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의 제자리

실패탐구 1. 우리가 겪는 실패의 종류

by 하루

"성공하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성공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삶이 망가지는 현상을 두고 '성공 증후군(The Success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렸는데, 막상 그 자리에 도달해 보니 행복은커녕 공허함과 불안만 남았다는 것이죠. 마치 산 정상에 오르면 멋진 풍경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짙은 안갯속에 갇혀 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성공이 우리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 믿었지만, 존 오닐이 그의 책 <행복의 역설>에서 지적했듯 그것은 어쩌면 '무늬만 자유인 덫'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느라 정작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옷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갈 곳을 잃습니다. 삶이 어딘가 불편하고 삐걱거린다면, 우리는 억지로 옷매무새를 고칠 것이 아니라 다시 첫 단추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에 실패했다고 느끼는지, 그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실패, 그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첫 번째 얼굴은 '소유의 실패(Failure of Possession)'입니다.


쉽게 말해 "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한 실패감이죠.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을 보며 "성공했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의 인품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단지 큰돈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버는 것에 성공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소유의 실패는 '절대적인 빈곤'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 감정의 원형은 대형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떼쓰는 아이의 마음속에는 "저걸 갖지 못하면 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이 가득합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다를까요? 드러누워 울지 않을 뿐, 남들과 비교하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교묘하고 깊어졌습니다.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만큼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조차 유지하기 버거운 현실 앞에서 우리는 매일 '소유의 실패'를 경험합니다.


두 번째 얼굴은 '기대 충족의 실패(Failure of Expectation Satisfaction)'입니다.


이 실패는 앞서 말한 소유의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아픕니다. 이 얼굴 안에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시선, 즉 '타인의 기대'와 '본인의 기대'가 날카롭게 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타인의 기대'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기대, 그리고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평균'이라는 기대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 나이쯤 되면 번듯한 직장은 있어야지", "남들은 다 집 사고 차 사는데 넌 뭐 하니?" 같은 말들은 무언의 폭력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판단되어지는 나'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버린 것 같습니다. 끝없이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사이, 정작 진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하게 지워지고 맙니다. 타인의 잣대에 맞춰 잘 깎인 조각상이 되려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비극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품이 아닙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손으로 스스로 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본인의 기대'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실 나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는 타인의 그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무겁습니다. 타인의 모든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그것이 곧 나 스스로 만족해야 한다는 '자족(自足)'에 대한 커다란 기대로 변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결국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족의 실패감에 빠지게 됩니다. 너무 높게 설정해 버린 자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 거듭될수록, 우리의 자존감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굳게 다짐했던 금연의 실패, 매번 작심삼일로 끝나는 다이어트나 독서 계획 같은 수많은 일상의 좌절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난 역시 안 돼"라는 본인 기대 충족의 실패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깊고 질긴 실패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방법은 숨 막히는 '목표'를 내려놓고 설레는 '기대'를 품는 것입니다. 달성하기 어려운 벅찬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해 자책하는 굴레에서 과감히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하루 무엇을 새롭게 이룰 수 있을까?", "이번 도전에서는 어떤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될까?", "지금 나의 작은 노력이 훗날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까?"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실패감(Sense of Failure)'의 자리를, 내일을 꿈꾸게 하는 건강한 '기대감(Anticipation)'으로 채워 넣는 것. 그것이 바로 기대 충족의 실패를 이겨내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세 번째 얼굴은 '성취의 실패(Failure of Achievement)'입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등수와 점수로, 대학 간판으로 나의 성취를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진학에 실패하거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 우리는 단순히 '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넘어 '인생에서 탈락했다'는 지독한 패배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무언가를 성취한 이후에도 이 실패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밤을 새워가며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지만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곧바로 남들보다 승진이 늦을까 봐, 동기들보다 연봉이 적을까 봐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마치 속도가 계속 빨라지는 러닝머신 위를 뛰는 것처럼, 잠시라도 다리에 힘을 빼면 뒤로 밀려날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립니다. "내 나이에 이 정도는 이뤄놓았어야 하는데", "저 친구는 벌써 저만큼 앞서가는데"라는 끝없는 자기 검열 속에서, 우리의 성취감은 언제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금세 말라버리고 맙니다.


네 번째 얼굴은 '안정의 실패(Failure of Stability)'입니다.


