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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요?”에서 시작된 꿈

by 이피디

“너는 꿈이 뭐니?”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입이 굳어졌다. 어떤 꿈을 꿔야 할지 몰랐고, 그저 주어진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떠올리며 얼굴에 희망을 담고 말하는 모습이 나에겐 너무도 멋지게 보였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꿈을 떠올리는 것이 두려웠고, 왜 그런 꿈이 내게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과학자가 될 거예요”, “저는 대통령이요!” 그런 대답들을 들으며 나는 나의 꿈을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어떤 직업이 나를 가슴 떨리게 할 수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질문이 계속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처음으로 ‘되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무대 위의 주인공’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릴 적, 교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율동하며 시간을 보낸 그 순간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는 특히 내겐 최고의 이벤트였다. 나는 그때 무대 위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맡을 때마다 느꼈던 설렘과 흥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게 쉽게 나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문학의 밤’ 무대에서 내가 외친 유일한 대사, “또요?”는 모두의 폭소 속에 “똥이요?”로 기억됐다. 그 어처구니없는 순간이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었고, 동시에 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나를 좌절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도전을 향한 동기를 부여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연기에 대한 욕심을 더욱 키우게 되었다.


고2, ‘촌극 대회’에서 연출을 맡으면서부터 나는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두 가지를 모두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욕심은 점점 커졌고, 어느 날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저…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어요.” 그렇게 말했을 때, 예상한 대로 부모님은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언니도 그림 그리는데, 너까지 예술을 한다고? 두 딸을 다 예술로 먹여 살리라고?” 그 말에 나는 마음이 아팠고, 부모님의 기대와 나의 꿈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결심했다. “언니는 언니고, 나는 나야.” 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부를 놓았다.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그것이 부모님이 나를 바꾸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수능에서 실패했고, 대학은 성적에 맞춰 지원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더없이 고독하고 힘들었다. 방송국 PD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입학했지만, 학과 수업은 내게 그 어떤 설렘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내 인생에서 다시 큰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졸업하면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그런 의문 속에서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되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친 후, 나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네 가슴을 가장 뛰게 하는 일은 뭐야?” 그 질문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그때서야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가슴 뛰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방황을 계속했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단 할 수 있는 건 영어 학원 강사 일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며 결국 결국 나의 마음은 다시 무대 쪽으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나는 무대에서 일할 기회를 다시 찾아 나섰다.


SBS 아카데미 문화연출학부를 거쳐 나는 마침내 대학로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첫 번째 일은, 바로 화장실 청소였다. 6개월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도 나는 매일 ‘내가 원하는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일을 한다고 의아해했지만, 나는 그때 정말로 행복했다. '공연 인생'이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꿈’은 누구에게나 쉽게 떠오르는 단어가 아니다. 어떤 이는 어릴 적부터 분명한 꿈을 갖고 자라지만, 또 다른 이들은 헤매고 방황하며 그 꿈을 찾아간다. 나는 후자였다. 내 꿈은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어설펐던 첫 대사처럼, “똥이요?”라는 실수도 결국 내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웃었던 사람들, 그 순간의 어처구니없는 기억들은 오히려 내게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지금은 어색하고 틀린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괜찮다. 당신이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당신만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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