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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Feb 13. 2019

망하는 콘텐츠 전조증상, 제작 때 미리 알고 예방하자!

두 번의 망한 콘텐츠에서 패턴을 발견했다.

흐으으으어어어어어어어엉...


  2019년 2월 12일 오후 6시쯤, 고요한 사무실에 나의 통곡이 울려퍼졌다. 반경 3m 내 팀원분들이 피식 웃었지만 나는 함께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저 통곡은 지난 나흘 동안 쓴 글이 컨펌 단계에서 엎어짐을 애통해하는 나의 곡소리이자 다시 일어난 참사에 몸 둘 바를 모르고 터진 슬픔의 결정체였다.


  사연인즉, 사나흘 전부터 나는 AI 관련 글을 쓰고 있었다. 요즘 회사 개발자분들을 관찰한 문과생 마케터 웹툰이 흥해서 어깨가 으쓱해 있긴 했지만 이제는 글을 써야 할 시기였다. 쉽고 재밌는 AI 이야기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인간과 AI를 게임 캐릭터에 빗대 능력치를 평가해보면 재밌겠죠!' 라며 재영님께 소재를 컨펌받고 작업에 착수했거늘 그 글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다 C:\마케팅\글\draft 폴더에 반영구적으로 잠들게 된 것이다. 거의 다 완성한 글이 리젝된 게 이번으로 두 번째다.


  그래, 망한 콘텐츠에서도 배우는 게 있어야 시간이 덜 아깝다. 지난번 다 쓴 글이 리젝됐을 땐 기분 나쁘지 않은 피드백 방법에 대해 영감을 얻어 회고 글을 썼었다. 이번엔 콘텐츠 제작과정 그 자체를 되짚어보자. 어쩌다 내 글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게 되었을까. 지난번과 이번 실패를 종합해보니 조금은 패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번 글쓰기 사례와 함께 정리해 둔다. 컨펌되지 않는 글을 쓸 때 나오는 나의 특징들은 아래와 같다.




1. 괜찮은 소재를 찾아낸다.

: 머리를 쥐어짜 내다 그럴싸한 소재를 찾아낸다. '재영님!! 다음 소재!!! 인간 대 AI 능력치 비교!!!! 게임 캐릭터로 비유하면 재밌지 않을까요?!?!!'라고 호들갑 떨며 슬랙을 보내 소재를 컨펌받는다. 시작은 반이라니까, 1에서는 일단 뭐라도 해낸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이 단계까지는 문제 될 게 없다.

  *재영님=우리 회사 CEO, 내 콘텐츠를 확인하는 직속상관


2. 소재는 괜찮은데 막상 콘텐츠로 풀어내려니 어렵다.

: 1에서는 게임 캐릭터에게는 크게 체력, 힘, 민첩성, 지능 같은 것들이 있으니 이걸 기준으로 AI와 인간의 차이점을 풀어내면 되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구체적으로 글의 구조를 짜고 필요한 내용을 조사하려니 나의 무지가 느껴진다. 이거... 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에고. 내 지식이 부족한 탓이겠지. 공부하자. 어려워 보여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자료를 끌어모으고 공부를 계속한다.


3. 하루쯤 고민하면 나올 줄 알았던 글의 구조가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 보통 2까지 완료하는 데 하루나 이틀쯤 걸린다. 그 정도면 문장 단위로 자세한 콘텐츠가 나오지는 않아도 대충 글에 들어갈 내용, 더 조사해야 할 부분 등이 한눈에 보이게 마련이다. 망하는 콘텐츠를 제작할 땐 이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실마리가 잡히질 않는다. 2까지야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겪는 창작의 고통이라고 위안 삼을 수 있는데 이 단계부터는 극복 불가능한 스트레스의 시작이다. 이 시기에 재영님이나 리서치팀, 그 외 콘텐츠 주제에 대해 잘 아는 주위의 도움을 요청해 글의 방향이나 주제를 수정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4. 더 공부한다.

