주는 글이다.


이 글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내 포트폴리오부터 정리해야 했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레퍼런스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덕분에 2년 만에 포트폴리오를 정비했다. 보여주고 싶은 작업물이 많아져서 이전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갈아엎었다. 이 정도면 경력을 맹탕으로 쌓은 건 아니구나 뿌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다음에는? 글 쓰는 마케터라는 표현에 맞게 다양한 글을 써 왔는데. 앞으로의 나는 어떤 표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래서 포트폴리오 첫줄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세상을 혁신하는 스타트업을 멋진 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는 아무래도 뻔하고 한정적인 말 같았다. 더 멋진 말 없을까. 포트폴리오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지만 결국은 마음에 드는 말을 찾아냈다.


3.0: 스타트업의 진심을 전하는 스토리텔러

할 수 있는 일을 넘어, 내 일의 가치를 말하다


회사 브랜드 스토리에 들어갈 글을 쓰다 퇴근한 밤이었다. 바람이 차고 배가 고팠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 회사를 멋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회사에서 쓰는 모든 글은 회사의 진심을 알리기 위한 글이었다. 창업자가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제품과 서비스로 그 가치를 만들어가는지. 스타트업 특성상 대표와 직접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고 그때마다 멋진 이야기를 모을 수 있었다.


‘글 쓰는 마케터'라는 표현에는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왜 쓰는지가 빠져 있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다양하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많이 써 본 다음을 고민하는 지금은 ‘어떤 글'을 쓰는지야말로 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고객을 향하는 선한 진심이 있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다. 그 진심을 멋진 이야기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


그렇게 포트폴리오 첫 줄을 바꾸며 마음이 벅찼다. 여태껏 해온 일과 앞으로 해나갈 일을 모두 담을 수 있는 표현이라서. 한계 없이 성장할 수 있는 목표라서. 어딘가 오글거리기지만 어깨 으쓱해보기로 했다. 윤아 3.0 리브랜딩, 이만하면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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