요즘 시대에 가장 간절하면서도 서글픈 실패의 얼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말이 소박한 꿈이었지만, 어느새 그 '평범함'은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아득히 멀어지고, 아무리 아끼고 모아도 노후는 막막하게만 느껴집니다. 분명 오늘 하루도 뼈 빠지게 열심히 일했는데, 통장 잔고를 보거나 요동치는 경제 뉴스를 볼 때면 내 삶의 기반이 모래성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우리는 현재를 희생하며 내일의 안정을 사려고 애쓰지만, 안정이란 녀석은 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 도망칩니다. 이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 속에서, 우리는 거친 파도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처럼 스스로를 무력한 실패자라고 여기게 됩니다.


다섯 번째 얼굴은 '관계의 실패(Failure of Relationship)'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아프고 시린 실패일 것입니다. 돈이나 지위는 잃었다가도 다시 얻을 수 있지만, 한 번 금이 간 관계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흉터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실패는 밖에서 겪는 실패보다 훨씬 내밀하고 은밀하게 우리를 갉아먹습니다. 바깥일로 지쳐 돌아온 날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짜증을 내고 돌아서서 후회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참 부족한 부모구나' 자책하거나, 연로해지신 부모님의 굽은 등을 보며 '나는 불효자구나'라며 가슴을 쳤던 순간들 말입니다. 사회에서 제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휴대폰에 수백 명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더라도, 정작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편하게 전화 한 통 걸어 울음을 터뜨릴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지독한 관계의 실패를 경험합니다. "나는 결국 곁에 있는 사람조차 품지 못하는구나"라는 자괴감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섬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실패의 진짜 얼굴을 마주해 봅니다.

소유, 기대, 성취, 안정, 관계... 숨 가쁘게 나열한 이 수많은 실패의 얼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으셨나요? 그것은 바로 이 모든 실패의 배경에 '채워지지 않은 욕구(Desire)'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높이 오르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단단히 안정되고 싶은 우리의 간절한 마음들. 사실 욕구 그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지쳐 쓰러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우리를 진짜 아프게 하는 것은 욕구 자체가 아니라, 그 욕구를 재는 '눈금'에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그 잣대에는 사실 '정해진 기준'이 없습니다.


도대체 통장에 0이 몇 개나 찍혀야 소유에 성공한 것일까요? 명함에 어떤 번듯한 직함이 적혀 있어야 성취한 것일까요? 한 달에 몇 번을 만나고 웃어야 성공한 관계일까요? 이 질문에 정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기준은 신기루처럼 모호하고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100을 가진 사람은 200을 가진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전교 2등은 전교 1등의 뒷모습을 보며 남몰래 좌절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한 뼘 더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내가 더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순간 그 눈부신 성장은 순식간에 초라한 실패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을 짓누르는 실패감의 대부분은 당신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사실(Fact)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이 정해놓은, 혹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모호한 기준에 내가 미치지 못했다"라고 믿어버리는 아픈 느낌(Feeling) 일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결승선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트랙 위에서, 남들이 뛰니까 덩달아 죽을힘을 다해 달리며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채찍질해 온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실패라고 부르며 수많은 밤잠을 설치게 했던 그 괴로움들이, 사실은 기준조차 없는 헛된 욕구가 만들어낸 거대한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어떨까요? 실체 없는 그림자와 싸우느라 그토록 온 에너지를 쏟고 아파했던 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정하고도 단호하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어야 합니다.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가 들고 있던 잣대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물고기를 나무 타는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바보라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나무를 오르지 못해 안달해야 하는 바보가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실패감은 당신이 무능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라는 아름답고 고유한 물고기를, '나무 타기'라는 엉뚱한 타인의 잣대로 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나무를 오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껏 숨 쉬고 헤엄칠 수 있는 넓은 바다를 찾는 것입니다.


엉킨 삶의 실타래를 풀고,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제자리로 돌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나라는 그릇의 고유한 모양과 크기를 무시한 채 억지로 들이밀었던, 남의 자를 과감히 부러뜨리는 것입니다.

실패라는 무거운 그림자에서 벗어나 눈부신 진짜 나를 찾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두 손에 꽉 쥐고 있는 그 잘못된 잣대부터 툭, 하고 내려놓으세요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