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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로김쌤 Jun 10. 2020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1)

공황발작, 아직 극복하지 못했어#2

그리 긴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평생을 우울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생각이 많고, 생각을 표현하지 않은 채 속으로 삼키는 삶이 천성이라고만 알고 지냈던 삶이었다. 모든 사람이 뜯어 말리던 보험회사에 보험설계사로 자원해서 입사할 때도, 우리나라에 진짜 재무설계를 제대로 전파할 수 있는 것은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화하고 진심으로 대하면 알아줄꺼라며 우겨가며 내 고집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 때로는 보험쟁이 재수없다며 침을 밷는 사람들, 때로는 나 죽으라고 보험팔러 왔냐며 소금 뿌리는 사람들까지 갖은 천대와 무시를 당하며 일을 했어도, 우울하지는 않았다. 계약이 없어 월급이 0원이라 회사 선배들에게 밥을 얻어 먹고 다녀도, 밤새 엑셀로 고객에게 줄 프로그램을 짜며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제대로 된 계약이 이루어 지지 않아도, 적어도 우울하지는 않았다.


보험회사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일을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항상 그랬다. 상대에게,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알아줄꺼라고. 핸드폰 도매업체에 들어가 판매점 사장님들에게 물건을 공급해줄 때에도, 빠른 속도로 회사의 관리과장까지 승진했지만, 밤낮도 없이 항상 일만 해야 했던 때에도, 업무 실수로 다시 영업사원이 되고, 결국 정리해고를 당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을 시작했지만, 유명한 모 방송 TV 프로그램에서 거짓말이라며 말도 안되는 편집으로 종사자들을 모두 생매장 시킬 때에도, 전업 마케터로 돌아섰지만 실력이 부족해 제대로된 소득을 올리지 못할 때에도, 돈때문에 힘들었지만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때는 길이 보였기에.

안되는 것들이 앞을 막아 힘겨움을 안기면 어떻게든 다른 길을 찾아보면 될꺼라고 생각했기에.


집 안에 쌀이 떨어져서 밥을 해먹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마트에서 4kg 쌀을 들면서도 돈이 없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와이프와 두 손을 잡고 펑펑 울면서도, 이거라도 해보자.. 저거라도 해보자.. 오늘은 조금 나아질꺼야.. 함께 위안하던 때가 있었다.


적어도 그 때는 살아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노가다라고도 하고, 건설 현장직이라고도 하는 일당일을 다니면서 삶은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 이렇게 기술이라도 배우고 나면, 지금은 먹고 사는데 만족하지만 독립해서 내 사업장을 차리고 나면 그 때는 돈도 벌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때는 살려달라는 말 보다는 이겨내자는 의지가 나를 이끌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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