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끝에 오래된 컵 하나
금이 가고 바랜 흰색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조용히 시간을 견딘다
컵의 안쪽에는
지난 계절들의 잔향이 고여 있고
바깥쪽에는
손때의 무늬가 바람결처럼 남아 있다
컵을 들여다본다
텅 빈 공간
얼마나 많은 풍경이
거기 머물다 갔는지
시간이 더디게 스며든
작은 사물 앞에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