: 하지만 나는 콘텐츠 마케터의 가오가 있으니 뭐라도 써보겠다며 잘못된 선택을 한다. 4가 반나절에서 하루쯤 더 잡아먹는다. 내가 만들려는 콘텐츠에 딱 맞는 자료가 없을 때가 있고, 어떤 자료를 더 찾아야 할지조차 막막할 때도 있다. 전자면 그나마 괜찮은데 후자는 답이 없다. 이 단계까지 오면 재영님께 성과가 없었다며 솔직히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여기서 노력을 더해 봐야 아이고 의미없다. 하지만 난 내가 뻘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괜한 시간을 썼지. 이 단계에서 글이 이상한 것 같다며 피드백을 요청했어도 재영님이 나쁘게 받아들이진 않았을 텐데. 그건 누굴 위한 증명이었을까.


5. 뭐라도 완성될 수 있도록 콘텐츠 방향을 수정한다.

: 이쯤 되면 시간을 투자한 만큼 뭐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똥을 빚어내기 시작한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공유 많이많이 되면 좋겠다! 하는 청운의 꿈은 사라진 지 오래. 이 단계는 의식의 흐름 따라 진행되기에 과정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6. 써제낀다.

: 텍스트 콘텐츠를 만들 땐 보통 '쓴다'고 하지만 이건 '써제낀다' 가 정확한 표현이다. 써제낀다. 여태까지 참고했던 자료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로서 문장을 이루어 글 한 편이 나온다. 이전 단계까지 고생하던 걸 생각하면 6은 금방 끝난다. 하지만 평소 글을 다 쓰고 나면 느낄 수 있던 뿌듯함이 온데간데없다.


7. 써제낀 글을 보며 한숨을 쉬다 어떻게든 작업을 마무리한다.

: 사실 6에서부터 그 글이 좋은 글이 될지 모자란 글이 될지 감이 온다. 하지만 모자라면 모자랐지 이렇게 된 이상 빠꾸는 없다. 퇴고한다. 퇴고는 평소보다 금방 끝난다. 어차피 재영님 피드백을 받을 때 대격변이 생길 걸 본능적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콘텐츠 퀄리티를 높일 다른 방법을 찾는다.

: 글이 별로인 걸 다른 수를 써서 괜찮아 보이게 만들려 한다. 내 경우에는 글에 넣을 일러스트를 그린다.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 땐 '이건 완성하기만 하면 개꿀잼일 거야' 자화자찬하며 신나게 포토샵 브러시를 휘갈기고 일러스트가 모두 완성된 다음 재영님께 글을 보여드린다.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1부터 7까지를 거친 콘텐츠는 일단 재영님 피드백부터 요청해 두고 그 사이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제야 포토샵을 켠다. 뭐라도 만들어서 채워야지, 이걸 써먹을 진 모르겠지만...


9. 와장창

: 그렇게 포토샵을 끄적이고 있으면 피드백 요청했던 글을 쭉 읽어보신 재영님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다. 재영님이야 항상 밝은 표정이지만 글이 괜찮을 때 미소랑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글을 피드백하러 올 때 미소는 완전 다르다. 하... 오늘은 재영님 표정이 리젝 선고 3분 전짜리 삼파장 전구급 밝기였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글이 별로인 이유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고, 회사 이름 걸고 올리기엔 아무래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흐으으으어어어어어어어엉...




  아무리 내가 부족함 많은 주니어 콘텐츠 마케터라도 내가 만든 콘텐츠가 똥인지 카레인지는 구분할 수 있다. 문제는 똥이 되어가는 콘텐츠를 똥맛 카레로라도 써먹으려 애쓴 나 자신이었다. 빛을 보지 못한 글 두 편을 쓸 때 내 심리 상태나 행동 패턴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앞으로는 재영님이나 준철님, 그 외 팀원분들이 "이번 콘텐츠는 잘 만들고 있나요?" 물을 때 "하... 어렵네요."가 아니라 "하... 하나도 모르겠네요." 라고 답하게 된다면 스스로 의심해 보아야겠다. 나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망작이 의심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헛되이 업무시간을 쓴 것 같아도 매몰비용으로 치는 게 이성적이니까. 그리고 우리 회사는 이 정도 실패를 능력 부족으로 치부하지 않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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