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몸과 마음이 하나로 조율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다. 하이델베르크를 동서로 흐르는 네카어 강에 놓인 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길이 나온다. 관념주의 철학자 칸트도 이 다리를 건너 다니며 산책했다. 칸트가 이 다리를 건너는 시간에 맞춰서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다리를 건너서 ‘슈랑켄벡’이라는 좁은 돌계단을 따라가면 철학자의 길에 이른다. 철학자의 길로 이어진 좁은 돌계단을 오르는 건 꽤 힘들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오르는 것보다 경사진 계단길을 오르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계단을 한참 오르면 철학자의 길이 나온다. 여기서 칼 테오도르 다리가 내려다보인다.
괴테, 헤겔, 하이데거 등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가 이 길을 걸었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 길을 걸었을까? 니체는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니체의 말처럼 걷는 동안 뇌는 휴식을 취하고 머릿속에 흩어져있던 생각이 정리된다. 생각을 의식적으로 정리하는 게 아니라 걸으면 저절로 정리가 된다.
걷기는 휴식이면서 동시에 생각을 정리해주는 효과가 있다. 《작은 습관》에는 지은이가 경험한 걷기의 효과가 나온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책을 읽고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던 지은이는 하루에 1시간 이상 걸었는데 운전을 하게 되면서 10분도 걷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걷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체중이 늘어나고 몸은 편한 것만 찾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도 무거워지고 아이디어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시 걷기로 마음먹고 지압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산책로에서 맨발로 걸었다. 걷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다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철학자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일에 관한 전문가였다. 그들은 걷기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탁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좁은 돌계단을 몇 분 동안 힘들게 걸어 올라가야 나오는 철학자의 길은 위치적으로 머리를 맑게 해 준다.
가벼운 운동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과학자들은 혈액 순환이 집중력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이 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혈액의 양은 체중의 6~8퍼센트 정도다.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이라면 약 4~5킬로그램 정도의 혈액이 우리 몸을 돌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몸 전체를 순환하는 혈액은 이보다 부족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활동량이 더 많은 기관에 혈액을 더 많이 보낸다. 생각할 때는 대뇌로 다량의 혈액이 들어가서 신체의 다른 부분은 혈액이 부족한 상태가 된다. 식사 후에는 소화기관에 더 많은 혈액을 보낸다. 밥을 먹은 후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졸리는 이유는 소화기관에 중점적으로 혈액을 보내서 머리에는 적은 양의 혈액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동안에는 근육에 다량의 혈액이 들어간다. 신체의 한 부분에 많은 혈액이 들어가면 다른 부분은 혈액이 부족하다. 혈액이 부족한 부분은 휴식을 취한다.
철학자의 길까지 가기 위해 좁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혈액은 다리에 공급된다. 두뇌에 몰렸던 혈액은 신체 여러 곳으로 분산된다. 그러면 뇌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머리는 개운해진다. 다시 생각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환경운동가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역사>>에서 걸으면 몸과 마음이 하나로 조율된다고 했다. 조율은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는 것이다. 걷는 동안 우리 몸은 운동을 하고 두뇌는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몸과 두뇌, 마음까지 조율된다. 숲이나 나무가 많은 공원을 걸으며 깊은 호흡을 하면 두뇌에 산소가 공급되어 머리가 맑아지는 것은 우리 몸이 조율되어서다.
가벼운 걷기는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것과 달라서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생각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걸으면서 하는 명상도 있다. 한적한 길을 걸으며 걷기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집중이 안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기보다 걷는 게 낫다. 걷기는 창의력을 자극하는 촉매이기 때문이다. 걷기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찰스 다윈, 칸트, 키에르 케고르, 괴테 등 엄청난 업적을 남긴 많은 사람이 걷기를 예찬했다. 그들만큼 위대한 성과를 만들고 싶다면 걷기를 생활화하기 바란다.