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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로김쌤 Jun 15. 2020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2)

공황발작, 아직 극복하지 못했어 #3

돈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언제부터인가 삶이 돈이라는 것에 매달려 흘러가고 있었다. 옛날 그 언젠가는 친구와의 관계에 힘들어했고, 또 옛날 그 언젠가는 가슴 시린 사랑에 슬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생명도, 생각도, 의지도 없는 단지 한 물건일 뿐인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에 매달려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 죽음을 생각했었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와이프가 있고, 둘도 없이 소중한 아이가 곁에 있는데도 돈이라는 것은 끝없는 궁지로 나를 몰아세웠다.


우울과는 담을 쌓고 살아오던 삶. 앞으로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나 보다. 기술을 배우고, 건설 현장에 노가다를 뛰면서 나의 추천으로 핸드폰 도매 업체에 들어가 일하고 있었던 친구가 연락이 두절되었다. 평생을 보고 지낼 친구였기에,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혹시 돈을 좀 빌려줄 수 있냐던 친구의 전화에, 제대로 빌려주지 못했던 내 상황이 정말 미웠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는 예전에 알던 녀석이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내가 너를 그곳에 취업시키는 것이 아니었는데..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말. 아무도 없이 홀로 지내던 서울 어느 구석진 방에서, 손목을 그어 보았다던 친구에게 이렇게 살아 돌아와 줘서 너무 고맙다고 눈물 흘리며 감사해했다. 삶이란 그렇게 소중한 것임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절대로 공감해서는 안 되는 그 감정에 공감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손목을 긋는다고 쉽게 죽지 못한다고 하더라..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순식간에 죽음이 찾아온다더라..


처음 죽음을 생각하고서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돈 때문이었다. 내가 죽고 나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슬퍼한다거나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도, 죽음을 선택해도 보험금 한 푼 나오지 않는 몸뚱이라는 사실 때문에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유서를 적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면서 유서를 적었다. 책상 위에 유서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높은 곳이 필요했다.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려 했다. 옥상 문은 꽉 잠겨있었다.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려 했다. 역시나 잠겨있었다. 결국, 나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그때, 여덟 살 배기 아들과 와이프가 캄캄한 사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아무런 소리 없이 숨어있었지만, 가늘게 새어 나온 모니터 불빛 사이의 내 모습이 아들의 눈에 보였나 보다.


아빠가 여기 있어.. 아빠 너무 무서워


그렇게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가 나를 다시 살렸다. 삶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보다, 아들에게 아직 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심하게 뛰는 심장 박동과, 미친 듯이 떨려오는 발작이 밀려드는 날이 아니더라도 아직도 종종 죽음을 떠올린다. 이게 우울한 감정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살고 싶다는 내 깊은 곳의 몸부림인 걸까.


아직도 생각한다. 밤을 새워 일을 해도, 누군가에게 사정사정을 해도 풀리지 않는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또다시 나를 궁지로 몰아세우는 일도 끝나지 않겠지.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니, 죽음보다 삶을 더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일이면 다시 빚쟁이들에게 빗발치듯 전화가 올 테고, 어쩌면 미친 듯이 다시 발작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진료비 한 푼, 약 값 한 푼이 아까워 병원의 문을 두드리지 못할 테고, 다시 나를 궁지로 몰아세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살아있으니 되었다. 글 한 줄 끄적이고 있으니 되었다. 살려달라고 소리칠 용기조차 이제는 없는 삶이지만, 지금은 살아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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